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 미리벌중학교 학생들이 ‘2020 온라인 학교스포츠클럽 축전’(이하 온라인 스포츠 축전)에 참여해 턱걸이와 탁구를 하고 있다. 최태호 교사(오른쪽 아래)가 학생들의 운동 영상을 ‘학교스포츠’ 누리집에 올리고 있다. 경상남도교육청 제공
“선생님, 성공했어요! 9분 32초!” “저도요! 11분 3초!” “저는 자유투 14개 연속 성공이요!”
경남 창원에 있는 용원중학교 3학년 김유민 학생과 조한결 학생이 자신의 플랭크 신기록을 세운 뒤 네이버 밴드에 글과 영상을 올렸다. 농구 자유투를 연속으로 14개 성공한 이주호 학생도 실시간으로 글을 남겼다. 플랭크는 머리, 어깨, 엉덩이, 무릎, 발목을 일직선으로 유지하는 맨몸운동이다.
이 학교 김광태 체육교사가 운영하는 수업 밴드에는 김 교사의 운동 시범 영상과 학생들의 과제 영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체육 수업 현장을 온라인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 학생들은 11월4일부터 10일까지 경상남도교육청에서 진행한 ‘2020 온라인 학교스포츠클럽 축전’(이하 온라인 스포츠 축전)에서 종목별 학교 대표로 뽑혀 전국 대회에도 나갔다. 온라인 스포츠 축전은 더 많은 아이들의 체력을 키워주기 위해 대한체육회 등 각종 스포츠협회에 학생선수로 등록한 사실이 없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참여 기회를 줬다. 11월16일부터 12월12일까지는 교육부 주관으로 ‘2020 비대면 전국학교스포츠클럽 축전’이 열린다.
경남 창원 용원중학교 학생들이 플랭크와 농구 자유투 연습을 하고 있다. 경상남도교육청 제공
운동장의 함성 소리는 사라졌지만…
코로나19로 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의 함성 소리가 사라졌다. 교실에서 점심시간만 고대하다 기다렸다는 듯 뛰쳐나가 축구, 피구를 하던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으로 ‘방콕 신세’가 됐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체육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아이들은 신나게 달리고, 뛰고, 땀 흘리며 한바탕 웃고 나야 오히려 힘이 생긴다. 그런 아이들에게 ‘체육 시간 실종’은 올 한해 가장 힘든 일이었다.
조한결 학생은 “체육 시간이 있는 날이면 친구들이랑 아침부터 설렜다. 한데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못 가고, 다 같이 뛰면서 운동할 기회가 없어져 실망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비대면 체육대회’ 소식을 알려주셨다. 집에서 연습하고 운동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올리면 전국 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다고. 선생님이 운동 자세와 방법 등을 밴드에 자세히 올려주시니까 충분히 가능하더라.”
김 교사는 “원래 점심시간에 반별로 축구, 피구 등 리그전도 했는데 올해 그걸 못 하게 돼 아쉬웠다”며 “학생들도 체육대회 등 모든 스포츠 대회가 없어졌다며 실망했는데 온라인 스포츠 축전이 열린다고 하니 열성을 다해 참가했다”고 말했다. “이(e)학습터 플랫폼에 체육 수업 영상을 올려놓으면 아이들이 충실히 연습을 하더라. 등교하는 날에는 학교에서 자세히 지도해줬다. 온라인 스포츠 축전에 15~18개 종목이 있어 평소 운동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학생들의 흥미와 실력에 맞게 참여
온라인 스포츠 축전 종목을 다양하게 마련하니 학생들도 “저도 한번 해볼래요!”라며 신청을 많이 했다. 왕복달리기, 줄넘기, 배드민턴, 배구, 축구부터 민속 운동인 제기차기, 저글링, 스포츠스태킹(컵 쌓기), 버피텐(버피 테스트를 10회 연속하는 것), 플랭크, 치어리딩, 한궁(韓弓)까지 있어 자신의 흥미와 실력에 맞게 참여했다.
지도교사가 참여 학생들의 운동 수행 영상을 ‘학교스포츠’ 누리집(http://sportsclub.or.kr)이나 해당 앱에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순위 경쟁보다는 참여 자체에 의미를 두는 스포츠 축제인 만큼 전국 대회에 나갈 상위 8명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비경쟁 방식으로 열린다.
비대면 체육대회라는 콘셉트에 맞게 배드민턴의 경우 초등은 셔틀콕 토스, 중·고등은 벽치기로 세부 종목을 정했다. 셔틀콕 토스는 1분간 제자리에서 앞쪽과 뒤쪽으로 번갈아 가며 셔틀콕을 공중에 띄워 성공한 횟수를 측정하고, 벽치기는 30초간 셔틀콕 벽치기를 해 성공한 횟수를 세는 방식이다.
