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7일 서울 신월중학교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 낭독 공연 현장. 청소년문화연대 킥킥 제공
“문학에 큰 관심은 없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문학 성큼성큼’이라는 콘서트의 사회를 맡게 되면서 문학이 가진 힘을 알게 됐죠. 책이라면 뭔가 지루하고 따분할 줄 알았는데, 우리들의 일상을 다룬 크고 작은 이야기더라고요.”
장희진 학생(여수 부영여고1)은 지난해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이경혜 작가의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라는 책 한 권을 가지고 두 시간 동안 친구들과 ‘버라이어티쇼’를 진행했는데, 웬만한 유튜브 채널보다 소설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진명 학생(부산 만덕중3)도 2019년 학교에서 열린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를 계기로 도서부에 가입한 뒤 사서교사를 꿈꾸게 됐다. 최근에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재미있게 읽었다며 “그때 열린 문학 콘서트가 계기가 돼 서점에 꾸준히 들러 책을 고르고 친구들에게 추천도 해준다”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강의가 아니었어요. 저희가 직접 기획해 대본도 써보고, ‘60초 백일장’ ‘몸으로 말해요’ ‘낭독 공연’ ‘오엑스 퀴즈’ 등 다양한 코너를 짠 뒤 문학 콘서트에 온 친구들 모두가 참여하는 일종의 축제였거든요.”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는 ‘청소년문화연대 킥킥’(이하 킥킥)에서 전국 중‧고교와 청소년쉼터 등 현장을 찾아가 진행하는 청소년 문학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2015년부터 시작했는데 지난해 12월 100회를 맞이했다. 방역 수칙을 지키며 지난해에도 15회 진행했고 올해도 공식 블로그(https://blog.naver.com/kickkick99)를 통해 참가 신청을 받고 있다.
이 콘서트는 평소 청소년들에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던 문학을 좀 더 재미있고 깊이 있게 체험하도록 하는 이벤트다. 전문가 주제 강연과 전문 배우들의 낭독 공연, 독자 참여 마당, 작가와의 대화, 깜짝 문학퀴즈 등으로 구성돼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문학 버라이어티쇼’를 지향한다.
기획 및 총연출을 맡고 있는 양연식 킥킥 사무국장은 “문학을 지루하고 따분한 수업 과목, 시험 문제에 등장해 자신들을 괴롭히는 지문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 평범한 십대들에게 문학이 가진 남다른 재미와 장점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전하는 행사”라며 “책읽기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높이고 감수성, 공감 능력,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고자 진행해온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기획과 연출은 제가 맡고 있지만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의 주체는 청소년들입니다. 각 학교 도서부나 학생회 구성원들이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참여하지요.”
2019년 10월23일 분당중학교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 독자 참여 코너 ‘몸으로 말해요’ 모습. 청소년문화연대 킥킥 제공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 해당 학교에서 사전 독자 감상단을 모집해 활동을 시작한다. 작품을 읽은 뒤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학생들의 목소리가 담긴 대본을 구성하게 된다.
콘서트 당일 관객으로 온 학생들이 가만히 앉아 듣기만 하는 방식이 아니다. 미처 책을 읽고 오지 못한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작품을 재구성한 낭독극이 짧게 진행된다. 도서부원 등 행사를 주최한 학생들은 목소리 출연, 미술감독, 음악감독, 사회자와 이야기 손님으로 부지런히 움직인다. 작품 속 명대사·명장면 열전, 학생들이 추천하는 작품의 홍보 문구 등을 통해서도 독후 활동은 이어진다.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 내내 학생들은 작품 주요 인물 가상 캐스팅 결과를 발표하고, 해당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구성을 해보는 게 좋을지 토론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몰입하게 되고 중간중간 기타리스트의 라이브 연주, 학교 댄스부나 밴드부의 축하 공연이 열린다.
‘몸으로 말해요’ 게임도 인기가 좋다. 학생들이 ‘사는 척하는 삶, 죽은 척하는 삶’ 등 작품의 주제 의식을 담은 열쇳말을 뽑은 뒤 소설 속 장면을 몸짓으로 표현하면 이를 작가가 맞히는 게임이다. 보통 알고 있는 ‘북 콘서트’와는 다른 점이다. 초대 작가가 쓴 다른 문학 작품 속 지문을 화면에 띄워놓고 퀴즈 형식으로 소개하거나, 이야기를 창작해보는 재미까지 더해지면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흐른다.
2019년 11월22일 부산 만덕중학교에서 열린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 청소년문화연대 킥킥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작가 강연은 20분 안팎으로 짧게 열리는데, 학생들이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과 프로필을 알아보고 돌발 인터뷰나 오엑스 퀴즈 등을 진행하기도 한다.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에서 청소년들을 만나온 이경혜 작가는 “학생들이 ‘작가의 첫사랑을 찾아라’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작품에 관한 콩트를 짜오거나, 책 내용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며 “청소년들과 자유롭게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에서 진짜 문학적 소통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야말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인격적 그릇을 만드는 시기잖아요. 자신과 다른 환경을 가진 친구에 대한 공감, ‘역지사지’해보는 훈련, 사람을 이해하는 깊이 등은 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평생 자산’인 것이지요.” 실제 이 작가가 가장 많이 받은 피드백도 “문학은 따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콘서트를 통해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말이다.
재미뿐 아니라 교육적 효과도 크다. 문학 성큼성큼 콘서트 초기부터 행사에 관심을 갖고 진행해온 임가희 부산 만덕중 사서교사는 “콘서트 사전 준비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과정 자체가 참여형 독서교육이고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고 말했다.
임 교사는 웹툰이나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문학과 책을 다룬 이런 콘서트를 통해 ‘책’ 자체가 학생들에게 중요한 놀 거리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전했다. “중1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늘 하는 생각이 있어요. 책도 재미있어야 본다는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의 선택지에 책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책이 재미있다는 걸 경험해봐야 해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계속 보고 싶은 건지, 그 계기를 마련하고 제공해주는 것도 어른들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