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8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금융 투자 뮤지컬-아임유’의 한 장면. 배우들이 뮤지컬을 통해 청소년에게 경제와 금융 관련 지식, 진로 등을 쉽게 알려준다.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제공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안미영씨는 “얼마 전 아이가 ‘화장품 말고 화장품회사 주식을 사보고 싶다’고 말하더라”며 “우리 세대만 해도 금융 지식은 20대 후반 지나면서 접했는데 이제 확실히 나이대가 어려진 듯하다”고 말했다. “처음엔 놀랐죠. 주식, 펀드는 어른들의 영역이었잖아요. 한데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경제 개념을 잘 키워줄 수 있는 적기 아닌가 싶어요.”
최근 ‘13살 주식 유튜버’가 천만원을 벌었다고 인증한 영상이 화제에 오르며 아이들을 위한 경제·금융 교육법에 관심 갖는 보호자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은 아이의 ‘머니 센스’는 어떻게 키워줘야 하는지, 시작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아봤다.
“주식을 ‘수익률 게임’ 관점으로 접근하게 하지 마세요. 장기적으로 시장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게 우선입니다.”
곽병찬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이하 투교협) 사무국장의 말이다. 투교협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한국금융투자협회 등 7개 기관이 공동으로 설립한 비영리 투자교육 기관이다.
곽 사무국장은 최근 불고 있는 ‘십대들의 주식 열풍’에 대해 “‘용돈 모아 10만원 투자했는데 금방 50만원으로 뛰었다’ ‘그동안 모은 용돈 100만원을 잘못 투자했다가 다 날렸다’는 등 주식을 사고팔며 생기는 ‘결과’에만 주목하는 건 제대로 된 금융교육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어쩌다 고수익이 날 수 있고 거기서 성취감을 얻을 수는 있지만, 단순히 주식을 넣었다 빼는 거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면 투자가 아닌 투기 성향만 키워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보호자들이 주식이 얼마가 오르고 어느 종목이 좋은지 등 수익률 게임을 염두에 두고 계좌를 개설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곽 사무국장은 “제대로 된 경제·금융 교육을 시작하려면 개별 주식 종목보다는 해당 산업이 속한 시장 전체를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게 보호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무슨 방식으로 이익을 내는지, 수익을 내는 방식이 윤리적인지 등 ‘시장 전체를 조망하는 눈’을 갖게 해주는 게 우선이라는 말이다.
곽 사무국장은 아이가 주식 계좌를 통해 개별 종목을 골라 하나씩 투자하는 방식보다는 이티에프(ETF, Exchange Traded Fund)를 추천했다. 이티에프는 인덱스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다. 개별 주식을 고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펀드 투자의 장점과, 언제든지 시장에서 원하는 가격에 매매할 수 있는 주식 투자의 장점을 가지고 있는 상품으로, 인덱스펀드와 주식을 합쳐놓은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개별 종목보다는 이티에프 등 약간 덩어리가 큰 상태의 금융거래를 통해 기업의 성장과 국제 정세의 흐름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게 맞다는 이야기다.
곽 사무국장은 “코카콜라, 넷플릭스 등 우량 기업의 개별 종목이 당장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개별 종목 투자를 통해 금융을 배우면 경제를 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교육의 측면에서 기업 자체에 관심을 갖는 건 교육적으로도 좋은 일입니다. 다만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에 개별 종목에 투자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죠. 아이를 위해서라면 개별 종목을 사고파는 기술이나 기법만 익히도록 하면 안 되겠지요. 중요한 건 ‘내가 앞으로 살아갈 자본시장 자체에 대한 기초 지식을 어떻게 쌓아갈 것인가’라는 겁니다.”
학생들이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체험관에서 ‘모의 생애 자산 설계’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제공
10년이 넘는 공교육 과정부터 소득이 끊기는 노년기까지 우리 아이가 살아갈 인생은 길다. 고교 졸업 뒤 ‘남은 50년’을 전망할 수 있는 ‘경제 읽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줘야 할 이유다.
<17살,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할 나이>를 펴낸 한진수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는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사회 초년생 시기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신용카드를 무절제하게 쓰거나 ‘친근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대부업체 등을 이용하기 시작하면 20대 초중반부터 ‘경제 낙오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금융 교육을 시작할 때 머니 센스부터 만들어줘야 하는 이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머니 센스는 경제 용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생긴다.
