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2일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진행된 역사 현장 교육. 한 학생이 ‘오일팔닷컴’ 방 탈출 게임을 하고 있다. ‘오일팔닷컴’은 광주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교사들이 만든 역사교육 누리집이다. 학생이 스마트폰을 통해 받은 역사 퀴즈를 풀며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광주실천교사 제공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었어요. 역사책보다는 웹툰이 당연히 더 재미있고요. 선생님이 ‘방 탈출 게임’이라고 하셔서 흥미가 생겼던 것도 사실이에요. 한데 집중하면서 퀴즈를 풀다 보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분의 희생으로 얻어낼 수 있었던 건지 알게 됐어요.”
초등학교 6학년 김은호 학생의 말이다. 역사는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친숙한 ‘방 탈출 게임’ 형식으로 접근해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다고 말했다.
5월과 6월에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날이 많다. 전국 공교육 현장에서도 민주시민교육의 일환으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6·10 민주항쟁 기념일, 6·25 전쟁 등 역사 관련 계기 교육을 진행한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었던 지난해 광주광역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교사들이 개설한 누리집이 이목을 끈다. 올해 내용을 업그레이드한 ‘오일팔닷컴’(오일팔.com)은 초·중·고교생뿐 아니라 교사, 보호자 등 성인까지 참여할 수 있는 역사교육 누리집이다. 역사적 사실에 추리 요소를 더해 방 탈출 게임 형식으로 만들었는데 온라인, 오프라인(현장체험) 버전으로 나뉘어 있어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초등 눈높이에 맞춘 ‘역사 퀴즈’
피시(PC)나 스마트폰에서 인터넷 주소 입력 칸에 ‘오일팔.com’을 입력하면 색다른 역사수업이 시작된다. ‘어느 날 날아든 편지 하나’를 읽은 뒤 5·18 관련 사적지를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온라인으로 접속하면 현장 영상과 함께 ‘랜선’으로도 방 탈출 게임을 할 수 있다. 지난 5월22일에는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 및 옛 전남도청 일대에서 현장 참가 형식으로도 진행했다.
‘오일팔닷컴’ 방 탈출 게임 참가자들의 모습. 전국의 학생, 교사, 보호자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인증샷’을 보내왔다. 광주실천교사 제공
제작진인 ‘광주광역시실천교육교사모임’(이하 광주실천교사)이 만든 두쪽짜리 ‘열매 신문’을 인쇄한 뒤 망월동 묘역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꽃동산’ 테마, 옛 전남도청에서 시작하는 ‘숲의 씨앗’ 테마 등으로 이동해가면서 주어진 퀴즈를 풀면 된다. 현장에서 진행할 경우 한시간 정도 걸리고,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하면 1~2차시 분량이 나온다.
이해중 교사(광주운암초)는 “많은 교육 자료들이 있지만 학년별 안배가 안 되어 있거나, 초등학생들이 접하기에는 다소 무서운 장면 등이 있어 교사 모임 등에서도 고민이 많았다”며 “교실 안팎에서 아이들이 교사나 부모와 함께 역사를 쉽게 접해볼 수 있는 방식을 찾다가 방 탈출 게임 형식을 활용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수업을 위해 사적지 등 현장을 방문하면 보통 학생들이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며 따라다니기만 하죠. 방 탈출 게임은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역사를 접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은 결과물입니다.”
해당 누리집은 특히 학생들에게 반응이 좋다. 누적 이용자수가 5만여명이 넘는다. 이 교사는 아이들이 역사에 관심 없다는 건 편견이라고 말했다. 단지 교과 시간이 부족할 뿐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5학년 2학기 때 고조선에서 일제강점기까지 배우거든요. 하루 결석하면 ‘백제의 멸망’을 못 보는 겁니다. 역사에 흥미를 가진 학생들이 많은데 이런 관심을 교실 안팎에서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국립5·18민주묘지 해설사로 활동해온 백성동 교사(광주극락초)도 동료 교사들과 함께 ‘오일팔수업.com’ 누리집을 열었다. 이 누리집에서는 최근 미얀마 민주화운동 등 현대사와 5·18을 녹여내는 작업을 하며 수업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나만의 박물관 만들면 이해도 ‘쏙쏙’
‘내가 박물관 큐레이터(학예사)가 된다면?’이라는 질문으로도 역사교육을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다. 이관구 교사(대구 영선초)는 교과 시간 외에도 다양한 학습지 및 과제 활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친다.
초등 교실에서 열린 ‘나도 큐레이터’ 수업 학습지. 고려 시대 문화재를 전시하라는 과제를 보고 자신만의 박물관을 구상해보는 수업이다. 이관구 교사 제공
수업시간에 고려 시대를 배운 뒤 불상, 청자 등의 특징을 적어보고 자신만의 박물관을 종이 위에 그려보는 식이다. 태조 왕건 이야기를 포디(4D) 상영관에서 감상한 뒤 최무선의 화포 전시관, 금속활자 체험관, 고려 시대 신분 체험실 등을 둘러보고 팔관회 관람을 끝으로 박물관 투어를 마친다는 것까지 직접 계획해 적는다. 해당 시기의 문화적 특징과 인물의 업적까지 자연스레 알게 되는 ‘추체험 교육 활동’이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의 노를 젓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써보거나, 조선 시대 상인의 시선에서 세금 제도를 어떻게 바라보게 됐는지 등을 적어보면서 역사와 국어를 융합한 수업이 자연스레 이뤄진다. 이 교사는 “‘나도 큐레이터’ 수업 주제는 다양하다. 청동기 유물 소개하기, 벽란도 광고 만들기, 흥선대원군 특별전 등 학생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역사수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수업을 끝내기 전에는 점착 메모지에 ‘해시태그’ 적어보기를 한다. 교사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고, 그날 수업 내용을 전체적으로 환기시켜주는 활동도 된다.
초등 역사수업 뒤 학생들이 ‘삼국시대 해시태그’를 적어 칠판에 붙인 모습. 이관구 교사 제공
고구려는 ‘호방하다’ ‘힘이 세다’, 신라는 ‘우아하다’ ‘전략적이다’ 등 학생들이 느낀 그 시대만의 특징에 대해 한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 열쇳말만 크게 적어서 칠판에 붙이는 방식이다. 이 교사는 “모든 학생이 칠판에 다 붙이고 나면 교사는 다양한 해시태그를 비슷한 것끼리 정리하며 모아 붙인다”며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수업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 각자 수업에서 느낀 바가 다르기에 창의적인 역사수업 아이디어를 모을 수 있어요. 한눈에 파악도 잘되고요. 일종의 역사수업 빅데이터 같은 거죠. 일단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하고,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학습 도달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이 교사는 초등 시절 재미있게 역사를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현실적으로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가면 역사를 시험 대비용으로 배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역사답게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때가 초등 시기죠. 역사는 인과관계가 뚜렷한 공부이고 인문학, 즉 평생 공부와도 이어져 있어요. 이번주에는 아이와 함께 공공도서관에서 재미있는 역사책 한권 빌려보면 어떨까요?”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