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 튀김 기름 솥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곽아무개(62)씨는 2018년 9월 폐암 판정을 받았다. 판정 직후 왼쪽 폐 윗부분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곽씨는 일터로 복귀했다. 그런데 올해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받은 검진 결과 오른쪽 폐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결국 곽씨는 지난 3월 오른쪽 폐 아랫부분을 절제하는 수술을 또 받아야 했다.
곽씨는 2005년부터 15년 동안 경기 성남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한 급식 조리실무사다. 곽씨가 일한 조리실은 자연 환기가 어려운 반지하였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경기 지역 학교 반지하 조리실에서 10년 이상 근무하다 폐암 판정을 받은 조리실무사는 곽씨 말고도 2명이 더 있다. 2002년부터 2019년까지 17년 동안 경기 광명시 한 중학교에서 일한 서아무개(59)씨의 경우 2019년 5월 폐암 4기 판정을 받은 뒤 현재 뇌까지 암이 전이돼 상태가 위중하다. 이들은 지난달 29일과 지난 24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산재) 신청을 했다.
학교 급식실에서 12년 동안 일하다 2018년 폐암으로 숨진 조리실무사 ㄱ(당시 54살)씨가 지난 2월 뒤늦게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을 받은 뒤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하는 급식노동자들이 잇따르고 있다. ㄱ씨는 학교 급식노동자의 직업성 암이 산재로 인정된 첫 사례로 꼽힌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심의위원회는 당시 “(ㄱ씨는) 폐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고온의 튀김, 볶음·구이 요리에서 발생하는 물질인 ‘조리흄’에 낮지 않은 수준으로 노출됐다”며 폐암과 조리실 업무 환경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바 있다. 국제암연구소는 조리흄을 폐암의 위험요인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환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으면 폐암 발병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전국 급식실 노동자 특수건강진단 실시와 조리환경 근본적 개선을 촉구하는 교육공무직노동자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교육공무직노조)는 27일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앞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고 “급식실 폐암 속출 사태는 사업주인 교육감의 책임”이라며 △급식실 노동자 모두에게 특수건강진단 실시 △조리환경 근본적 개선을 위한 현장 요구 반영 등을 요구했다. 특히 교육공무직노조는 “아직도 환기를 포기한 지하·반지하 조리실이 있고 후드 등 기계 환기시설마저 있으나 마나라는 증언이 쏟아져 나온다”며 지하·반지하 조리실을 즉시 폐쇄하라고 교육청에 요구했다. 또 학생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튀김·전류 식단을 최소화하고 급식실 환기실태 전수조사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김진모 교육공무직노조 노동안전부장은 “경기 지역 말고도 산재 신청 관련 문의가 이어지고 있어 전국적으로 산재 신청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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