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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800m 거리 두 학교 전교생 ‘1242명 대 178명’의 비밀은

등록 2020-03-13 09:21수정 2020-03-13 17:54

[한겨레21]
영구임대아파트가 낳은 초등학교 양극화 풍경
성남 임대아파트 옆 과소학교, 일반 아파트 옆 과소학교의 11.8배
서울 1.7배, 광주 북구 1.5배… 대도시 5개 지역 과소 초등학교 분석

친구 전학 가던 날 떠올린다. “우리 반은 완전 눈물 폭풍을 하고 갔어요. 나는 안 울었어요.” 6학년 경석(가명)이 말한다. 떠난 친구 얼굴이야 몇 년 지나면 가물해질지 모른다. 그래도 평생 내 초등학교 생각하며 떠올릴 첫 마디는 어쩔 수 없다. ‘친구들 무더기로 떠났던 작은 학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초등학교. 2019년 28명이 전학 갔다. 2018년에는 30명이, 2017년에는 34명이 떠났다. 전교생 178명, 6개 학년 합쳐 본댓자 학급 수 8개다. 학교 주변 풍경은 그저 심상하다. 1993~1995년 지어진, 겉보기 허름해도 33평형 9억원쯤, 18평형은 6억원쯤 되는 1기 신도시 분당 아파트가 즐비하다. 800m 떨어진 ◇◇초등학교에는 1242명이 다닌다.

학생 수 7배 차이는 중학교로 대물림된다. ○○초 곁의 ○○중학교는 올해 전교생 88명, ◇◇초 곁의 ◇◇중학교는 7배인 641명이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학생 수 격차를 한번에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다. ○○초 통학구역(거주지별로 초등학교 배정을 위해 교육청이 설정한 구획)에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1250명이 모여 사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있다.

<한겨레21>은 최초로 영구임대아파트가 생긴 1989년 이후, 이곳 아이들에게 쏟아진 차별과 혐오의 시선, 분리와 배제의 시도가 만들어낸 결과를 확인하고 싶었다. 서울에 300가구 이상 공급된 공공임대아파트(영구임대·50년공공임대·국민임대·재개발임대) 158개 단지와 서울시 616개 초등학교 통학구역(초등학교로는 600개)을 한달간 분석했다. 이 중 공공임대가 있는 통학구역 118개 중 9개(7.6%)에서, 공공임대가 없는 통학구역 498개 중 22개(4.4%)에서 과소학교(서울시교육청 기준 전교생 240명 이하)가 나타났다. 통학구역 중 임대아파트가 있는 학교가 임대아파트가 없는 학교보다 과소학교가 된 비율이 1.7배 높다는 뜻이다. 공공임대와 과소학교를 한데 모으니 ‘학군 공화국’에서 기피 대상 1호가 된 ‘임대아파트 통학구역 지도’가 그려졌다.

과소학교 비율을 가르는 핵심 변수는 임대아파트 유형이었다. 최저소득계층이나 철거민, 국가유공자 등이 오랫동안 시세보다 저렴한 월세로 살 수 있는 영구임대·50년공공임대와 과소학교 사이 연관성이 컸다. 1989년 서울 노원구에 만들어진 최초의 영구임대주택 하계5단지와 ‘두 학교’가 대표 사례다. 전두환 정권 당시 서울의 마지막 신시가지 개발로 탄생한 하계5단지의 아이들을 품어온 중현초의 올해 전교생은 200명(16학급)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 건설사가 공급한 분양아파트로 둘러싸인 중평초의 전교생은 1563명(59학급)이다. 600m 거리에 있는 두 학교 학생이 7배 이상 차이가 난다.

물론 두 학교 모두 저출산의 영향권에 있다. 규모가 큰 중평초도 1년 전보다 28명, 작은 중현초도 31명 줄었다. 다만 영구임대가 붙어 있는 중현초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 사회 빈곤이 노인을 중심으로 펼쳐질수록, 가난을 한데 모으는 형태로 지어진 영구임대의 인구 구성도 노인을 중심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즉 학교에 갈 아이가 영구임대에는 별로 없다. 여기에 영구임대에 대한 기피와 배제로 아이들이 취학통지서를 받고도 입학 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입학 뒤 전학을 가는 일이 반복된 결과 중현초는 어느덧 도심 속 ‘섬’이 돼버렸다.

분리된 학교를 만나게 하려는 시도도 실패했다. 지역구에 두 학교가 있는 이경철 서울시 노원구의회 의장은 “2018년부터 고학년은 중현초에서, 저학년은 중평초에서 통합해 교육하는 방안을 학부모들에게 제시해왔다”면서도 “절충안에 대해 중현초 학부모는 찬성했지만 중평초 학부모는 반대했다”고 말했다.

