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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빠로 태어난 남자’ 없듯이 엄마도 마찬가지죠”

등록 2020-06-15 18:30수정 2021-12-10 19:27

인터뷰송주연 작가, 내 안의 가부장 극복기

‘코로나 시대’ 긴급 아이돌봄은
왜 엄마 몫으로만 남아 있나…

워킹맘의 ‘내 안의 가부장’ 극복기
기자·심리상담사로 살아가며
잃어버린 ‘나’를 찾는 여정 책으로

변화는 갈등과 함께 시작해
육아 공동책임자인 남편과
평등한 일상 만들어가봐요

엄마가 되면서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던 송주연 작가가 ‘내 안의 가부장’을 극복하기까지 과정을 담담히 전하고 있다. 송주연 작가 제공
엄마가 되면서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던 송주연 작가가 ‘내 안의 가부장’을 극복하기까지 과정을 담담히 전하고 있다. 송주연 작가 제공

밖에서는 일하느라 우리 아이 위해 삼시 세끼 차려주지 못하고, 안에서는 가사노동 하느라 일터에서의 피로를 제대로 풀지도 못하는 워킹맘의 시리고 저린 속마음을 누가 알아줄까. 등교하지 못하는 아이와 온종일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코로나 시국에, 돌봄노동은 그 자체로 워킹맘들의 아픈 손가락이다.

송주연 작가(공인 상담심리사)는 긴급 돌봄이 일상이 된 코로나 시국을 겪어내며 아이에게 헌신하는 엄마, 사회와 미디어에서 강요하는 ‘살가운’ 며느리의 모습, 남편에게 정성을 다하는 가정적인 아내라는 삼중 굴레의 핵심은 한국형 가부장제라고 판단했다.

엄마가 되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죄책감들, 결혼 뒤 자신을 잃어가며 느꼈던 우울과 불안. 송 작가는 한동안 이 모든 힘든 감정들의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우울해졌고 송 작가 자신은 사라져 갔다고 말했다. 이 책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으나 엄마처럼 사는 여자들, ‘이기적인 여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자들, 요즘 세상에 성차별이 어디 있냐고 생각하는 남자들, 그 모두를 위한 책이다.

송 작가는 “이런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한국 사회를 거리 두고 바라보게 되면서였다”며 “캐나다에서 한 걸음 떨어져 우리 사회를 바라보자 분명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마나 아내로서 나의 죄책감과 불안, 우울은 나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동갑인 올케와 시누이가 남편에 종속된 호칭인 ‘형님’으로 서열을 만들지 않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 자신보다 나이 어린 남편의 동생들에게 ‘도련님’이라고 존칭하지 않는 것 등을 보며 한국 특유의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을 느끼게 됐다.

“우리가 생활하는 문화의 ‘결’이 바뀌면 독박 돌봄에 지친 워킹맘들의 마음속 복잡한 길도 정돈될 거라 생각한다”는 송 작가. 코로나 시대, 엄마라는 이유로 긴급 돌봄노동의 ‘긴박함’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워킹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최근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스몰빅에듀)를 통해 풀어낸 송 작가를 인터뷰했다.

-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나의 독박 돌봄노동 탈출기’ 등을 묶어서 책을 냈다. 송 작가에게 ‘엄마’는 어떤 의미인가.

임신한 순간부터 ‘엄마’라는 틀에 갇혀 살기 시작했다. 한데 남편은 나와 전혀 다르더라. 분명 같이 부모가 됐는데, 남편에게 ‘아빠’라는 정체감은 자신의 여러 모습 중 하나였다. 그때부터 궁금했다. 왜 남편은 ‘아빠’가 아닌 다른 모습도 존중받는데, 아내에게는 ‘엄마’가 어떤 정체감보다 우선시되는 걸까? 또 엄마가 아닌 여성들의 사회적 성취는 “애도 안 낳고 독하게 일한다”며 평가절하당하기 일쑤고, 결혼을 안 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들은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여성을 오직 ‘재생산의 도구’로만 여겨왔던 가부장 사회의 시선이 한국 사회에 여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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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송주연 지음/스몰빅에듀)

-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10년 가까이 기자로 일하면서 ‘워킹맘’으로 사는 것을 선택했는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공인 상담심리사로 일하면서 박사과정도 밟고 있다고.

처음 ‘워킹맘’이 되었을 땐 엄마로서 소홀한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이사, 해외연수 등 일이 생겨 ‘전업맘’으로 살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엄마로만 사는 게 더 힘들었다. ‘일도 안 하면서 아이에게 이것밖에 못 해주다니’와 같은 마음이 들면서 죄책감이 더 심해졌다. 내 삶이 사라져버린 느낌에 불안감은 더 높아졌고, 아이 역시 덩달아 불안해졌다.

결국 깨달은 건 결코 ‘나 자신의 꿈’은 포기할 수 없다는 거였다. 내가 나의 삶을 선택했을 때 아이도 더 안정되고 밝아졌고. 많은 학자들이 입증하듯, 스스로의 욕망과 꿈을 존중해줄 때 나는 더 좋은 엄마일 수 있었다.

- 워킹맘 등 여자들이 자신답게 살고자 변화를 꾀할 때 ‘뭔가 잘못한 건 없는데 미안한 것 같은’ 묘한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했는데.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나뿐만은 아닐 거다. 남편과 가사노동 분담을 하기로 약속하고서는 막상 퇴근 뒤 설거지하는 남편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드는 그런 거…. 이런 게 바로 심리학자 시드라 레비 스톤이 말하는 ‘내 안의 가부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인간의 삶을 지배해온 가부장적 질서들은 집단 무의식의 형태로 개개인의 심리구조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 이는 가부장제에 반하는 평등한 변화를 실천할 때마다 줄곧 ‘죄책감’이라는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 송 작가의 가족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는 만큼 남편이나 시가의 반응도 궁금하다.

며칠 전, 남편이 내게 이런 쪽지를 남겼더라. ‘책 다 읽었어. 읽으면서 내가 했던 말들을 글로 보니 너무 아프게 와닿더라. 어떤 것들이 불평등한 건지, 거기에 내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게 해줘서 고마워. 주변에 이 책을 많이 알려야겠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걸 알았으면 좋겠어.’

뭉클했고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책을 통해 소통하고 연대하고픈 마음이 솟았다. “몰라서 그랬다”는 것 역시 죄다. 심지어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다. 세상에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는 것을. 단지 익숙하니까, 갈등하면 서로 불편하니까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이젠 더 이상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부부가 함께 책을 읽으며 일상에 스며든 가부장제의 폐해에 관해 이야기해 보았으면 한다. 여성들은 세뇌된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기를, 남성들은 ‘나의 남편이 알아챈 것들’에 공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 더 평등한 일상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 엄마가 자신의 삶을 찾으면 아이도 중심을 잡고 생활한다고 했다. 한국 가부장 사회 속에서 ‘나답게’ 살고 싶지만 크게 용기 내지 못하는 엄마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나 역시 여전히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내 안의 가부장’의 존재를 알고부터는 이게 정말 내가 잘못해서 미안한 건지, ‘내 안의 가부장’이 만들어낸 죄책감인지 구분하려고 한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미안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기분을 떨쳐내려고 노력한다.

아이 아빠와 대화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갑자기 회식이 잡혀서 아이를 못 데리러 가는 상황’ 등에서 남편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 상황에서 대부분 여성들만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이런 죄책감은 ‘불평등’에서 비롯한 것이니 ‘건너뛰기’하고 육아 공동책임자인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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