보호자가 아이들 경제교육을 시작할 때 가장 당황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 용어다. 환율, 신용등급, 금리, 주식 투자, 채권, 화폐 등 매일 뉴스에서 듣는 단어지만 막상 그 뜻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 등에 나온 짧은 경제 기사 한두개를 오린 뒤 공책에 붙여 용어 개념부터 차근차근 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 교수는 “경제면 기사에서 모르는 경제·금융 용어에 밑줄을 쳐본 뒤 아이와 함께 뜻을 적어보는 과정을 5~6개월만 해봐도 대부분의 경제 기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이해하면 관심이 생기게 된다. 한글을 배울 때 ‘가나다라’부터 익히듯 아이에게 자기만의 경제 노트를 한권 마련해주면 자연스레 정치, 국제 사회 공부도 된다”고 말했다. “새 학기 앞두고 ‘나만의 경제 노트’ 한권을 만들어보면 좋습니다.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 쓰면서 정리하면 성취감도 더해지고요.”
이때 참고할 수 있는 누리집과 프로그램이 많다. 기획재정부 경제배움이(www.econedu.go.kr)에 접속하면 아동기부터 청소년기 등 생애주기별 경제교육 자료가 보기 쉽게 정리돼 있다. 동영상과 웹툰 등으로 구성된 자료와 시사 경제용어 사전, 나에게 맞는 경제교육 등이 올라와 있어 보호자가 참고하기에도 좋다.
기획재정부 어린이 경제교실 누리집(kids.moef.go.kr)도 활용해보자. 우리 집에도 경제가 있어요, 금융과 신용은 친구예요, 기업 속에 경제가 숨어 있어요, 경제 핵심 개념을 알아보아요 등 항목을 둘러보면 아이가 기초 경제 개념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보호자들이 주식이 얼마가 오르고 어느 종목이 좋은지 등 수익률 게임을 염두에 두고 계좌를 개설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제대로 된 경제·금융 교육을 시작하려면 개별 주식 종목보다는 해당 산업이 속한 시장 전체를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게 좋다.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 제공
한국은행 누리집(www.bok.or.kr)에 접속한 뒤 오른쪽 상단의 ‘경제교육’ 항목을 클릭해보자. ‘온라인 학습’ 범주에서 ‘청소년’을 선택하면 10분 안팎의 동영상이 경제 주제별로 나뉘어 있어 쉽게 공부할 수 있다. 신용회복위원회 신용교육원(www.educredit.or.kr)에서는 어린이부터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신용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어린이 국세청(kids.nts.go.kr), 서민금융진흥원 금융교육포털(edu.kinfa.or.kr)에도 청소년 대상 경제·금융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위 누리집에서 신용 관리의 중요성과 불법대출의 위험성, 세금의 개념 등을 함께 배울 수 있다.
투교협에서는 금융·투자 관련 뮤지컬을 제작·공연하고 웹툰 등을 만들어 전국 고교에 배포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금융투자체험관을 통해서도 투자 원칙과 투자 마인드, 생애주기별 경제 계획 등을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 금융교육 웹툰 ‘슬기로운 금융생활’을 만들었다. 이 웹툰에서는 청소년들이 합리적 금융소비자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초 금융지식을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소재를 중심으로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저축과 투자, 금리와 환율, 위험 관리, 신용 및 부채 관리, 금융회사 활용법과 진로 탐색을 위한 금융권 직무 소개 등 전반적인 금융지식을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된다. 투교협 누리집(www.kcie.or.kr) 등을 통해 볼 수 있고, 전국 2300여개 고교에도 무료 배포돼 있다.
흔히 ‘돈 밝힌다’는 말을 안 좋은 뜻으로 많이 쓰는데, 문자 그대로만 보면 ‘돈에 밝은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우리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수단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 성적만큼 중요한 게 용돈 관리다. 경제와 금융에 관한 기본 상식과 원리를 재미있게 설명한 책 두권을 추천한다.
청소년을 위한 경제 입문서로 <청소년 돈 스터디: 금융 문맹 탈출을 위한 경제 이야기>(책담)가 있다. 생존에 필수인 돈에 관한 모든 것을 쉽게 풀어 써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돈에 관한 상식, 돈의 역사부터 세계 속에서 돈의 구실까지 금융과 경제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10대를 위한 용돈 관리법, 저축하는 법, 주식 투자법 등도 알려준다. 사회·경제면 이슈를 바탕으로 돈과 관련한 궁금증을 설명해 청소년들의 금융 문맹 탈출을 돕는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 중 경제 분야에 나오는 시장과 가격 이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주요하게 다룬 <시장과 가격 쫌 아는 10대: 드디어 만난 보이지 않는 손>(풀빛)은 전기요금, 유명 상표 물건은 물론 휴대전화, 자동차 등 우리가 일상에서 늘 접하는 상품을 통해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고 왜 변동하는지, 그에 따라 사려는 수요와 만드는 공급은 또 어떻게 변하며 다시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기본 경제 개념을 갖추는 데 좋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