플랭크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좋은 ‘코어 운동’이다. 이 종목에 참여한 김유민 학생은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만 있을 때 답답했는데 다른 도구 없이 맨몸으로 코어를 키울 수 있는 운동을 통해 학교 대표가 됐다”며 “전국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 플랭크를 잘하기 위한 다른 맨몸운동들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저글링은 협응성을 비롯해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힘을 기르는 운동이다. 저글링 대표가 된 3학년 윤인형 학생은 “제자리에서 공 3개를 교차하며 저글링을 하는데, 순발력이 매우 필요한 운동”이라며 “방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접근하기 쉬웠다. 온라인 스포츠 축전에 참가하면서 생활 속 운동과 취미 생활을 찾아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고 전했다.
경남 창원 용원중학교, 미리벌중학교 학생들이 온라인 스포츠 축전 종목인 한궁, 스포츠스태킹(컵쌓기), 줄넘기, 저글링 연습을 하고 있다. 경상남도교육청 제공
교사가 휴대전화로 촬영해 올려줘
단체 운동인 농구도 세부 종목을 자유투로 한정해 비대면으로 ‘따로 또 같이’ 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참가 학생이 연속으로 자유투를 던지고 실패 직전까지 성공한 횟수를 측정하는 식이다.
이주호 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너른 코트를 누비는 것도 좋지만, 코로나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좋아하는 농구를 하고 기록도 세우고 출전까지 할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밀양에 있는 미리벌중학교 1학년 김태경 학생은 온라인 스포츠 축전을 계기로 스포츠스태킹에 빠졌다. 3-6-3 방식, 6-6 방식, 1-10-1 방식을 차례대로 수행하는 컵쌓기 종목인데 ‘손으로 하는 육상경기’라고도 한다.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학교에서 정규 체육 수업 시간에 이 종목을 배운다.
김태경 학생은 “초를 다투며 빠르게 움직여 컵을 쌓아나가는 게 매력적인 운동”이라며 “친구들과 게임 대신 하기에도 좋은 운동이다. 온라인 체육대회를 통해 다양한 운동 종목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학교 최태호 교사는 “평소에는 집에서 연습하고 학교 오는 날에 강당에서 집중적으로 수업했다”며 “온라인 스포츠 축전에 올릴 영상을 잘 찍어주기 위해 삼각대, 기록용 전자시계 등을 활용하며 또 다른 체육 수업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11월27일에 전국대회 영상을 모두 올렸다. 일부 종목은 12월12일에 유튜브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실시간 본선 경기를 치른다. 학생들도 새로운 방식의 체육대회를 신기해하고 있다.”
‘거리두기’ 지키며 방역도 철저히
온라인 스포츠 축전이지만 대회 규정은 오프라인 못지않다. ‘우리는 스포츠로 방역한다’를 슬로건으로 진행한 만큼 운동과 방역 모두에 만전을 기했다.
참가 학생의 소속 학교에서 촬영할 때는 응급환자 신속 대응 체계를 마련한 뒤 진행했다. 영상 촬영은 개인 촬영을 원칙으로, 참가 학생의 신분 확인과 거리 측정, 수행 모습 등을 한 번에 연속해 촬영한다.
심판이 정확하게 계수할 수 있는 정도의 화질(Full HD)로 촬영하고 영상이 흔들리거나 끊기지 않도록 유의하며, 촬영 영상을 부적절하게 편집한 경우가 확인되면 참가 무효 처리는 물론 다음해 축전 참여 기회를 제한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스포츠의 기본인 ‘페어플레이 정신’이 온라인 대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심현호 경상남도교육청 체육예술건강과장은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이번 온라인 스포츠 축전은 학생들의 건강체력 증진을 위해 마련됐다”며 “활기찬 학교 분위기를 만들고 새로운 방식의 비대면 학교스포츠클럽 문화가 뿌리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체육교과교육연구회 등 인터넷 카페를 통해 수업 방식을 고민하고 공유하는 등 팬데믹 시대에 학교 체육 수업을 이어가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김광태 용원중학교 교사는 “코로나19 이전에도 학교 체육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 수업 중 가장 좋아하는 게 체육인데 코로나 때문에 위축된 면이 없지 않았다”며 “온라인 수업이 지속되면서 학생들의 신체활동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체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양한 수업 방식을 연구하면서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비대면·온라인 방식으로도 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교사로서 기쁜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