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에게 듣는 나의 전공
컴퓨터 보안 전문가 한창규씨
누군가 나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통장 계좌번호 같은 개인정보를 유출하려 한다면? 내가 즐겨찾는 사이트와 인터넷 구매 목록 같은 사소한 생활습관까지 고스란히 공개된다면? 생각만 해도 등줄기가 서늘한 이 상황을 대비하고 수습하는 것이, 안철수연구소 시큐리티대응센터 한창규 선임연구원의 일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 연구원은 ‘악성 코드 분석가’다. 바이러스나 웜처럼 사이버 공간에 떠돌아다니는 악성 코드를 발견해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예전에는 전세계의 컴퓨터 고수들이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기 위해 악성 코드를 퍼뜨렸어요. 눈에 띄기 쉬운 곳에 악성 코드를 숨겨두고 ‘놀랐지? 메롱!’하는 식이죠. 그러나 요즘은 컴퓨터 실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인터넷에 떠도는 기술을 응용해 개인정보를 빼낼 수 있고, 이를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들이 주로 악성 코드를 유포합니다. 문제가 더 심각해진 거죠.”
그가 경찰청 사이버수사대를 비롯한 각종 정부 기관에서 협조 요청을 받는 일이 잦아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외국에서 악성코드가 떠돈다는 ‘첩보’가 입수되면, 4~5시간의 시차를 두고 국내에 유포될 것에 대비해 해결책을 마련한다. 개인이나 기업 고객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고 ‘신고’하면 긴급 출동한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사전 예방’이기에, 문제가 될 만한 프로그램(용의자)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시스템을 샅샅히 뒤져 이미 저지른 범죄의 흔적(지문)을 찾아내기도 한다. ‘민간 사이버수사대’라 불릴만 한 그의 일은, 그래서 365일, 24시간 계속된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하고 벤처기업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하던 한 연구원이 보안 분야에 눈을 돌린 건 동생 덕분이었다. “동생이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며 ‘사건’을 의뢰했어요. 컴퓨터를 제법 안다고 생각했는데,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도 복구할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아, 이건 전혀 다른 분야구나 싶었죠.”
2년 전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한 뒤, 그는 ‘긴급’이라는 말과 친구가 됐다. 언제 사고가 터질 지 모르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늘 회사로부터 두 시간 거리 이내에 있어야 하고 휴대전화를 꺼놓아서도 안된다. 그가 좋아하던 운동과 사우나를 포기하고, 경기도 분당에 사는 아내와 ‘주말 부부’로 살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머릿속이 상쾌해지면서 마음이 뿌듯해요. 내가 결국 해냈구나, 하는 짜릿한 성취감이 들지요.”
정부 기관은 물론 개별 기업들도 점점 더 많은 보안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추세지만, 국내에는 한창규씨와 같은 전문가가 그리 많지 않다. 한 연구원은 “컴퓨터 사용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보안에 관심을 갖고, 더 적극적으로 이 분야에 진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정부 기관은 물론 개별 기업들도 점점 더 많은 보안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추세지만, 국내에는 한창규씨와 같은 전문가가 그리 많지 않다. 한 연구원은 “컴퓨터 사용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보안에 관심을 갖고, 더 적극적으로 이 분야에 진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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