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첫 온라인 개학을 한 9일 오전 전국의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이 진행됐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서울여고에서 한 교사가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같은 시각 서울 송파구의 한 고3 학생이 집에서 온라인 영어수업을 듣고 있다. 이종근 박종식 기자 root2@hani.co.kr
“얘들아, 출석 번호대로 이름을 부를 테니 오디오 켜고 ‘네’라고 대답해줘.”
9일 아침 8시10분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3학년5반 교실에서 김우영(33) 교사가 아직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학생들의 이름을 한명씩 불렀다. 교실이 아닌 집에서 마스크를 쓴 학생들이 카메라 너머로 힘차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5반 학생은 모두 23명인데 이날 아침 조회에선 2명이 사전 연락 없이 들어오지 않았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한달 넘도록 굳게 닫혀 있던 학교 문이 온라인 개학으로 이날 열렸다. 전국의 고3과 중3을 시작으로 피시나 스마트기기를 활용하는 원격수업을 통해 교사와 학생들이 만난 것이다. 교육당국은 이르면 이달 말 등교 수업을 거론하고 있지만 아직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법정 수업일수를 이미 열흘 넘게 줄인 상황에서 온라인 개학을 통해서라도 학습 공백을 메우겠다는 취지다. 온라인 개학은 오는 16일과 20일에도 학년별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사상 초유의 일이다 보니 원격수업 플랫폼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등 일선 학교 현장에선 원격수업에 적응하느라 하루 종일 초긴장 상태였다.
중학교 3학년인 노아무개군은 이날 오전 10시까지 늦잠을 자느라, 9시께 담임교사가 만든 단체 채팅방에서 실시한 출석 체크를 놓쳤다. 원래는 결석 처리가 되어야 했지만, ‘적응 기간’인 점을 고려한 담임교사가 뒤늦은 응답도 출석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노군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스마트폰을 이용해 20~40분 길이의 교육방송(EBS) 강의 4개를 연달아 시청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이 아니어서 이날 안에만 정해진 강의를 시청하면 되기 때문이다.
줌(Zoom)과 같은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을 쓰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에서부터 교육방송 강의 시청, 과제물 제시 등 원격수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각 학교에서 재량껏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 현장의 모습은 천차만별이었다. 다만 상당수 학교들은 실시간 쌍방향보다 교육방송 온라인클래스를 활용한 단방향 수업을 주로 채택했다. 교사가 수업자료를 온라인클래스에 올리면 학생들이 내려받아 공부하는 식이다.
서울 숭문중처럼 1~2교시는 실시간 쌍방향으로, 3~4교시는 시청각 자료 제공이나 과제 풀이 같은 단방향으로 진행하는 등 여러 방식을 섞어서 쓰는 학교도 많았다. 서울 성동구 도선고등학교의 화학 수업에선 교사가 ‘하고 싶은 실험 2개’를 댓글로 남기는 것을 과제로 내기도 했다.
원격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서울여고의 한 고3 학생은 “처음이라서 기대도 하고 긴장도 많이 했는데, 재밌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자율형사립고 3학년인 조아무개(18)군은 “사전 녹화 강의였지만 동시 접속 상태에서 선생님들이 수시로 반응을 해줘, 교실 현장 수업보다 집중도와 몰입도가 오히려 더 높았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지역의 고3 학생인 임아무개양은 이날 친구들과 스터디카페에 모여 온라인 수업을 받았다. 2~3교시는 담당 교사가 지정한 ‘유산소 트레이닝’ 영상을 시청하는 ‘스포츠 생활’ 수업이었는데, 임양과 친구들은 영상을 틀어놓고 각자 자기 공부를 했다. 또다른 고3 학생은 “컴퓨터로 수업을 들으니 딴짓을 해도 ‘잡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공부가 잘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방송 온라인클래스 등 원격수업 플랫폼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서울여고 연구부장인 송원석 교사는 “아침 7시께 다음주 수업을 위한 영상 자료를 교육방송 서버에 올리려고 했는데, 2~3시간이 지나도 완료가 되지 않아 도중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날 사용자가 동시에 몰리면서 온라인클래스 중학교용 누리집에서 오전 9시부터 10시15분 사이에 접속 불능 현상이 발생했다. 교육부는 “동시접속자 수를 늘리려고 클라우드 형태로 접속자를 분배하는 장치를 서버에 붙인 건데, 그 장치에서 병목현상 오류가 일어났다”며 “온라인클래스 중앙처리장치 사용량 서버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생이 얼마나 늘어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지 등을 별도로 점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육당국이 제공하는 교육 플랫폼 ‘이(e)학습터’에는 최대 12만832명, 이비에스 온라인클래스에는 최대 26만7280명이 접속했다.
교육부는 이날 “전국 학교 출석률은 집계 뒤 10일 발표할 예정인데, 99% 이상으로 (예년의) 3월 등교개학 때와 비교하면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개학 첫날 아파서 못 가던 아이도 침대에서 일어나서 책상까지 2미터 옮겨가서 출석하는 식이어서 생각보다 높았다는 설명이다. 또 교육부는 “교사들의 온라인 활용 능력은 천차만별인데, 한쪽으로 한정하고 통제하기보다 교사들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놔두는 게 옳다고 판단한다. 교사도 이번주엔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해 어떤 게 (원격수업에) 맞는지 살펴보고 그쪽으로 바꿀 계획인 분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교육당국은 온라인 개학을 한 서울·경기·대구 등 10개 시·도 고3·중3 1만5712명과 부산·강원 등 7개 시·도 중·고교생 2만2548명에게 스마트기기를 대여했다. 지난 7일 기준으로 스마트기기 신청자는 약 26만7천명이다. 이들에게 교육당국은 13일까지 스마트기기 대여를 완료할 계획이다.
일부 학원에선 온라인 개학 후 학생들에게 학원에 와서 원격수업을 듣게 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대해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불법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학원 형편이 어렵기에 휴원이 어려운 사정이 있다. 가급적 학원도 원격교육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온라인 개학은) 가보지 않은 길이고, 새로운 도전”이라며, “처음 가는 길인만큼 과정 중에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이 경험 또한 우리 교육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이유진 채윤태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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