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6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회의실에서 교육부의 대입 수능 정시 비율 확대 발표 관련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대입 정시 전형에서 고등학교 교과에 대한 평가를 반영하겠다는 서울대학교의 2023학년도 입시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의 전형에 수시 전형 요소를 섞는 것은 정시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교육계 일부에선 ‘문제풀이’ 일변도였던 정시의 부작용을 완화하고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유도할 수 있는 ‘묘수’라는 평이 나온다.
①서울대 입시전형 어떻게 바뀌길래?
대입 사전예고제에 따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매 입학년도가 시작하기 1년10개월 전에 각 대학들의 입학전형시행계획을 취합해 발표한다. 그러나 서울대는 지난달 28일, 대학 차원에서 ‘2023학년도 입학전형’을 일찌감치 발표했다. 전형 내용에 변화가 있어, 사전에 예비 수험생들에게 알리겠다는 취지였다.
핵심은 ‘수능 100%’로 운영해왔던 정시 일반전형에 ‘교과평가’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1단계에서는 수능 점수만으로 2배수를 선발 한뒤, 2단계에서 수능 80점과 교과평가 20점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또 정시에도 학교장 추천 성격의 ‘지역균형전형’(지균)을 도입해 수능 60점과 교과평가 40점으로 평가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교과평가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의 교과학습발달상황을 반영하며, 3등급 절대평가를 거쳐 기본점수인 15점부터 20점까지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런 방침이 나오자, 정시확대추진 전국학부모 모임 등은 지난 달 3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대 전형 예고안의 교과평가 방식은 정량평가가 아닌 깜깜이 방식의 정성평가”라고 비판했다. 학생부에 기재된 이수 교과목, 내신등급, 세부특기사항 등을 기반으로 등급을 매기는 정성평가 방식은 평가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크다는 주장이다.
②헌법소원심판 청구한 고등학생…누가, 왜 반발하나?
최근 경기도의 한 일반고 3학년생은 서울대가 “신뢰보호의 원칙에 반하여 평등권 등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학생은 “수능 시험 성적 외에 고교 학업성적 등이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 신뢰하고 고등학교 수업 불출석 및 정기고사, 수행평가 등에 일체 응시하지 아니한 채 수능 시험 공부에만 불철주야 매진해왔다”며, “신뢰보호를 위해 교과평가를 도입하려면 현재 중학교 3학년생이 치르게 될 2024학년도에서부터나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서울대 입시안을 “편법적 수시증원방침”이라며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학종 공정성 논란 때문에 지난해 정부가 서울대를 비롯한 16개 대학에 “수능위주전형으로 신입생 선발하는 비율을 40%까지 확대하라”고 권고했는데, 이번 서울대 입시안은 “그런 방향에 역행한다”는 주장이다. 또 “내신의 실패로 재수중인 수많은 재수생들의 기회의 사다리를 없애고, 비교내신을 사용하는 검정고시 졸업생들의 진학이 원천봉쇄된다”고도 주장했다. 현재 학종 등에선 검정고시나 국외 학교 출신자 등 학생부가 없는 지원자는 대교협이 제시하는 양식에 따라 대체서류를 내도록 되어 있는데, 서울대 정시 일반전형에서도 이렇게 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서울대는 “수능위주전형 비율을 40%로 확대하라는 정부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므로, 정부 방침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전형 방식을 일부 바꿨을 뿐 선발 비율은 그대로라는 주장이다. 또 수능 중심의 신입생 선발에 따라 지역이나 고교유형, 소득계층 등에서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심하므로, 그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는 학종, 지균 등을 선도적으로 마련한 바 있고, 지난 2022학년도 정시전형 발표에서도 수능 100%에 교과 이수 내용에 따라 가산점을 주는 방식의 ‘교과 이수 가산점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서울대 내부 관계자는 “지난해 정부가 권고한 ‘정시 40% 확대’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맞다. 다만 정시에 정성평가, 지균을 도입하는 방안 자체는 이전부터 논의해오던 것”이라고 말했다.
③정시 대 수시 논쟁 다시 촉발되나?
교육부는 “아직 서울대 입시안이 정부 방침에 어긋나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내년 4월 대교협 차원에서 확정된 시행계획이 나와봐야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서울대가 교육부의 애초 권고 사항인 “수능위주전형 40%”를 지키는 한, 정시에 정성평가를 일부 도입한 방식 자체를 문제삼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과거에도 정시에 수능과 내신이 함께 반영됐으며, 지금도 일부 대학은 정시에서 면접이나 학생부 평가를 하고 있다. 교육부 담당자는 “수능에 다른 요소를 일부 더한 전형도 ‘수능위주전형’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입시정책과 관련해서는, ‘문제풀이를 통한 한 줄 세우기’가 우리 교육의 주된 병폐라는 주장과 이를 해결하겠다고 도입된 학종 등 정성평가가 더 불공정하다는 주장 등이 팽팽하게 맞서 왔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해 내놓은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을 통해 정시 확대 쪽에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수험생들이 선호하는 서울 지역 16개 대학에 수능위주 전형을 40%까지 확대하도록 한 것이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수는 “정부 방침에 따라 정시 비중이 늘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전형 방식 자체를 아예 새롭게 다듬었다. ‘정시 대 수시’ 구도에 갇히지 않고 고교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일종의 묘수”라고 평가했다. 서울대 내부 관계자는 “이번 안은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 극단적으로 수능에만 매달려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크게 반발을 살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성룡 에스티유니타스 교육연구소장은 “서울대가 내년 4월 시행계획 발표 전에 먼저 분위기를 떠보는 듯한데, 정시 진학 비율이 높은 이른바 ‘교육 특구’나 특목고·자사고 등에서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안보인다. 절대평가 방식 등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특별히 더 불리할 건 없다는 판단일 것”이라고 짚었다. 유 소장은 “입시는 대학 자율로 결정할 일”이라 전제한 뒤, “현재 중학교 3학년생이 대상인 2024학년도부터 도입한다면 아무런 반발이 없었을 것이며, 정시 지균의 경우 현재 운영 중인 수시 지균과 어떻게 구분되는지 뚜렷한 기준과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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