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각각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하면 그 존재가 가진 모든 역동성이 다 옳은 거잖아요. 그런 시각으로 상담하고부터는 전혀 피곤하지가 않아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중학교 김선희 교사가 지난달 27일 저녁 성남시 구미동 집에서 아이들과의 공감대화를 설명하고 있다. 성남/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교육과열 학교의 중2 담임으로 보낸 지난 한해도 우리 교실은 언제나 젖과 꿀이 흐르는 따사로운 푸른 초장(초원) 같았다. 아이들이 기회만 있으면 ‘우리 반 분위기 참 좋다’고 가정에서 자랑을 늘어놓아 학부모의 높은 신뢰 속에서 넘치는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2021년 2월6일, 김선희 교사 페이스북)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폭력 소식이 들려오는 때에 이처럼 아름다운 교실이 있다니! 이거 실화 맞아? 글의 작성자가 1년 가까이 <한겨레> 토요판에 기명칼럼(‘김선희의 학교 공감일기’)을 쓰고 있는 현직 교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남의 나라 얘기를 듣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그래서 그를 더 만나고 싶었다. 경쟁 위주의 학교 수업과 줄 세우기 입시제도 등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바꾸지 않고서는 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혁신을 이루기 힘들지만, 구조적 문제와는 별개로 현장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힘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가를 확인하고픈 마음에서였다.
지난달 27일 늦은 오후 김선희(47) 교사를 만났다. ‘푸른 초장’을 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사태 때문에 외부인의 학교 출입이 어려워 김 교사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 자택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의 집은 단출하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정도로 단순했다. 거실에는 소파와 작은 컴퓨터 책상만이 한쪽 벽면과 반대쪽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 다른 가구나 장식물이 없었다. 부엌 쪽의 오래된 식탁과 그 옆의 피아노 한대, 안방과 건넛방 사이 공간에 놓인 키 낮은 책장이 오히려 눈길을 끌었다.
“집 안에 물건이 워낙 적으니까 처음 오는 사람들마다 꼭 이사하다 만 집 같다고 해요.(웃음)”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조곤조곤했으며, 웃음소리도 마주 앉은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로 잔잔했다.
―코로나 상황에서 학교 수업은 어떻게 해요?
“학년마다 1주일씩 돌아가면서 등교해요. 학생들로서는 3주에 한번씩 학교에 오는 거죠.”
김선희 교사는 1996년 경기도 가평의 한 공립중학교에서 음악교사로 교육자의 첫발을 뗐다. 경기도에 있는 여러 중·고교를 거친 뒤 지난해부터는 성남 수내중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올해는 학생자치회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학급 분위기를 “젖과 꿀이 흐르는 푸른 초장 같다”고 표현했는데 어떤 모습일까 되게 궁금했어요.
“서로 격려하고 자기들끼리 도와주고 그랬어요.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뭉클해요. 어른들에게 존중받고 공감받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 얼마나 힘찬 평화가 생기는지를 봤어요. 얼마 전 한 아이가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간다’고 제게 편지를 썼어요. 사실 제가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에이디에이치디(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있어 보이는 친구하고는 거의 매일 대화를 하다시피 했지만, 어떤 아이는 한 학기에 한번 정도밖에 깊은 얘기를 못 했어요. 그런데도 아이들은 자기들이 모두 내 손을 잡았다고 느끼더라고요. 그건 친구를 통해서 자신의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자기들이 보기엔 엉망진창인 아이가 교사에게 존중받는 것을 보면서 어떤 일을 해도 선생님이 나의 존재를 뿌리치지 않는다는 안전한 느낌을 아이들이 갖게 되는 거죠. 일벌백계가 아니라 한 아이를 존중함으로써 100명의 아이들이 다 자신이 존중받았다고 느끼는 거죠. 예전에는 개인 면담으로 1년 동안에 언제 이 많은 아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 일파만파인 거 같아요.”
―이른바 부적응 아이 한두명을 잘 지도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학급 전체를 협력적이고 상생하는 분위기로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죠. 아이들 전체에게 신뢰받는 비결이 뭐예요?
