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진주박물관에는 <임진록> <쇄미록> 등 임진왜란과 관련된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 <쇄미록>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들의 활약상, 왜군의 잔인함, 피난민의 삶, 군대 징발과 군량 조달, 양반의 특권과 노비들의 비참한 생활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신정숙 기자
경남 진주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은 진주성 안에 있다. 성문에서 박물관까지 가는 길은 초록빛이 넘실대는 드넓은 공원인데, 유럽의 여느 공원 부럽지 않을 만큼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
박물관 건물은 우리나라 전통 목조탑을 석조 건물로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기와지붕이 독특한데 건물의 높이가 주변보다 높지 않아 위압감이 들지 않았다. 박물관 안에도 특별한 점이 있다. 2층까지 올라가는 길에도,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계단이 없다. 따라서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도 아기차(유모차)를 끄는 사람에게도 걸림돌이 없는 무장애 박물관이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국립박물관의 1층은 대개 선사시대와 고대의 유물을 전시하는데, 진주박물관은 1층부터 2층까지 대부분의 공간이 임진왜란실로 꾸며져 있다. 안내하는 분께 왜 그런가 물어보니 1984년 처음 문을 열 때는 경남 최초의 국립박물관으로서 ‘가야 문화 연구의 중심기관’으로 출발했는데, 1998년 7월 국립김해박물관이 가야사 특화 박물관으로 개관하면서 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을 중심 주제로 하는 ‘임진왜란 특성화 박물관’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임진왜란 3대 대첩(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성대첩)지 중 한 곳인 진주성이 지닌 의미를 되살리려는 뜻이라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진행 과정, 이 7년 전쟁의 결과로 달라진 동북아시아의 역사 등을 꼼꼼히 안내하고 있다. 논개의 초상은 두 점이 전시돼 있는데, 김은호가 그린 것과 윤여환이 그린 것이다. 가체 머리에 긴 저고리를 입은 논개 초상 아래에 “윤여환이 그린 논개의 초상으로 2007년에 표준 영정으로 지정받았다. 김은호의 <논개상>이 작가의 친일 논란과 복식의 고증 논란으로 인해 다시 제작된 것이다. 이전의 <논개상>이 일제강점기 이후 열녀 초상의 교과서가 된 김은호의 <춘향상>을 토대로 그려졌던 것에 반해, 이 초상은 16세기 여성의 복식과 머리 모양을 고증하여 제작되었다”고 적혀 있다. 김은호의 그림 밑에는 “임진왜란 때 인물인 논개를 조선 말기~근대기의 짧은 저고리를 입은 모습으로 표현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고 설명해놓았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박물관의 노력이 엿보인다. 다만 다음과 같이 안내문의 용어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히데요시의 공명심과 정복욕, 명과의 통상 무역 재개, 영주들의 불만을 해외의 영토 확장으로 잠재우려는 의도, 영주들의 군사력 감소를 통한 체제의 안정 모색 등 다양한 견해가 거론됩니다. →이 일어난
* 전쟁이 발발한 직후 경상도에서 곽재우·정인홍·김면, 전라도에서 고경명·김천일, 충청도에서 조헌, 황해도에서… →터진
*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일본에 일방적으로 밀리자 조선은 명에 구원병을 요청하였습니다. →벌어져
* 그러나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일본군의 모략과 음모 등으로 이순신은 파직되었습니다. →나자
전쟁은 왜 꼭 ‘발발’한다고 쓸까. 또 발발한다는 말은 전쟁이란 말 외 다른 말 뒤에 쓰이는 일도 거의 없다. 왜 그럴까. 국어사전에서 근거를 찾아보자.
발발1: (주로 ‘떨다’와 함께 쓰여) ①추위, 두려움, 흥분 따위로 몸이나 몸의 일부분을 가늘게 자꾸 떠는 모양. ②무엇을 아주 아끼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여 노심초사하는 모양.
발발2: (주로 ‘기다’와 함께 쓰여) ①몸을 바닥 가까이 대고 작은 동작으로 기는 모양. ②자신을 낮추어 비굴하게 행동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발발3: 바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양.
발발4: 종이나 헝겊 따위가 몹시 삭아서 쉽게 째지는 모양.
발발하다1: 표정이나 행동이 밝고 활기가 있다. =발랄하다.
발발하다2(勃勃하다): 기운이나 기세가 끓어오를 듯이 성하다.
발발하다3(勃發하다): 전쟁이나 큰 사건 따위가 갑자기 일어나다.
‘발발하다3’에 답이 있다. ‘勃發’은 일본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봅빠쓰’라고 발음한다. 우리는 전쟁이나 난리는 ‘터졌다’거나 ‘났다’ ‘벌어졌다’ ‘일어났다’고 했다. ‘발발’은 일제강점기부터 쓰던 말을 식자층에서 따라 쓰던 것을 지금까지 무심히 ‘관행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발발’의 우리말 어감은 국어사전의 설명대로 떨거나 기거나 돌아다니는 모습에 어울리는 말이다. 전쟁처럼 큰 비극과는 어울리기 어려운 어감이라 생각된다.
임진왜란실이 끝나는 자리의 기둥에 아래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박물관까지 지어 전쟁을 오래오래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마하트마 간디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 -존 에프 케네디
가장 나쁜 평화라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 -바오닌
전쟁의 마음이 전쟁을 부르고 평화의 마음이 평화를 이룬다. -박노해
신정숙 교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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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특임교수 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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