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초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
고전 명작 그림책인 <프레드릭>(레오 리오니 지음)에는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옥수수, 짚 따위를 열심히 모으는 들쥐들이 나온다. 그러나 단 한 마리, 프레드릭만은 그 일을 하지 않는다. 다른 들쥐들이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프레드릭은 “나도 일하고 있어.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과 색깔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 모아둔 먹을 것마저 떨어져 힘들어하는 들쥐들에게 프레드릭은 햇살과 색깔 이야기를 들려줘 그들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이 이야기를 접한 초등학생들은 과연 ‘노동(일)’을 뭐라고 생각할까? 실제 수업에서 <프레드릭>을 활용해보니, 앞부분만 본 학생들은 “프레드릭은 일을 하지 않고 놀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뒷부분까지 본 뒤에는 “정신을 쓰는 것도 노동이므로 프레드릭도 일을 한 것”, “다른 들쥐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프레드릭의 일” 등의 반응을 보였다. 육체노동만이 노동이며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라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편견이 깨진 것이다.
이 지도 방법은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펴낸 교사용 지도서 ‘초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 첫머리에 나오는, ‘노동이 뭘까요?’ 단락에 제시된 내용이다. 교사들은 사회 또는 체육 과목 수업에서 이를 활용해 학생들로 하여금 노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도록 가르칠 수 있다. 이밖에 실질적인 삶 속에서 노동과 인권의 문제를 짚고 해고 등 노동자가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노동조합의 의미까지 가르칠 수 있도록 돕는 내용들이 전체 12개 주제 아래 담겼다.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초등학교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 표지
서울시교육청은 23일 이 지도자료를 공개하면서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할 수 있는 노동인권 지도자료를 개발한 것은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서울시교육청은 2018년 고등학교, 2019년 중학교에 이어 이번에 모든 학교급별로 교과과정과 연계할 수 있는 노동인권 지도자료를 갖추게 됐다.
‘민주시민교육 및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그동안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위한 노동인권 교육자료들을 만들어왔다. 다만 초등학교에서는 교육과정 자체에 노동과 관련한 직접적 언급이 아예 없는 등 내용이 부족한 데다, 교과와 연계해 활용할 만한 교육자료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2019년 교사 대상 설문조사에서 71.5%가 “표준화된 교재가 없는 것”을 노동인권 교육의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이 때문에 학생들이 노동의 의미와 중요성을 배우기도 전에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실제로 설문조사 등에서 초·중·고 학생들이 노동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전반적인 경향이 지속적으로 포착되어 온 바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1년부터는 모든 교과 교육과정 내에서 학교 노동인권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개별 교과와 연계된 ‘교과 교육과정 연계 노동인권 지도자료’도 연차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낸 지도자료는 24일부터 관내 모든 초등학교에 배포한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 누리집(
http://studentrights.sen.go.kr-인권교육-교육자료)에서 누구나 내려받아 활용할 수도 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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