“인간 존중에 대한 시각을 가지면 아이들에게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너, 왜 엎드려 자?’라는 식의 말을 할 수 없잖아요. 대신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하고 귓가에 대고 ‘오늘 많이 힘드니?’라고 묻죠. 그러면 아이들이 ‘어? 이상하다’며 저를 관찰하는 거죠. 보통 아이들이 친구한테 미운 말을 하는 것은 ‘난 쟤가 떠들어서 미워’가 아니에요. 오히려 ‘쟤가 떠드는 것 때문에 선생님이 흥분할 거 같아. 분위기 나빠질 거 같아. 그러니 야, 좀 조용히 해 이 새끼야’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떠들거나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거기 무슨 일이 있니? 무슨 사정이 있니? 좀 소란한 거 같은데 무슨 일인지 좀 알고 싶네’ 이렇게 말을 하면 아이들은 그 언어가 얼마나 안전하고 평화로운지 느끼잖아요. 그러면 그걸 보고 있는 사람도 치유를 받죠. 이런 편안함은 아이들한테 바로 스며드는 거 같아요. 그래서 몇달이 지나니까 누군가 문제 행동을 했을 때도 아이들이 그 애에게 말화살을 쏘는 걸 별로 못 봤어요. 일단 지켜보고 많이 불편하면 ‘야, 선생님이 지금 기다리신다. 너, 무슨 일 있어?’ 이렇게 서로에게 묻더라고요.”
―애들이 떠들어도 차분하고 조용하게 ‘너 무슨 사정 있니’라고 묻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른 행동이잖아요. 그러면 아이들이 얕잡아보고 더 난삽해지지는 않아요?
“그렇게 걱정들을 하는데 저는 학기 초에 아이들과 일대일로 꼭 관계를 맺어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이 선생님이 나를 한 존재로 인정해준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아이들이 저를 보호해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지난해 중2 담임을 몇년 만에 했는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김선희 교사가 지난달 2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구미동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의 마음을 존중하는 대화로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고 있다. 성남/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중2병이라고 할 정도로 그 시기 아이들의 행동이 거친데도요?
“제가 ‘참을 인’자로 버티는 사람이었는데 중학생과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3년 전에 고등학교로 간 거예요, 사실은. 아이들이 다른 데서 억압이 심하니까 조금 여리다 싶은 선생님을 만나면 숙변처럼 그동안 참았던 것을 다 쏟아내거든요. 저로서는 지쳐서, 이제 말이 통하는 고교생들과 지내자는 마음에서 전근했죠.”
―다시 중학교로 돌아왔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군요. 2년 동안에 아이들이 변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제가 달라진 거죠. 전에는 교사로서 아이를 길러내는 대상이라고 생각하면서 관리하고 장악하면서 가르치려고 했죠. 지금은 내가 좀 앞서 살았으니까 좋은 여러 보기 중에 하나가 되어주자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의 존재를 독립적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그런 마음으로 바꾸고 나니까 아이들이 너무 귀해서 실제로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거예요. 옆자리에 앉은 동료 대하듯이 말입니다. 동료가 과제를 빨리 안 했더라도 ‘왜? 그거 안 했어요. 지금까지’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선생님이 뭔 사정이 있었구나’ 생각하죠. 아이들에게도 그 마인드 그대로 대해요. 그렇게 대하니까 아이들로서는 자기를 존중해주는 선생님에게 애기 짓을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웃음) 아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주느냐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을 그에 맞게 만드는 것 같아요. 굉장히 산만했던 아이가 참 많이 괜찮아지는 것을 자주 지켜봤어요.”
김 교사가 바뀐 것은 공감대화를 소개한 책 <당신이 옳다>와 정혜신, 이명수 두 저자를 2018년 중후반에 만나면서부터였다. 공감대화는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면서 충고나 조언(충·조·평·판)을 늘어놓는 대신에 상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대등한 위치에서 공감을 주고받는 대화법이다. 그때가 마침 학부모 상담 기간이어서 그는 학부모들과의 상담에서 공감대화의 치유 효과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2학기 때부터 아이들에게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민이(가명)와의 만남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교사의 길”이 뭔지를 거듭 확인시켜줬다. 대입을 목표로 두지 않고 미용사를 꿈꾸던 민이는 화장 등 손재주가 많았으나, 그런 이유 등으로 인해 선생님들로부터 오히려 안 좋은 평을 받았다. 지도가 어려운 아이로 찍혔던 민이는 담임인 김 교사와 대화를 통해 점차 자존감을 회복해갔으며, 나중에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등 탁월한 공감자로 성장했다. 2학기 말에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대토론회에 나가 보수적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해 복장규제를 완화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기도 했다.