최초 영구임대아파트를 품은 최초 ‘임대아파트 통학구역 학교’의 비극은 전국 곳곳에서 재현됐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며 영구임대주택 건설 기조는 잠시 중단됐으나 2001년까지 입주는 계속됐다. 서울 다음으로 영구임대·50년공공임대 재고량(보유량)이 많은 편인 경기 성남에선 통학구역에 임대아파트가 있는 학교가 과소학교가 된 비율이 그렇지 않은 학교보다 11.8배, 광주 북구에서는 1.5배 높았다. 대구 달서에선 과소학교 3개 모두가 임대아파트를 끼고 있었다.

 앞서 설명한 ○○초가 있는 성남 분당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영구·50년공공임대가 통학구역에 포함된 초등학교가 세 곳 있는데, 모두 과소학교다. ○○초 외에도 오리초(125명), 한솔초(144명)가 ‘한 학년당 한 학급’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초와 이웃한 ◇◇초는 물론, 오리초와 약 300m 떨어진 미금초(814명), 한솔초와 약 500m 거리에 있는 수내초(1298명)에는 아이들이 차고 넘친다. 

 서울 ‘대치 학군’과 ‘목동 학군’에 버금가는 ‘분당 학군’에는 자녀에 대한 교육 열망이 높은 중산층이 많아,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낮은 ‘임대아파트 통학구역 학교’가 더욱 고립된 결과로 풀이된다. 분당 학군의 핵심인 정자동에 사는 학부모 하미진(가명)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아무래도 (부모들이) 관리하기 힘들다보니 말썽을 피우고 입도 좀 거칠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학부모들이 우려할 만한 점도 있다. 영구임대 인근 중학교에서 근무한 적 있는 박미혜(가명) 교사는 “분당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돌봄이 평균 수준보다 과잉돼 있어 학교 체제에 비교적 순응적이지만, 임대아파트 아이들은 부모의 돌봄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질서와 통제가 많은 학교생활을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임대아파트 아이들의 문제 행동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이혜정(가명)씨는 “학교에서 임대아파트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며 “학생 수가 워낙 많은 학교에선 (일부 문제 행동이 있더라도) 묻혀서 특별히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학생 수가 적은 (임대 통학구역) 학교에선 일부 문제 행동이 더 주목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한다는 뚜렷한 근거도 없다. 박준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법무사법개혁연구실장은 “빈곤층 밀집 지역의 밀집도가 올라갈수록 주요 범죄 발생률(강도, 강간·강제추행, 절도, 폭력, 살인 등)도 올라가지만, 오히려 밀집도가 가장 높은 영구임대아파트의 경우 범죄 발생률이 뚝 어진다”며 “영구임대가 다가구·다세대에 비해 주거환경이 좋고, 질서가 잡혀있으며, 사회복지지설 접근성이 높은 영향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작은 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잘 지낸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교사·친구들과 유대를 다지고 안정을 느끼며, 교사로부터 개별적인 교육과 돌봄을 받는다. 그러나 누군가 꺼리는 학교에 다닌다는 열패감, 낮은 자존감, 우울감 외에 작은 학교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도 많다. 제한된 인간관계 속에 사회성을 키우기 힘들고, 새로운 자극을 받을 기회도 적다. 또 교원과 예산이 학교 규모에 따라 배정되는 탓에 똑같은 교육환경에서 지낼 권리도 제한될 수 있다. 영어, 음악 등 특정 과목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교과 전담 교사’는 7학급 이상이어야 2명(35학급 미만 기준)이 배치된다. 교사 1인당 수업·행정업무가 과소학교는 교사들에게 피하고 싶은 일터가 되기도 한다.

 주거 불평등과 교육 불평등이 중첩되는 임대아파트 통학구역에선 지금도 새로운 섬이 만들어지고 있다. 무대는 2기 신도시로 옮겨졌다. 경기 성남 위례신도시에서 2016년 문을 연 위례고운초는 올해 입학생 26명이 들어오면 전교생 203명이 된다. 같이 시작한 위례한빛초(1238명), 위례푸른초(965명), 위례중앙초(509명)와 확연히 다른 처지다. 어김없이, 위례고운초 통학구역에는 영구임대(550가구)와 국민임대(2018가구) 아파트가 함께 있는 ‘위례35단지’가 자리하고 있다. 5년, 한 학교가 폐교 위기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방대한 자료 분석과 해석은 김수현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연구교수에게 자문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박찬대 의원실이 수집한 기초 자료의 도움도 컸다.

 자료 분석 결과와 원고지 100매 분량의 분당 ○○마을 르포, 서울과 신도시 곳곳 작은 학교들의 사정을 담은 기사를 <한겨레21> 제1304호에서 볼 수 있다.

변지민 방준호 서보미 <한겨레21>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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