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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권력’과 ‘은둔’…내가 프랑켄슈타인이라면 무엇을 선택할까?

등록 2020-11-09 17:54수정 2021-08-06 12:14

브이아르(VR) 결합한 미래형 토론수업

5~6명이 팀 꾸린 뒤 문제 해결
협동학습형 가상현실 토론 교육

철학·과학·문화예술 등
깊고 다양한 주제에 쉽게 접근

게임처럼 접근해 흥미 유발
사고력·말하기 실력 ‘쑥쑥’
지난해 6월 장위행복누림도서관 개관식에서 학생들이 ‘포룸 브이아르’(Forum VR)와 함께하는 미래형 토론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스튜디오코인 제공
지난해 6월 장위행복누림도서관 개관식에서 학생들이 ‘포룸 브이아르’(Forum VR)와 함께하는 미래형 토론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있다. 스튜디오코인 제공

“권력을 가지게 되면 왜 폭력을 쓰게 될까?” “난 장갑을 선택할래. 힘을 갖는다는 게 꼭 ‘나쁘다’라는 의미일까?” “폭력과 권력은 다른 거잖아.” “거짓말도 폭력일 수 있어.”

초등 4학년 이서율(신남초), 이기혁(구로초) 학생과 노윤진(영림중1), 이하은(구로중1) 학생이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민서(구로초4)와 하영이(구로초4)도 한마디씩 보탠다. “우리는 망토를 선택했어. 은둔하는 삶이 꼭 남을 속이는 것만은 아니잖아.”

지난 4일 오후 3시30분, 서울 구로구에 있는 구립 온누리도서관에서는 ‘이야기 속으로 순간 이동! 온누리와 함께하는 브이아르(VR) 토론’ 수업이 한창이었다. 주제는 ‘프랑켄슈타인: 권력과 은둔’. 이 이야기에서 장갑은 권력을 뜻하고 망토는 은둔을 의미한다.

브이아르란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의 약자로 가상현실을 뜻한다. 브이아르는 인간의 시각, 청각 등 감각을 통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내부에서 가능한 것을 현실인 것처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기술의 하나다.

지난 4일 서울 구로 구립 온누리도서관에서 열린 ‘온누리와 함께하는 브이아르(VR) 토론’ 수업 장면.
지난 4일 서울 구로 구립 온누리도서관에서 열린 ‘온누리와 함께하는 브이아르(VR) 토론’ 수업 장면.

망토와 장갑, 무엇을 선택할까?

학생들은 프랑켄슈타인이 망토를 선택하면 정체를 감출 수 있고 장갑을 선택하면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얻게 된다는 스토리의 ‘포룸 브이아르’(Forum VR) 체험을 한 뒤 토론을 진행했다.

포룸(Forum)은 말 그대로 토론회라는 뜻으로, 고대 로마 도시의 공공 광장인 포룸을 뜻한다. 가상현실을 통해 토론이 열리는 게 포룸 브이아르인데, 학생 5~6인이 동시에 참여하는 협동학습형 가상현실 토론 콘텐츠다. 체험 학생 1인과 참가 학생 5인이 주어지는 질문과 상황에 대해 토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학습 게임을 가상현실 기술로 구현한 것이다.

안경처럼 머리에 쓰고 가상현실 영상을 즐길 수 있는 장치인 ‘에이치엠디’(HMD, 머리 착용 디스플레이)를 착용한 학생은 다른 학생들이 실시간으로 협력해 행동을 결정해주면 그에 따라 가상현실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학생들뿐 아니라 색다른 토론 수업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도 “토론 수업이라면 지루하게 생각하는 아이가 가상현실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읽기, 말하기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체험 학생은 참가 학생들의 선택으로 가상 월드를 체험하는 주인공이 되고, 참가 학생들은 ‘판단과 선택을 하는 자’로서 체험자의 스토리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참가자와 체험자가 함께 스토리를 결정하고 퍼즐을 풀면서 팀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다.

프랑켄슈타인뿐 아니라 ‘오즈의 예술가들’ ‘원더랜드, 앨리스의 선택은?’ 등 철학과 과학, 문화예술을 다룬 토론 콘텐츠가 있다. 각각의 주제를 통해 공평과 공정, 실리와 의리, 개인 존중, 생명 존중, 과학과 윤리의 개념, 공동 창작의 의미 등에 관해 가치판단을 해볼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예로 들면 그 안에 담긴 세부 여섯가지 주제를 통해 안락사, 권력과 은둔, 인간형 로봇, 의인과 방관자, 폭력과 비폭력, 생명윤리 등에 대해 토론 주제를 도출해 생각 나누기를 할 수 있다.

이하은 학생은 “프랑켄슈타인 브이아르를 체험하면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는가?’ ‘배척하는 사람들에 맞서 지배할 것인가, 은둔할 것인가’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곧바로 토론을 시작했다면 어려웠을 과학·철학 주제들을 가상현실 속 캐릭터와 함께 협력하며 풀어 나가는 경험이 새로웠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는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잖아요. 집중이 안 될 수도 있고요. 그런데 한시간 동안 포룸 브이아르 체험을 한 뒤 토론 시간을 가지니 우리끼리 대화가 더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포룸 브이아르는 수업 시작과 동시에 아이들이 시각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완성도 높은 동화풍 그래픽과 성우들의 자연스러운 목소리 연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날의 토론 주제에 도달하게 된다.

