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동영상 콘텐츠인 ‘전교조 티브이’에 출연 중인 선생님들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영상 스튜디오에 모여 방송 시작 인사를 함께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별명으로 ‘라미쌤’, ‘수달쌤’, 뒷줄 왼쪽부터 ‘길동쌤’, ‘마로쌤’, ‘장첸쌤’, ‘튜브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
“아니, 이런 옷을 입자고? 너무 부끄럽지 않아요?” “학교 내 ‘갑질’을 고발하는 콘셉트니까 어울릴 것 같아서요. 그런데 다음 기획회의는 언제 하죠?” “유치부 쌤들 녹화 끝나면 다 같이 일정 맞춰봐요.”
지난 9일 저녁,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영상 스튜디오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내뿜는 에너지로 들썩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20~30대 교사들인 이들은 한달에 두세번씩 이곳에 모여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만들고 있다. ‘전교조’라고 하면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이들이 만드는 ‘
쌤쇼’ 영상들은 대체로 가볍고 발랄하다. 예컨대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다양한 춤을 교사들이 직접 춰보기도 하고 학생과 동료 교사가 멋대로 ‘외모 평가’를 하는 데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예비 교사나 초임 교사들을 위해 임용시험이나 교직생활에 대한 ‘깨알 팁’도 준다. 덕분에 “전교조라 하면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재밌다는 걸 알게 되어서 너무 좋다”는 댓글들이 달린다.
전교조는 우리나라 교육운동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조직이지만, 갈수록 젊은 교사들의 가입이 줄면서 그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다. 과거 10만명에 육박했던 조합원 규모는 현재 5만여명 수준으로 줄었다. 30대 중반인 ‘길동쌤’(중등)은 “‘2030 전교조 교사’는 조직 안에서나 밖에서나 희귀한 존재로 취급받는다”고 말했다. 최근 대법원 판결에 따라 7년 동안 조직의 발목을 잡았던 ‘법외노조’ 문제가 해소되면서 전교조가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도 ‘조직 확대’로 꼽힌다.
전교조티브이(TV)에 출연중인 교사들이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다음 기획회의 날짜를 정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최근 몇년 사이 전교조에 가입한 젊은 교사들은 “전교조에 덧씌워진 ‘강성’ 이미지가 젊은 교사들의 가입을 가로막고 있다”고 짚었다. 20대 후반인 ‘마로쌤’(초등)은 “전교조 하면 반자동적으로 ‘투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승진도 어렵고 관리자들도 싫어하는데 왜 전교조에 가입했냐’는 반응도 많이 겪었다”고 했다. ‘튜브쌤’(초등)은 “일상적인 학교 현장에서 전교조 조합원들이 그 누구보다 교육에 열정적인데, 언론에서는 그런 노력들보다는 삭발, 단식 등 법외노조 처분 취소 투쟁만을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다루더라”고 지적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함께 무엇을 하기보단 각자 고립된 채 경쟁을 해야 하는 ‘2030 세대’의 환경”이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에 가입해 활동하는 걸 꺼리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도 풀이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동영상 콘텐츠인 ‘전교조 티브이’ 가운데 하나인 ‘쌤쇼’. 유튜브 갈무리
그럼에도 이들은 전교조가 강조해온 ‘참교육’ 정신이 여전히 젊은 교사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교사 4년차인 ‘장첸쌤’(중등)이 지난해 전교조에 가입한 이유는 “여태껏 만나본 교사들 중 학생 중심으로 생각하는 ‘좋은 교사’들은 대부분 전교조 조합원이었다”는 것이었다. 유치원 교사인 ‘수달쌤’과 ‘라미쌤’은 “유아교육 현장이 다른 학교급에 견줘 여전히 열악한데,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단체가 바로 전교조였다. 실제로 전교조 활동 덕분에 유치원 관리자의 ‘갑질’ 등 현장의 문제점이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라고 했다. 튜브쌤은 “교육이 가능한 학교, 곧 아이들과 온전히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참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교조티브이(TV)에 출연중인 장첸쌤(별명.오른쪽부터), 수달쌤, 팩쌤이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녹화를 진행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할 것도 많다”고 젊은 교사들은 입을 모은다. 길동쌤은 “압도적인 불합리와 외부의 탄압에 맞서 투쟁해왔던 과거와는 다르게, 젊은 교사들에겐 드러나지 않는 모순들을 찾아내어 바꿔나가는 것이 더 큰 과제”라고 말했다. 더 이상 ‘당위’를 앞세운 구호에만 기대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공정성’을 앞세워 줄세우기를 압박하는 구조 속에서 참교육이란 이상이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따져 묻는 것이,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 활동을 시작하는 동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마로쌤은 “학교에서의 줄세우기가 입시제도, 대학 서열화, 소득·임금 등 전체적인 사회구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종합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참교육 실천은 구호에만 그치게 된다. 사회 일각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전교조가 사회적인 발언과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맥락”이라고 말했다.
물론 ‘강경한 투쟁과 운동’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스스로 쇄신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의기투합하여 한달에 두세번씩 모여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해 배포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들은 “전교조 교사라고 해서 언론이나 포털 댓글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머리띠 두르고 ‘투쟁’을 외치는 게 아니라, 그저 아이들과 함께 즐겁고 재미있는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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