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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한 가지 말로 묶지 말고 다양한 우리말로 표현해요

등록 2020-09-07 18:17수정 2020-09-09 11:46

[쉬운 우리말 쓰기]

연재 | 9회 박물관 속 우리말

우리는 대부분 입고, 쓰고, 신고, 두르고, 매고, 걸고, 낀다는 다양한 표현을 두고 ‘착용한다’ 한 가지 말에 묶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서화가이자 사진가인 황철의 산수도. 부산박물관 제공
우리는 대부분 입고, 쓰고, 신고, 두르고, 매고, 걸고, 낀다는 다양한 표현을 두고 ‘착용한다’ 한 가지 말에 묶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서화가이자 사진가인 황철의 산수도. 부산박물관 제공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국립박물관은 다시 문을 닫았다. 일상은 1차 확산 때보다 더 불편해졌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만남의 소중함, 이동의 자유가 주던 기쁨 같은 것을 떠올리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바이러스가 어서 퇴치되기를 기다린다. 하루빨리 그렇게 되어서 사람은 시간 속에서 점점 발전해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 박물관으로 가서 아주 오래된 유물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삶의 기본이 무엇인지, 그 기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박물관에 두 발로 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섭섭함을 온라인 박물관 구경으로 달랬다. 기차를 타는 대신 컴퓨터를 켜서 부산박물관 속으로 가보았다. 전시관을 둘러보지는 못하지만 소장품들은 볼 수 있다.

소장품을 보기 전에 올해 세번 열렸던 특별전시회 소개를 먼저 보았다. ‘경자년 쥐띠해 테마전시: 근면과 예지의 동물, 쥐’ ‘제1회 신수유물 소개전: 지도가 그림에 스며들다’ ‘특별전: 가야본성 칼과 현’. 그런데 신수유물? 무슨 뜻일까? 전시 설명문을 읽어 보니 아래와 같다.

* 신수유물 소개전은 부산박물관이 기증받거나 구입한 유물과 보존처리가 끝난 유물 중 시민들에게 공개하지 못한 유물을 새롭게 소개하는 전시로, 이번에 소개할 유물은 ‘진주성도’ 10폭 병풍이다. ―2020년 제1회 신수유물 소개전 ‘지도가 그림에 스며들다’ 전시 설명문 중에서

설명문을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라 더 검색해보니 ‘신수 유물’이 나온다. 한자를 보니 무슨 뜻인지 알겠다. ‘새로 들여온 유물’, 박물관에서 더러 쓰는 표현 같은데, 우리말로 ‘새 유물 소개전’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소통을 가로막는 저런 표현을 쓸까.

부산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살펴보는데 부산시 지정 문화재 중 옷 한벌이 눈에 띄었다.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박기종의 통상복 중 프록코트. 부산박물관 제공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박기종의 통상복 중 프록코트. 부산박물관 제공

* 박기종 일괄 유물 중 통상복으로 입었던 프록코트 1점, (…) 박기종은 1907년에 생을 마감했으나, 프록코트를 입고 지인들과 찍은 사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통상복은 박기종이 생전에 착용을 하였던 의상으로 당시 관직에 있던 사람들의 의복은 대부분 이미 서구식으로 변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기종 통상복 일괄(부산광역시 지정 민속문화재 제9호) 중 프록코트 설명문 중에서

이 문장에서 ‘착용을 하였던’이란 구절에 눈길이 갔다. 요즘 우리가 ‘착용’이란 말만큼 자주 듣고 쓰는 말이 있을까. ‘마스크 착용’은 일상이 되었다. 이 ‘착용’이 문제다. 요즘처럼 착용이란 말을 자주 쓰기 전에는 마스크는 ‘쓴다’고 하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사람 몸에 걸치는 온갖 것 중 옷은 입고, 모자나 안경이나 마스크는 쓰고, 양말과 신발은 신고, 목도리와 스카프는 두르고, 허리띠는 매고, 목걸이는 걸고, 반지는 낀다고 한다. 이렇게 ‘입고, 쓰고, 신고, 두르고, 매고, 걸고, 낀다’는 다양한 표현이 ‘착용한다’ 한 가지 말에 묶여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착용’과 함께 풍부한 우리말 표현을 묶어버리는 말로 ‘접한다’를 들 수 있다.

* 황철(黃鐵, 1864~1930)은 서화가이자 사진가로 자는 야조(冶祖), 호는 어문(魚門)이다. 1882년 상하이에서 사진 촬영술을 접하고 사진기를 구입하였다. 이후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진퇴를 거듭하면서 중국과 일본 등을 외유하며 신문물을 접하였다. ―산수도(기타 중요소장유물) 설명문 중에서

촬영술은 배우고, 신문물은 만났다고 하면 된다. 심지어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영화를 보았다고 하지 않고, 음악도 책도 사람도 영화도 다 접했다고 한다. 마치 밥그릇이며 대접, 접시, 종지, 뚝배기, 주전자 다 두고 냄비 하나에만 온갖 음식을 담아 내놓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간 뒤 다시 문을 연 박물관에서, 그 자리에 딱 맞춤한 말로 섬세하게 쓴 설명문들을 읽으며 유물을 살펴보고 싶다.

신정숙 교열부 기자 bom1@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특임교수 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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