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금고(가운데). 금고는 절에서 쓰는 북 모양의 종이다. 일반인에게 낯선 유물에 대해서는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려는 배려가 필요하다.
국립청주박물관을 가보니 건물이 여러 동이다. 모든 건물이 기와집 모양인데 지붕이 기와가 아니라 콘크리트로 기와집 모양을 냈다. 진주박물관을 설계한 김수근의 작품이라 한다. 김수근은 옛 부여박물관도 설계했는데, 세 박물관 모두 기와집 형태를 응용했다는 것과 검은색과 흰색만 쓴 것이 공통점이다. 상설전시관과 어린이박물관이 있는데, 먼저 상설전시관으로 가보았다.
여느 국립박물관과 다르지 않게 선사실, 고대실, 고려실, 조선실로 나뉘어 있었다. 선사실은 유물들을 전시해놓은 모습이 마치 작품을 전시한 듯 아름다워 보였다. 돌칼과 돌화살촉, 돌도끼 들을 전시했을 뿐인데, ‘돌칼이 저렇게 예쁜 유물이었나, 돌화살촉을 어쩌면 저리 섬세하게 만들었지? 석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같은 유물도 전시 방법에 따라 아주 다르게 보인다는 걸 새삼 느꼈다.
유물 설명문을 보니 밀개, 긁개 같은 낯익은 용어가 보였다. 그리고 유물을 사용하는 방법을 그린 그림과 함께 이런 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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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르개 錐形石器 Awl 가죽이나 나무 등에 구멍을 뚫을 때 사용된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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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개 石刀 Knife 사냥한 동물 등을 자르고 해체할 때 사용된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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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베찌르개 有莖尖頭器 Tanged point 돌날의 한끝을 다듬어 슴베를 만들고 그 반대쪽을 뾰족하게 만든 석기로 자루에 꽂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재 속 금속이야기’ 전시실에서는 구리, 합금, 철, 금, 은과 같은 금속에 대한 재미난 설명과 청금석, 적철석, 공작석 등 색을 내는 광물의 실물도 같이 보여줘 이해하기 쉽게 했다.
뚜르개는 ‘뚫다’에서 온 말이겠고, 자르개는 ‘자르다’에서 온 말, 찌르개는 ‘찌르다’에서 온 말인 것을 알겠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뚜르개는 요즘 말로 ‘송곳’이다. 자르개는 ‘칼 또는 도끼’, 찌르개는 ‘창 또는 화살촉’이다. 석기시대 도구라 오늘날 도구와 일대일로 모두 대응하지는 않을 테니 저와 같은 새로운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어려운 한자말에서 순우리말로 용어를 만들었으니 한자말보다는 쉽지만, 한자와 영어 곁에 요즘 우리말도 넣어주면 알아듣기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우리말이라고 해서 다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바로 ‘슴베’ 같은 말을 들 수 있겠다. 나도 처음 보는 말인데, 설명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사전을 찾아보니 “칼, 괭이,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이라 한다. 슴베 부분을 그림에서 표시해주면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초등학교 교사인 지인이 한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전화기 기호(☎)를 보여주면, 그게 왜 전화기냐고 해. 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나 스마트폰을 쓴 세대라 그런 전화기를 본 적이 없거든.” 이렇듯 눈으로 본 적 없는 것은 말로 설명해도 알기가 어렵다.
고려실에서는 불교문화 유물이 많았는데, ‘금고’가 눈에 띄었다. 징처럼 둥글납작한데 징보다 크고, 앞쪽 가운데에 커다란 연꽃무늬가 있고 가장자리에는 덩굴무늬가 있다. 가만 보니 박물관 어귀에 우체통 용도로 서 있던 것과 같은 유물이다. 설명문을 읽어보니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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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 청동 금고는 소리를 내는 의식구 중 하나로, 주로 공양 시간을 알리거나 대중을 불러 모을 때 사용한다. ‘사뇌사’가 새겨진 청동 금고는 위쪽과 양 옆면에 모두 3개의 고리가 달려 있으며 (줄임)
설명문을 읽어봐도 쉬이 알기 어렵다. 금고는 쇠북이다. 더 정확히는 절에서 쓰는 북 모양의 종이다.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말이 빠져서 설명을 다 읽어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설명하는 이에게는 익숙한 대상이라 무심히 넘어갔을 수 있는데, 일반인에게 낯선 유물에 대해서는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려 애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통에 대한 노력이 아쉬운 부분이다.
청주박물관은 금속문화재가 대표 문화재라 한다.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이박물관이었다. 어린이박물관은 “놀이와 음식을 문화재와 연계해 꾸민 체험전시 공간”이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와 음식으로 접근한 점도 훌륭하고, 실제 놀이와 음식을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과학, 수학, 예술과 접목한 다양한 체험물이 있었다. 김홍도의 그림으로 씨름, 널뛰기, 그네타기 같은 선조들의 놀이를 보여주며 ‘복원력, 진자운동, 지레의 원리’ 같은 과학 원리를 알려준다. 아이들이 널뛰기와 씨름을 직접 해볼 수도 있다. 음식과 옛날 돌상차림 등도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영상으로 설명해주고 문제도 풀게 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옛 부엌을 재현해서 가마솥과 아궁이, 맷돌과 같은 부엌살림이 오늘날 무엇으로 발전했나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문화재 속 금속이야기’ 전시실이 백미였다. 구리, 합금, 철, 금, 은과 같은 금속에 대한 재미난 설명과 청금석, 적철석, 공작석 등 색을 내는 광물들은 실물도 같이 보여준다. 대장간 모형을 꾸며놓고 철기 만드는 과정을 명랑한 그림과 쉽고 명쾌한 글로 설명하고, 금속의 다양한 녹는점도 알려주며 철을 두드려보는 체험도 하게 해 늘어나는 금속의 속성도 알게 한다. 종과 같은 금속 악기 만드는 법, 청동 거울 광내기, 철을 두드려 만드는 단조법과 녹여 만드는 주조법을 비롯한 금속공예 기법도 실물과 영상을 동원해 설명한다. 너무나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가 어느새 문 닫는 시간이 되어 아쉬움을 안고 박물관을 나왔다.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도 많았는데, 이렇게 즐거운 놀이와 배움이 가득한 박물관을 자주 올 수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청주박물관 안내지를 보니 주말 교육 프로그램도 1년 치가 꽉 차 있다. 이렇게 재미난 박물관,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전국 곳곳에 생기길 바란다.
글·사진 신정숙 교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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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분원) 서은아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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