김선희 교사는 지난달 27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주느냐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을 그에 맞게 만드는 것 같아요. 굉장히 산만했던 아이가 참 많이 괜찮아지는 것을 지난해에 지켜봤어요”라고 말했다. 성남/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성적 말고 인간 존재로 바라보니
거부·반항하는 아이가 더 멋져
이상주의자란 비판도 받지만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길 갈 것”
―아이들과의 상담을 2018년에 처음한 것은 아니죠?
“네. 오래전부터 상담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것은 저를 갈아넣는 상담이었어요. 철학이 받쳐주지 않는데 상대의 말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참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선생님, 시험은 잘 보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어요’라는 말에 마음속으로는 ‘양심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좋은 말로 답하거든요. 생각의 품이 넓지 않을 때 이런 상담을 하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이죠. 그러다가 <당신이 옳다>를 만나면서 사람을 대할 때 무엇이 중요한가를 알았죠.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학력지향 사회에서는 제일 중요한 것과 그다음 중요한 것 등등 위계가 있어요. 그래서 ‘얘는 공부는 못해도 인성은 착하니까’라는 식으로 모든 것을 위계 속에 두고 아이들을 바라보죠. 그러나 아이들을 각각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을 하면 그 존재가 가진 모든 역동성이 다 옳은 거잖아요. 그런 시각으로 상담하고부터는 전혀 피곤하지가 않아요. 오히려 ‘아, 이 아이가 이렇게 꿈틀대는 마음과 생각을 지녔구나’라는 생각에서 아이들이 거룩한 존재로 느껴지죠. 아이들이 거부나 저항을 하면 할수록 굉장히 멋있게 보여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다 드러내고 얘기해줄 수 있을까’ ‘나를 정말 신뢰하나 봐’ 싶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저의 존엄도 같이 올라가는 걸 느끼고요.”
그러나 그는 동료들에게는 대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오히려 “부모도 포기한 아이를 왜 감싸고도느냐. 그렇게 하면 다른 아이와의 형평성이 깨진다” “아이들과 대화하느라 중요한 행정업무를 게을리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과의 대화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게 현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요?
“저는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이랑 얘기를 많이 하는데 어떨 때는 ‘한가하게 아이들과 얘기나 하고 있다’라는 눈총을 받죠. 그러나 저는 진짜 배움은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고 봐요. 아이들 머리에 문제집을 쑤셔넣는다고 해서 그들 인생이 크게 바뀌지 않거든요. 수업 시간에 우울하거나 친구에게 까칠한 아이들은 지금 분명히 큰 어려움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깊은 대화는 아니더라도 ‘힘들어 보이던데 이제 좀 괜찮니?’라면서 인간으로서 관계를 조금씩 맺어가는 그런 터치가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학교 현장에는 선생님들이 그럴 시간이 없어요. 수업 마치고 자기 자리로 오면 10분 동안 메신저를 보고 빨리 행정 일을 처리해야 해요. 거기에 빨리 응대를 안 하면 다른 선생님들이 기다리게 되니까 화살이 금방 날아오죠. ‘지금 그럴 때냐. 왜 이렇게 메신저 안 보나 했더니 지금 애랑 수다 떨었어요?’라는 원망을 많이 들었어요. 수다든 깊은 상담이든 아이들하고 대화를 나누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인데 그게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잘 안돼요.”
―이상주의자라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고요?
“네. 많이 듣고 있어요. 이상주의자라는 말은 ‘너는 현실에서 통용될 수 없어’라는 거절의 말이죠. 그래서 엄청 외로운 생활이죠, 사실은.”
―학교의 각종 평가에서도 하위라고요?
