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를 쓸 때는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박물관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 온라인 관람도 한 방법이다. 이뮤지엄 제공
코로나19의 재확산을 막기 위해 많은 국립박물관이 다시 문을 닫았다. 대신 온라인으로 전시를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하고 있어, 이 기회에 새로운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간 박물관이 국립대구박물관이다.
상설전시관은 고대문화실, 중세문화실, 복식문화실 세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여느 박물관에서 보기 어려운 ‘복식문화실’이 눈에 띈다. 그곳을 눌러보니, “섬유복식 산업을 바탕으로 근대도시로 성장한 대구의 지역 특성을 살려 우리네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옷의 역사를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통해 설명하고자 마련한 전시실입니다” 하고 소개한다. 춘천박물관에 ‘창령사터 오백나한’ 전시실이 있다면, 대구에는 복식문화실이 있는 셈이다.
먼저 고대문화실에 들어가 보니, 대표전시품으로 소개하고 있는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를 포함해 토기, 농기구, 장신구, 무기 등이 있다. 그런데 이전에 가본 서울 국립중앙박물관과 춘천박물관에서 보았던 전시 안내문의 문장과 확연히 다른 글이 있어 여러 번 읽게 되었다.
‘고대국가 형성기의 대구, 경북’에서는 원삼국시대 대표 유적인 대구 팔달동과 경산 신대리유적의 목관묘에서 출토된 고배의 전신인 두형토기와 우각형파수부호, 주머니호 등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와질토기를 전시하여 이 지역양식의 토기 발전양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호형대구와 옥제경식 등의 장신구류, 무기와 농기 등의 철기류를 전시하여 당시 이 지역의 소규모 부족들이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당위성과 그 면모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대문화실 안내문 중
* 목관묘 → 널무덤(구덩이를 파고 주검을 넣거나 나무관에 주검을 넣고 그 위에 흙을 쌓아올려 만든 무덤) 관을 넣어 두는 널방을 나무로 만든 무덤
* 고배 → 굽다리접시(접시에 높은 굽을 붙인 고대 시기의 그릇)
* 두형토기 → 제사용 토기(굽다리접시 중 제사용으로 쓴 접시)
* 우각형파수부호 → 쇠뿔손잡이항아리(쇠뿔처럼 생긴 손잡이가 달린 항아리)
* 주머니호 → 주머니항아리(바닥이 납작하고 몸체가 주머니 모양인 항아리)
* 와질 토기 → 연질 도기(기와처럼 잿빛을 띠는 조금 무른 토기)
* 호형대구 → 호랑이모양 허리띠고리(청동으로 만든 호랑이 모양 허리띠 걸쇠)
* 옥제경식 → 옥목걸이
‘목관묘, 고배, 두형토기, 우각형파수부호…’ 언어박물관이 있다면 옛말로 전시해야 할 이런 말들이 21세기 온라인 박물관 속에 등장하니, 그 부조화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저 용어들을 왜 아직도 붙들고 있는 걸까.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어원에서 펴낸 <쉬운 공공언어 쓰기 길잡이>에서는 공공언어를 쓸 때, 국민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쉬운 말로 쓰라고 안내하고 있다.
“쉬운 공공언어를 쓴다는 것은 결국 국민의 처지에서 공문서를 작성하는 것으로서, 그 표현이 일방적이지 않아야 한다. 또한, 국민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권위적 표현을 피하고, 차별적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특히 소수자에 대한 배려 없이 무심코 쓰는 표현은 공공언어를 대하는 사람에게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공공언어를 쓸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국민은 명령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공공언어를 쓸 때는 쉬운 말로 써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박물관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 온라인 관람도 한 방법이다. 이뮤지엄 제공
그리고 그 구체적 방법으로, “권위적 표현과 차별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읽는 사람의 처지를 섬세하게 고려할 때 성별, 지역, 장애, 인종, 민족 등과 관련된 차별적 표현을 피할 수 있다. ‘줄임말(약어)’과 ‘전문 용어’는 최소화하고 쉬운 어휘를 선택해 써야 한다. 공문서, 보도 자료 등에 쓰인 공공언어가 어려운 까닭은 줄임말과 전문 용어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전문 용어나 줄임말 등의 단어를 한글로 쓰지 않고 로마자나 한자로만 쓸 경우 소통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전문 용어 등을 써야 한다면, 반드시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고 했다.
복식문화실로 옮겨가 보았다. 전시실은 우리나라, 아시아, 규방소품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나라 방으로 들어가 보니 조선시대 문무백관의 옷과 왕실의 옷, 혼례복 등이 전시돼 있다.
특별전시관의 현재전시 방으로 가보니, 중국 광시 복식 문화를 전시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중국 소수민족의 옷과 그 의미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는데, 대표전시품 중 좡족이 이불 겉감으로 쓴 ‘망용문 장금’이라는 전시품이 있었다. 그 소개글을 쉬운 말로 다듬어보았다.
이러한 무늬는 이무기의 비늘을 형상화한 것으로 망용문(蟒龍紋)이라고 칭해지던 무늬이다. 직물의 경사는 어두운 남색 실이 사용되었고, 위사는 자색, 청색, 백색, 남색, 미황색(米黃色)의 색사가 사용되었다.
→이런 무늬는 이무기의 비늘을 형상화한 것으로, 옛날에는 망룡문(용을 그린 오색 무늬)이라고 했다. 천의 날실(세로줄)은 어두운 남색 실을 썼고, 씨실(가로줄)은 보라색, 파란색, 흰색, 남색, 연노란색 실을 썼다.
신정숙 교열부 기자
bom1@hani.co.kr, 사진 이뮤지엄
감수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분원) 부교수 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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