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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타인과 눈 맞추기 두렵다면 ‘거울 속 내 눈’부터 보세요

등록 2021-06-19 12:28수정 2021-06-19 12:33

[토요판]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⑦시선공포증

반려견 말곤 누구와 대화할 때도
시선 마주치기 불편했던 성훈씨
누가 쳐다보면 글씨 쓰기도 힘들어
검사받았지만 팔 신경·근육 ‘멀쩡’
불안이 높은 분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우 예민한 성향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리에도 잘 놀라고 다른 사람의 인기척에도 깜짝 놀랍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불안이 높은 분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우 예민한 성향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리에도 잘 놀라고 다른 사람의 인기척에도 깜짝 놀랍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 사람의 감정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얼굴 중에서도 사람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눈’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상황에서도 얼굴만 보고 누구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의 눈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을 가리고 입이 드러나는 마스크로 실험을 해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눈은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합니다. 상대의 눈을 보면 화가 났는지, 피곤한지, 즐거운지,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성훈씨는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선생님 앞에만 가면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힘들었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도 주로 옆을 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잠시라도 타인과 눈을 마주치게 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멎는 느낌이 들어 바로 시선을 아래로 두곤 했습니다. 잘못을 해서 야단을 맞으러 가는 상황이 아닌데도, 선생님이 자신을 부르면 그것만으로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눈을 잘 쳐다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수업 중에도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어지러워 일어서다 넘어질 뻔한 적도 있습니다.

누가 보면 글씨도 못 써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는 거의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다행히 이때부터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성훈씨는 굳이 타인과 대면하여 이야기하지 않고 지내는 데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보도블록 바닥만 보며 걸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우연히 시선이 부딪히게 되면 무척 불편했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런 어려움을 알아차릴 것 같아 두려웠습니다.

한번은 강의시간에 졸려서 노트에 낙서를 하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습니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교수님이 자신이 쓴 낙서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성훈씨는 갑자기 손이 떨리며 움직여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교수님께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는데, 강의실에 있는 친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치 성훈씨를 보고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에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쳐다보는 듯하면 펜으로 글씨를 쓰기가 힘들어 노트를 접어 자신의 손을 가리고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누가 보는 듯한 느낌이 들면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글씨를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성훈씨는 팔 신경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 검사를 받아봤지만 근육이나 신경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수업시간에 필기하기가 어려워 대학을 휴학하고 집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성훈씨는 집에서 가족들과 이야기할 때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보다는 가족이 훨씬 편합니다. 성훈씨가 눈을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은 대상은 반려견뿐입니다. 성훈씨는 점점 집에만 있게 되고 자신이 세상과 담을 쌓게 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복학하려고 해도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접게 됩니다.

이러한 증상으로 성훈씨는 부모님과 함께 인근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성훈씨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가족이 모두 의사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성훈씨 가족에게 가족들 모두가 눈을 잘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한다는 점을 설명하려고 하자 거기에는 관심이 없고 성훈씨가 글씨 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에 대해서만 진료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오직 어떤 정밀검사를 해야 다시 글을 잘 쓸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누가 보고 있을 때 글씨를 쓰기 힘든 것’과 ‘다른 사람과 눈을 못 마주치는 증상’은 ‘불안’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불안이 높은 분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매우 예민한 성향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리에도 잘 놀라고 다른 사람의 인기척에도 깜짝 놀랍니다. 보통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자극에도 심하게 놀라게 됩니다. 그러면 교감신경계가 최대로 항진되어 심박동을 증가시키고 호흡이 빨라지고 자기 마음대로 근육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성훈씨는 어릴 때부터 대인관계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누가 쳐다보고 있을 때 글씨를 쓰는 것에 실패하면서 트라우마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언제든 작은 자극으로도 교감신경계가 최대로 항진됩니다.

공황 증상 어머니, 걱정 많은 아버지
어릴 때 분리불안 심했던 성훈씨 등
세 가족 모두 ‘불안감’ 매우 높아
함께 ‘시선 보기’ 꾸준히 연습해보길

대인관계 피하는 ‘불안한’ 가족

문제는 성훈씨네 가족 모두 불안이 높다는 점입니다. 성훈씨의 어머니는 성훈씨를 출산한 뒤 심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어린 성훈씨를 제대로 돌봐주기 힘들었고 울거나 칭얼대도 귀찮게만 느껴졌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숨이 막히는 공황 증상이 있어서 성훈씨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일이 드물었고 항상 집 밖은 두려운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성훈씨의 아버지도 어릴 적부터 ‘걱정도 팔자’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고, 지금도 불안과 걱정이 많은 편입니다. 대인관계를 거의 하지 않고 공방에서 물건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무척 꼼꼼하다고 입소문이 났을 정도입니다.