“교육 수요자가 점수를 주는 평가는 높지만 성과급 등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에서는 최하위죠.(웃음) 저 같은 마인드를 가진 선생님이 더러 계시는데 다들 마찬가지예요. 이런 분들은 평가를 낮게 받더라도 교육에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묵묵히 실천하죠. 승진이나 보직에는 연연해하지 않고요. 그러나 학교에서 승진도 하고 인정받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픈 젊은 교사들이 따라 하기는 힘든 생활이죠. 현재의 보상 및 교사 평가 체제에서 어떤 선생이 우대받고 환영받는지를 다 알거든요.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한테 ‘당신들도 이렇게 해보세요’라고 할 수 없죠. 그 점이 가장 아쉽죠.”
개발 이전의 서울 염창동과 목동 등 가난한 동네에서 자랐던 그는 어릴 때 자주 배를 곯았으며, 가난으로 인한 주눅 탓에 학교에서는 말이 없는 아이가 됐다. 그가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손을 잡아준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은 그의 이름 석자를 아이들 앞에서 불러서 교실 속에서의 자기 존재를 확인시켜줬으며, 육성회비(교육비)를 못 낸다는 눈총 끝에 전학 간 학교의 5학년 때 담임은 “공부 잘하는 아이가 왔다”며 일부러 친구들 앞에서 추켜세워줬다.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은 학비가 면제되는 국악고를 지원하려는 그에게 음악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정말로 있는지 확인한 뒤 합격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줬다. 무대 울렁증 때문에 대학(한양대 음대) 때 교직을 선택한 그가 ‘좋은 교사’를 목표로 삼은 것은 삶의 경로상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난해 중학교 2학년 한 학생이 지은 삼행시. 김선희 제공
―아이들 상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가평의 한 중학교에서 초임교사로 일할 때 가난해서 굶는 아이, 매 맞는 아이,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 등을 보면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고민하고 있는데 동료 선생님 한분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라는 단체의 교사모임을 알려주면서 수련회에 같이 가자고 이끌어줬어요. 학창 시절에 제가 만난 훌륭한 선생님들의 뒤를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좋은교사운동’에 참여했어요. 마음이 아픈 아이들과 물리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본격적으로 쏟게 된 거죠. 좋은교사운동을 하던 송인수 선생님 등이 2008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들 때는 처음부터 참여해서 활동했고요. 그때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아이가 학교 가기를 싫어했어요.(웃음) 저는 그때만 해도 공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구제기관 중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엄청난 프라이드를 가졌는데 저희 아이가 학교를 안 가고 옆으로 새고 하니까 ‘어, 이것 뭐지’ 하면서 의문을 갖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교육의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고,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됐어요. 큰아이한테 종종 말해요. 엄마가 좋은 사람이 되는 데 네가 많이 기여했다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우리 아이를 통해서 학교에 얼마나 강압적 요소가 많은지를 제가 잘 알게 됐고, 그 덕에 교사로서 자신감을 갖게 됐거든요.”
지난해 한 학급에서 삼행시 짓기를 했다. 그때 한 아이가 ‘김선희’ 글자에 맞춰 “김선희 선생님께서는/ 선한 영향력으로 학생들을 이끌어주시고/ 희망을 주시며 포기라는 절벽에서 학생들을 구해주십니다”라고 적었다. 김 교사는 그 얘기를 전해 듣고는 글자에 맞추느라 그런가 보다고 웃어넘겼지만, 올해 학기 초 아이들이 자신의 별명을 아예 “선한 영향력”이라고 지어 부른다는 얘기를 또 다른 교사한테 들었다. 선생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그 일을 슬쩍 물었더니 “그때 정말 울컥했어요”라고만 답했다. 새 별명을 얻은 직후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각오는 이렇다.
“세상천지가 무능한 교사의 꼬리표를 달아주거나 말거나, 아이들이 달아준 ‘선한 영향력’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꽉 차게 달고 여전히 불합리한 교육 체제에 부적응하는 초임교사의 마음으로 묵묵히 교육 활동에 임할 것이다. 꽃다발같이 안겨 오는 아이들의 환대와 한낮의 폭죽처럼 터지는 뜨거운 교실 속 만남의 감동이 있는 한 누가 뭐라 해도 흥에 겨워 나의 길을 가리라!”
김선희를 만든 시간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녹취 홍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