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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꽁꽁 언 땅 뚫고 고개 내민 나물 뜯으러 가자

등록 2006-01-08 16:00수정 2006-01-09 15:16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얘들아, 나물 뜯으러 가자! 겨울에 웬 나물?

이맘때 꽃다지 뜯어먹으면 얼마나 꼬스름한데. 냉이는 향기도 강하고 맛도 상큼해서 아주 별스런 맛이라고.

겨울방학도 했는데 설마 춥다고 컴퓨터 붙들고 게임이랑 단짝 동무하고 있지는 않겠지? 겨울이 무지 춥긴 춥지. 하지만 겨울에도 추위가 주춤하는 날이 있어. 포실포실 따뜻한 겨울 햇살이 눈부신 날이 있어. 그런 날 양지바른 언덕바지에 앉아 뜨뜻한 햇살이라도 받으며 겨울나물을 캐고 있을라치면 꼭 봄날이라도 된 듯하지. 집 가까운 숲 언저리나 들, 가을걷이가 끝난 밭으로 나가면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듯 하지만, 영하 10도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싱하게 겨울을 나는 풀들이 있어. 지난 가을 싹을 틔워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땅에 바짝 붙어 모진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있지. 아니, 겨울 동안 벌써 다가올 봄을 준비하며 푸릇푸릇하게 자라고 있지. 그런 나물을 겨울에 뜯는 거야.

얘들아, 겨울나물 뜯으러 가자.

꽃삽이나 칼 들고, 호미 들고, 괭이 들고, 나물 담을 바구니나 봉지 들고, 햇살 좋은 날 나물 뜯으러 나가자. 우아, 나물이 아니라 나무도 캐겠다! 우리는 아주 추운 날 나물을 뜯으러 숲에 올랐어. 그래서 땅이 얼어 있을까 봐서 괭이까지 챙긴 거야. 호미는 철물점에 들러 나무 것 하나, 단이 것 하나씩 사서 챙겼지.

숲 언저리 텃밭엔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듬성듬성 쌓여 있어. 땅도 얼음덩어리마냥 꽝꽝 얼고 말이야. 그런데 마른 풀 더미를 휘적휘적 헤집어 보니 양지꽃에 노란 꽃봉오리가 맺혀 있는 거야. 하얀 눈 속에서도 꽃이 피어나고 있었지. 햇살이 내리쬐는 양지바른 곳은 언 땅이 녹아 우툼두툼하게 부풀어올랐어. 꼭 거북 등딱지처럼 금이 간 땅에 달맞이꽃이 한겨울 땅에 핀 빨간 꽃처럼 방석식물이 되어 방석처럼 바짝 붙어 겨울을 나고 있지. 낙엽이 수북히 쌓인 물 고인 자리에서는 얼음 사이로 삐죽삐죽 미나리가 겨울을 나고 있어.

꽃다지
꽃다지
냉이는 참 별나게도 꽝꽝 언 땅에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어. 게다가 이파리도 땅 색깔이랑 아주 비슷하고 꼭 흙가루처럼 점도 몇 개씩 콕콕 찍혀 있어서 어지간히 눈을 크게 뜨고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아. 얼어서 괭이도 안 들어가는 땅을 칼로 쪼개서 냉이를 캤어. 그런데 뿌리가 너무 길어 중간에서 톡 끊어지고 말았지. 차디찬 얼음 속에 박혀 자라서 이름도 냉이일까? 냉이는 이파리를 땅에 납작하게 붙이고 있어. 그래야 겨울 추위를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나 봐. 캐낸 냉이는 땅에 붙으려는 힘 때문에 이파리가 뿌리 쪽으로 확 젖혀져 말려 버렸어.


냉이
냉이
냉이, 꽃다지, 황새냉이, 개갓냉이, 벼룩나물, 점나도나물, 쇠별꽃, 지칭개, 씀바귀, 망초, 개망초, 뽀리뱅이, 미나리, 돌나물, 달맞이꽃, 가락지나물, 양지꽃이 바구니에 풍성하게 담겼어. 나무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물어. 이 나물들이 다 먹을 수 있는 나물이냐고. 우리는 마른 이파리를 떼어내고 깨끗하게 씻어 하나씩 맛을 보기 시작했지. 꽃다지는 꼬스름하고 냉이는 달짝지근하고 황새냉이는 약간 맵고 망초는 쌉쓰름하고 뽀리뱅이는 씁쓰름하고 그럼 씀바귀는? 단이는 하나도 안 쓰다고 시치미 뚝! 나무는 너무 쓰다고 미나리로 입가심을 했지. 달달한 미나리 맛은 친숙한 맛이라서.

아린 맛이 나는 달맞이꽃 같은 나물은 튀기거나 데치면 먹을 만해. 그래서 부침도 한 접시, 무침도 한 접시, 나물국도 한 대접, 푸짐한 겨울나물 밥상으로 입맛 좀 돋구었지. 집에 오신 손님께 황새냉이, 미나리, 냉이, 꽃다지를 넣어 샐러드를 버무려 내놓으면, 평범한 샐러드가 특별한 요리가 되어 겨울나물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조잘거리며 추운 겨울밤을 보낼 수 있을 거야. na-tree@hanmail.net

붉나무는 그림을 그리는 아빠(강우근), 글을 쓰는 엄마(나은희), 그리고 나무랑 단이, 한 가족이다. 펴낸 책으로 <사계절생태놀이>(돌베개어린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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