지난 4일 서울 구로 구립 온누리도서관 ‘온누리와 함께하는 브이아르(VR) 토론’ 수업에서 학생들이 ‘권력과 은둔’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구로 구립 온누리도서관 ‘온누리와 함께하는 브이아르(VR) 토론’ 수업에서 학생들이 ‘권력과 은둔’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생명 창조’를 주제로 ‘인간형 로봇을 개발해도 될까?’에 관해 토론이 펼쳐지면 찬성과 반대 입장이 자연스레 나뉘며 친구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인간형 로봇이 개발되면 ‘인간에게 더욱 여유가 생길 것이다’ ‘위험한 일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입장과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고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라는 부정적인 입장으로 나뉘지만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고 상대편 주장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끊임없는 생각과 고민이 이어지는 방식이다.

참가 학생들의 선택이 팀이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아이들 대부분이 체험이 끝난 뒤 한번 더 해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다.

포룸 브이아르에 나오는 협동학습형 질문에 답하고 있는 학생들. 약 50분에 걸쳐 친구들과 함께 가상현실 체험을 한 학생들은 토론 안건 이해도가 높아진다.
포룸 브이아르에 나오는 협동학습형 질문에 답하고 있는 학생들. 약 50분에 걸쳐 친구들과 함께 가상현실 체험을 한 학생들은 토론 안건 이해도가 높아진다.

높은 몰입도와 활발한 토론

프랑켄슈타인을 설득해볼 것인지, 위험에 처한 아이 캐릭터를 구해줄 것인지, 빅터 박사에게 미래에 관해 물어볼 것인지 등을 학생들이 태블릿으로 결정해 터치하면 기기를 쓴 학생은 가상현실 속에서 선택의 결과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포룸 브이아르에 나오는 협동학습형 질문들은 모두 토론 주제인 ‘권력과 은둔’과 관련이 있다. 약 50분에 걸쳐 친구들과 함께 가상현실 체험을 한 학생들은 토론 안건 이해도가 높아진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실제 협력해 결정해본 뒤 의견을 나누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장갑을 선택한 경우, 망토를 선택한 경우 등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오는데, 이 과정에서도 학생들은 활발한 생각 나누기를 진행한다. 강사가 “의견을 제시해보세요”라고 권하기 전에 아이들은 이미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가상현실 속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를 실시간으로 보고 느꼈기 때문에 토론 주제에 관한 아이들의 몰입도는 매우 높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모습을 숨겨야만 했을까요?” “프랑켄슈타인은 정말 인간이 되고 싶었을까요?” 등 강사가 생각의 다리가 되어주는 질문들을 던지자 “프랑켄슈타인은 차별받기 싫어서 인간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차별하는 건 왜 나쁜 걸까?” “숨어 산다고 해서 차별을 안 받는 게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불평등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등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갔다.

공공도서관서 입체 수업으로 활용

미래형 토론 프로그램인 포룸 브이아르는 4차시에 걸쳐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각 50분 기준으로 ‘1차시: 브이아르 체험―친구들과 함께 가상현실 체험’ ‘2차시: 토론 안건 이해―함께 토론할 내용 파악하기’ ‘3차시: 토론 진행―준비 자료를 가지고 토론 시작’ ‘4차시: 브이아르 재체험―포룸 브이아르를 다시 체험해본 뒤 지난번과 비교하기’ 등으로 구성한다.

2차시와 3차시 사이에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준비하는 시간을 마련해 공공도서관에서의 입체적인 수업이 가능하다.

각 주제별로 의리, 반성, 가치관, 선과 악, 공평, 권력과 은둔 등 활동지가 있어 학생들이 생각을 정리하기 좋다.

이날 토론 수업에서는 활동지 뒷면에 있는 ‘함께 읽어요’ 코너를 통해 진시황의 분서갱유, 일제의 조선총독부 건립, 영화 <스파이더맨> 줄거리,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들이 함께 읽었다.

이서율 학생은 ‘지배와 권력’을 뜻하는 프랑켄슈타인의 ‘장갑’과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권력의 남용’과 연관 지어 의견을 내놓았고, 이기혁 학생은 은둔을 의미하는 프랑켄슈타인의 ‘망토’와 스파이더맨의 초능력을 연결해 활발한 토론을 이어갔다. 은둔에 관한 주제가 나오자 학생들은 ‘숨긴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거짓말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을 내놨다.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토론의 주제가 다양하고 깊어졌다.

수업을 진행한 남해경 강사는 “발언권 얻기, 경청하기를 원칙으로 정한 뒤 학생들이 이야기를 듣는다. 가상현실과 토론을 연계한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철학과 과학, 문화예술에 관해 풍부한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고 전했다. “다수의 학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요. 가상현실과 아날로그형 토론 수업이 적절하게 어울려 토론을 어렵게만 생각했던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새로운 강의 방식을 통해 아이들이 깊이 사고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보람되고요.”

포룸 브이아르는 학교와 공공도서관 등에 설치돼 운영 중이다. 구로구립온누리도서관을 비롯해 은평구립도서관, 고덕평생학습관, 정독도서관 등에서 체험해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지난 10월부터 다시 운영 중이며 다른 도서관을 비롯해 교육 사각지대 등에서도 2021년 2월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포룸 브이아르를 개발한 ㈜스튜디오코인은 2017년과 2019년 이(e)-러닝 우수기업 콘테스트 에듀게임 및 콘텐츠 분야에서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받는 등 가상현실과 교육콘텐츠를 접목한 사업을 진행 중이며 도서관과 공공기관 등에 가상현실과 결합한 미래형 토론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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