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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우리에게 필요한 학교란 무엇인가?

등록 2020-05-18 18:29수정 2020-05-19 10:15

연재ㅣ김경림의 ‘씩씩하게 뻔뻔하게’
큰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항암 치료를 받느라 1년을 통째로 결석했다. 다행히 유급은 되지 않았다. 건강장애 학생을 위한 온라인 수업과 ‘병원학교’에서 출석 일수를 채웠다.

그런데 치료가 끝나갈 때 고민이 시작됐다. 아이는 체력과 면역력이 극히 약해진데다 시각장애까지 생겨 맨 앞자리에서도 칠판 글씨를 보지 못했다. 공부할 때나, 활동할 때 ‘열외’의 배려가 필요했다. 이 아이가 학교로 돌아가도 괜찮을까?

다니던 학교 교실을 찾아가 보았더니, 아이가 ‘살아남을’ 환경이 아니었다. 담임 선생님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35명의 건강한 아이들을 감당하기도 바빠 보였다. ‘열외’의 배려와 조치는 어려워 보였고, ‘이 학교는 아니다’라는 판단은 금방 내렸다.

그럼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로 옮겨야 할까, 특수학교는 어떨까. 몇달을 끙끙대다가 나는 ‘삶에서 학교란 무엇인가’를 묻기에 이르렀다.

답은 금방 나왔다. 어딜 가도 학교는 학교였다. 교육과정이 일방적으로 주어질 테고, 출석 일수를 따져 물을 테고, 정상과 비정상, 우등과 열등이 있을 터였다. 아이가 평균에서 얼마나 벗어나는지, 다른 아이는 얼마나 앞서가는지 귀를 막아도 듣게 될 게 분명했다. 작은 학교나 큰 학교나, 도시학교나 시골학교나 입시와 진학을 우선하는 ‘공교육’이라는 틀에서는 다 똑같았다.

우리에게는 ‘5년 생존율 5%’라는 비극적 숫자가 있었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삶을 학교의 기준을 따라가는 데 쓸 수는 없었다. 나는 결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학교에 아이를 맞추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만 아이가 행복해질 터전으로 학교를 ‘이용’하겠다고. 아이와 내 삶의 주도권을 꼭 움켜쥐고 ‘교육’이라는 입김에 흔들리지 않겠다고.

그리고 서울에서 지리산 산골로 이사를 왔다. 아이는 올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 강북의 초등학교, 지리산 벽지 초등학교와 중학교, 미인가 대안학교, 지방의 일반고, 시각장애 특수학교 등 일곱 종류의 학교에 다녔다. 이 중 아이가 최고로 꼽은 학교는 어디일까? 미인가 대안학교와 특수학교다. ‘열외’ 중의 ‘열외’인 학교에서, 아이는 극소수의 교사와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깊고 소중한 배움의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코로나19로 학교가 멈춘 지 몇달째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한다. ‘공부하러’가 아니라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다. 아이들은 학습과 진학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원한다. 부모에게 필요한 건 아이를 함께 먹이고 돌보는 공동체다. 그럼 우리가 바라는 학교란 함께 경험하고 돌보는 공간이 아닐까? 지금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학교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되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

김경림 ㅣ 언어치료사,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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