성훈씨와 가족들은 평균보다 불안감이 매우 높은 편으로 나왔습니다. 세 사람 모두 대인관계가 적고 시선 교류가 잘 안되지만 모두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데 세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가만 보니 가족 간에 대화할 때도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 것이 보였습니다. 담당 의사가 눈을 안 마주치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다시 설명하자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다른 사람의 눈을 쳐다보는 것이 몹시 불편하다는 점에 동의했습니다.

타인이 보는 앞에서 글씨를 쓰기 힘든 증상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에 힘든 기억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신의학자 조지프 월피의 이론에 따르면 이는 ‘체계적 둔감법’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현재 공포를 유발하는 자극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서서히 단계를 올려가면서 하나씩 극복해 공포를 제거하고 둔감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글을 쓰는 것을 상상해봅니다. 다음 단계로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편한 사람이 보는 앞에서 글을 써봅니다. 여기에도 성공하면 담당 의사가 보는 앞에서 글씨를 함께 써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도 성공하면 다시 강도를 올리고 그 또한 성공하면 더 힘든 상황에서도 가능하게 됩니다.

‘시선을 맞추는 것’은 대인관계의 기본입니다. 아기는 태어난 직후부터 부모와 시선을 맞추며 웃음을 짓게 되는데 이를 ‘사회적 미소’(social smile)라고 합니다. 이 사회적 미소가 아기에게 대인관계 훈련의 시작이 됩니다. 어머니가 산후우울증이나 다른 이유로 아기와 시선 교류 연습을 하기 어렵다면 아버지나 다른 가족이 대신 할 수 있습니다. 아기에게 ‘도리도리 까꿍’ 하며 시선을 교류하면 아기에게 좋은 연습이 될 수 있습니다. 성훈씨는 아이 때부터 어머니와의 분리불안이 무척 심했다고 합니다. 유치원에 갈 때도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하도 울어서 보내기 힘들었습니다. 유치원에서 소변을 가리지 못한 적도 많았다고 하는데 선생님께 이야기하지 않고 집에 와서야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성훈씨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비슷했습니다.

긴장하면 심해지는 시선공포증

다른 사람의 눈을 보지 못하는 것을 ‘시선공포증’이라고 합니다. 시선공포증은 스스로 인식하고 노력해야만 줄어들 수 있습니다. 긴장을 하면 더 심해집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면접을 볼 때 더 나타나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에 지장을 주게 됩니다. 눈을 보면서 이야기하면 상대방을 기억하기 쉽고 서로 감정적인 교류를 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 분들의 경우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선을 치켜뜨기도 하고 옆으로 두게 됩니다.

눈을 치켜뜨게 되면 눈 아래로 흰자가 많이 보이게 되고 검은 동자는 눈 위쪽으로 가려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대화하는 상대방은 공격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눈을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삼백안(三白眼)이라고 했습니다. 눈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오른쪽, 아래쪽 흰자위가 보이는 눈을 의미하지요. 자신에게 그런 증상이 있다면, 먼저 거울을 보고 눈의 아래쪽 흰자위가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조절해보세요. 검은 눈동자가 안구의 가운데에 위치하려면 고개를 조금만 들면 됩니다. 다소 거북한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눈도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눈을 맞추면서 미소를 지어보세요. 어떤 미소가 자연스러운지 생각해보세요.

타인의 눈을 보는 것도 ‘체계적 둔감법’으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면서 거울을 보고 자신의 눈과 마주치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처음에는 자기 눈을 보는 것도 불편합니다. 그 후에 부모님이나 형제,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시선을 맞추는 연습을 해보면 좋습니다. 그러고 나서 타인에게 피드백을 받으면 좋습니다. 성훈씨네는 부모님 또한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불안이 높기 때문에 성훈씨와 함께 연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연습하다가 고개가 돌아가는 게 느껴지거나 눈을 치켜뜨게 되면 다시 노력해 시선을 맞춰봅니다. 타인과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편해지면 점점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편해지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야 마음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지은이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에 관해 설명합니다. 매우 예민하다는 것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모두 가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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