“선생님, 안녕하세요. 김금진(가명)님 활동지원사예요. 앞으로 제가 연락드릴게요.”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50대 후반 금진님은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고 싶지만 적절한 분이 연결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도 이곳저곳에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활동지원사님이 연결되었고 나에게 연락을 먼저 주셨다. 금진님을 돌보던 금진님의 오빠는 지병으로 요양을 위해 시골로 떠나고, 금진님의 어머니와 금진님만 남은 터였다. 어머니도 거동이 어렵고 노쇠하여 지내기 힘든 상황이어서 재가요양센터를 통해 요양보호사가 찾아온다. 금진님도 활동지원사가 주 3회 찾아오니 최소한의 돌봄 여력은 갖춰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 동주민센터 연락을 받고 찾아가 금진님의 정신질환을 진료하게 되었는데 오빠도 간질환으로 투병 중이고 어머니도 만성질환과 노쇠로 거동이 힘든 상황이었다. 그동안 요양보호사와 활동지원사가 몇분 왔지만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후 다시 적당한 분을 찾기 어려워 반쯤 포기하고, 몸이 아프지만 이동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오빠가 애쓰고 있었다. 다행히 적절한 돌봄을 받게 되어 지병을 앓던 오빠도 비로소 시골로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활동지원사님과 기분 좋게 연락하고 금진님을 찾아뵈었다.
그런데 한달 뒤 금진님 진료를 가려고 활동지원사님께 연락하니 그사이 그만두셨다고 한다. 새로운 분이 왔다고 하는데 연락처는 모른다고 한다. 금진님의 상황을 아는 재가요양센터 센터장님께 새로운 활동지원사님 연락처를 받아서 연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찾아뵙게 되었을 때, 대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어떤 분이 나를 알은척하며 대문으로 온다. 알고 보니 그간 금진님의 어머니를 돌보던 요양보호사님이셨다. 새 활동지원사님도 마침 금진님 댁에 계셨다.
그렇게 처음으로 금진님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요양보호사님과 금진님과 금진님의 활동지원사님 그리고 내가 한순간 모였다. 금진님과 어머니는 식사 중이었다. 요양보호사님이 곁에 앉아 말을 건넨다. 활동지원사님이 잠시 문 앞 복도에서 나에게 어려움을 토로한다. 금진님이 과식하는 경향이 있어서 살짝 잔소리했더니 예민하게 반응하여 조금 놀랐다고 한다. 금진님이 더 살이 안 찌길 바라지만 먹지 말라고 잔소리하기보다는 차근차근 다독여가며 소통해보자고 했다. 새 활동지원사님이 그만두지 않고 금진님 가족과 오래 함께해주길 바랄 뿐이다.
나가는 길에 네분이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나는 한달에 한번 겨우 와서 가볍게 진료하는 정도라 삶의 매 순간 가깝게 다가가진 못한다. 이전에 금진님 오빠를 통해서, 재가요양센터 센터장님을 통해서 워낙 힘들었던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나 역시도 어떻게 접근할지 고민이 많았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잠시 웃으며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질병과 노화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돌보며 마음을 맞추어 살아내는 일이 참 어렵다.
금진님 가족과 만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다. 처음 동주민센터 연락으로 찾아가서 오빠분과 이야기 나누며 뭐라도 도우려 했지만 그다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듯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나름의 평화가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네분의 삶을 응원하는 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도록 금진님과 활동지원사, 어머니와 요양보호사 네분의 인연이 오래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꿈도 계획도 없다. 내 집도 남이 드나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 고마운 이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