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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00년 식물원’ 산림청 약속 믿고 국민 품으로 보냅니다”

등록 2021-07-07 19:31수정 2021-07-08 02:02

[짬] 한국자생식물원 김창열 원장

김창열(오른쪽) 한국자생식물원장과 최병암(왼쪽) 산림청장이 7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식물원에서 기부협약을 맺었다. 사진 산림청 제공
김창열(오른쪽) 한국자생식물원장과 최병암(왼쪽) 산림청장이 7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식물원에서 기부협약을 맺었다. 사진 산림청 제공

“30여년 전 식물원을 처음 만들 때부터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정부에서 운영을 맡아 더 훌륭하게 키워낼 거라고 믿습니다.”

7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에서 기부협약식이 진행됐다. 김창열(73) 한국자생식물원장은 평생 일궈온 식물원의 토지 10㏊(3만여평)와 건물 5개동, 자생식물 1356종 등을 산림청에 기부했다. 한국자생식물원은 2002년 산림청으로부터 ‘사립식물원 1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 자생식물원이다.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202억원에 이른다.

‘통 큰 기부’를 결정한 김 원장을 기부협약식에 앞서 지난 6일 전화로 만났다.

30년 가꾼 국내 최초·최대 자생식물원
7일 산림청과 기증협약 맺어 ‘국립’으로
특산·멸종위기·희귀식물 등 1500여종
대관령 일대 3만여평 규모 202억원 가치

솜다리 아름다움 끌려 우리꽃 재배 시작
“백의종군하듯 여생도 식물과 함께 보낼 것”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사립식물원인 한국자생식물원은 김창열 원장의 기부에 따라 국립식물원으로 거듭난다. 사진 산림청 제공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사립식물원인 한국자생식물원은 김창열 원장의 기부에 따라 국립식물원으로 거듭난다. 사진 산림청 제공

한국자생식물원은 이날부터 ‘국립 한국자생식물원’으로 거듭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의 소속기관으로 지정돼 위탁 운영된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과 국립세종수목원을 운영하는 전문기관이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7일 협약식에서 “식물원을 더욱 발전시켜, 향후 100년 이상 우리 고유 식물유전자원을 수집·증식·보존할 자생식물의 안식처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 식물원에서는 이미 자생식물 4500여종 가운데 1500여종을 수집해 연구·증식 중이다. 또한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식물 서식지외보전기관으로 다가오는 유전자원전쟁 시대에 대비하는 한반도 식물유전자원의 보고로도 평가받는다.

김 원장은 기부를 결정한 이유에 관해 “(남 주기 아깝다고) 평생 가꾼 자생식물을 캐내 버리고, 다른 것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그는 “내가 앞으로 일해봐야 몇 년밖에 더 못한다. 하지만 국가라는 울타리로 소속을 바꾸면 보다 영속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정부에 기부하면서 ‘앞으로 100년 동안은 자생식물원으로 유지한다’는 것을 최우선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평소 설악산 등반을 좋아했던 김 원장이 한국의 자생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설악산에서만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 ‘솜다리’ 덕분이다. ‘한국의 에델바이스’로도 불리는 솜다리는 설악산 방문객이 늘면서 암암리에 불법남획으로 개체 수가 급감한 희귀식물이다. 김 원장은 솜다리를 재배해 분양하면 솜다리를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좋아하고, 불법채취를 막을 수 있어 솜다리 서식지 복원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하고 이내 실천에 옮겼다. 1983년 경기도 남양주 마석에서 처음으로 솜다리 재배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만큼 희귀식물을 키우는 일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설악산 해발 700m 이상 높은 곳에서만 사는 솜다리가 마석에서 쉽게 자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발 700m 이상 높은 곳을 찾아다닌 지 1년 만에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으로 터전을 옮겨야 했다. 그렇게 솜다리에서 시작한 ‘초보 원예농’의 관심은 어느덧 벌개미취와 분홍바늘꽃 등 다른 자생식물로 확장됐다.

그는 점차 ‘식물원을 만들어 외래종과 원예종이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 고유의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을 알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좀 더 넓은 공간을 찾아 인근인 대관령면으로 터를 옮겨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식물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9년 한국자생식물원을 개원해 일반에 공개했다.

한반도에서 멸종하면 지구상에서 멸종하는 한국특산식물, 분포지가 한정돼 있거나 개체 수가 많지 않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자생식물·멸종위기식물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식물원은 개원과 함께 큰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인 2000년 ‘한국관광공사의 가볼 만한 곳’에 선정되고, 2001년에는 ‘한국관광대상’ 특별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2002년 대통령표창과 2003년 대산농촌문화상, 2004년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서식지외 보전기관 지정 등의 성과도 얻었다. 2008년 7월에는 퇴임 뒤 강원도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식물원을 방문해 ‘우리꽃이 있어서 이 땅이 더 아름답다’는 방명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위기가 찾아왔다. 식물원에서 전기 누전 원인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는 바람에 2019년까지 긴 휴관을 해야 했다. 김 원장은 “이때 식물원 폐관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이곳에 보전된 멸종위기 식물 등이 사라져 가는 것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를 악물고 3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마치고 2020년 6월 다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재개관 뒤 그는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닮은 사람이 소녀상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조형물 ‘영원한 속죄’를 세워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아베를 지칭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조형물의 사죄하는 남성은 어느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소녀에게 사죄하는 모든 남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거듭 해명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일본에 가서 ‘영원한 속죄’를 전시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행태는 침략행위다. 특히 성노예 문제는 일본이 저지른 역사적 죄악이다. 때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지난 역사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정중히 사죄한 뒤 새로운 일본으로 거듭나길 기원합니다.”

김 원장은 식물원을 기부한 뒤에도 한국의 자생식물을 가꾸고 보존하는 데 여생을 바칠 계획이다. “식물원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인근에 집 한 채 지을 터를 마련했어요. ‘백의종군’하듯 힘 닿을 때까지 식물과 관련한 농사를 짓고 싶어요.”

그는 “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아 가장 먼저 증식하고 보존해야 할 귀중한 식물에 한국자생식물원은 최후의 보루다. 앞으로도 한국자생식물원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당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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