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이 자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동입시를 실시하는 등 “잘 뽑는 경쟁”이 아니라 “잘 가르치는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정책 제안이 나왔다. 2035년께엔 전체 수험생의 70%가 최소한의 자격만 갖춰도 이른바 ‘우수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은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서열해소를 위한 3단계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 단체는 강득구·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지난 10~11월 시민과 전문가 214명이 참여하는 대학서열화해소 포럼을 열었는데, 그 결과를 정책 제안으로 종합해 내놓은 것이다.
대학 서열화는 입시 경쟁의 과열을 불러일으키는 등 한국 교육의 핵심적인 문제로 꼽힌다. 2019년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여론조사에서 “대학 졸업장에 따른 차별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58.8%에 달했다. 게다가 앞으로도 대학 서열화에 “큰 변화 없을 것”(58.4%), “심화될 것”(24.4%) 등 부정적인 전망이 압도적이다. 그동안 국공립대를 네트워크로 묶는 국공립대네트워크, 공공성을 확보한 사립대를 지원하는 공영형사립대 등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됐지만, 별다른 추진력을 얻지 못했다.
사교육걱정이 제시한 로드맵은 기존의 고등교육 개혁 담론을 종합해 하나의 공통된 방향을 추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대학네트워크를 구성해 공동입시를 실시하고, 참여 대학에게는 재정 지원을 통해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제고하면서 대학이 가진 교육 자원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공동으로 입시를 실시하면 대학들은 더이상 신입생을 “잘 뽑는 경쟁”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진다. 대신 공동학위·학점교류 등 대학들끼리 교육 자원을 공유하고 정부 지원을 받아 반값·무상등록금을 실시하면, “잘 가르치는 경쟁”에만 집중해 학생들이 원하는 좋은 대학이 될 수 있다는 접근법이다.
어떤 대학들로 네트워크를 꾸릴지에 대해선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1단계(2025년)에서는 국공립대와 희망하는 사립대 등 40여곳이 참여하고, 2단계(2030년)에서 80여곳, 3단계(2035년)에서 160곳 이상 등 대부분의 사립대들도 참여할 수 있게 단계적으로 늘려가자는 것이다.
공동입시는 대학네트워크에 힘을 실어줄 핵심 방안으로 꼽힌다. 일각에선 대입 자격고사 도입 등을 주장하지만, 사교육걱정은 현실성을 고려해 이것 역시 단계별로 접근하자고 제안했다. 1단계에선 대학네트워크 전체 정원(10만명 예상)에 대해 현재처럼 성적 기준으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그 뒤 2단계(15만명)에선 대학 공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성적 기준을 적용하고, 3단계(25만명)에선 고교 졸업 자격에 해당하는 기준만 적용한다는 것이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이므로, 3단계가 되면 전체 수험생 36만명 가운데 70%가량이 대학네트워크에 진학할 수 있을 거라고 전망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대학네트워크 로드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가 이 방안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다. 사교육걱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평균의 3분의 2에 머물고 있는 정부 부담 고등교육비를 평균 수준으로만 끌어올려도 연간 9조원가량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7년 기준 국민총생산(GDP) 대비 고등교육비에서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은, 한국은 0.6%인데 오이시디 평균은 1%다.
사교육걱정은 “대학네트워크 정책을 추진할 때 법으로 제정할 필요가 있으며, 그 법 안에는 예산 확보 방안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적인 공감을 형성하기 위해 ‘대학서열해소 국민행동’ 캠페인을 전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법안을 마련하는 등 법제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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