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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소아암 환자의 엄마로 살아온 13년

등록 2020-03-09 18:21수정 2020-03-10 06:05

연재ㅣ김경림의 ‘씩씩하게 뻔뻔하게’

김경림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저자.
김경림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저자.

새봄이 사뭇 어수선하다. 지난 13년 동안 내가 겪은 봄의 혼란스러움이 집약되어 펼쳐지는 것 같다. 나는 그동안 봄만 되면 우울해지거나 몸살을 앓아왔다. 아이와 병원에 갇힌 채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던 때가 떠올라서였다.

13년 전,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이었다. 아이의 감기가 오래갔다. 열이 났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식은땀을 내며 잤고, 계속 피곤하다고 했다.

나는 대학원을 겨우 졸업하고 막 언어치료사 자격증을 딴 참이었다. 육아 잡지 기자로 일하다 마감을 앞두고 며칠씩 철야를 해야 하는 생활을 아이 엄마로서는 도저히 이어갈 수 없어서 방향을 바꾼 진로였다.

3년 동안 친정의 도움을 받아 학교에 다니다 낳은 둘째가 막 두 돌이 지난 시점이기도 해서 큰아이의 오래가는 감기는 걱정스럽기보다는 성가신 일이었다. 몇년 만에 파트타임 일자리도 찾았고 둘째도 종일반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으니 마음이 바빴다.

그러나 큰아이의 감기는 쉽게 낫지 않았다. 두통이 있다고 해서 찍어 본 엠아르아이(MRI)도 정상, 신경과 소견도 정상,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에서도 정상, 심리적 문제인가 싶어 가본 소아정신과에서도 정상.

다 정상인데 왜 아프지 의아해하며 한 달이 넘게 시름시름 감기를 앓던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가 “엄마, 한쪽 눈이 안 보여” 하고 말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니? 흐리게 보인다는 말인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느 날, 티브이를 보던 아이가 “엄마, 한쪽 눈이 안 보여”라고 말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니. 흐리게 보인다는 말인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뭐가 보여?”라고 몇 번을 되묻다가 “까만 색종이가 보여”라는 말에 급히 입원해서 알게 된 병명은 이름도 어려운 ‘중추신경계 림프종’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티브이를 보던 아이가 “엄마, 한쪽 눈이 안 보여”라고 말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니. 흐리게 보인다는 말인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뭐가 보여?”라고 몇 번을 되묻다가 “까만 색종이가 보여”라는 말에 급히 입원해서 알게 된 병명은 이름도 어려운 ‘중추신경계 림프종’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뭐가 보여?”라고 몇 번을 되묻다가 “까만 색종이가 보여”라는 말에 급히 입원해서 알게 된 병명은 이름도 어려운 ‘중추신경계 림프종’이었다. 한 달 전만 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엠아르아이에서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이 뇌에 만든 4개의 ‘병변’이 발견되었고, 하필이면 그 위치가 시신경이 지나가는 지점이어서 눈이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만 7살 아이에게 내려진 암 선고. 나를 지탱하던 모든 현실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렸고, 졸지에 나는 시각장애를 가진 소아암 환자의 엄마가 되었다. 그때부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생활이 시작됐다.

그것은 ‘아이의 잠재력과 능력을 최대로 살리기’로 모이는 모든 육아 지식과 교육에 대한 신념을 통째로 버리는 과정이었다. 또한 엄마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묻는 과정이기도 했으며 무엇이 생명을 살리는 삶인가를 묻는 과정이기도 했다.

올해 드디어 큰아이가 대학에 입학한다. 장애와 상처가 있으나 단단하고 명랑하며 따뜻한 성인이 되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누가 엄마로서 성취를 묻는다면 나는 이것 말고는 꼽을 것이 없다.

김경림

-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저자. 언어치료사, 상담사. 첫아이가 소아암에 걸리자 일을 그만두고 오직 아이 키우는 일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뻔뻔하고 씩씩하게 시련을 자양분 삼아 아이와 함께 성장해왔다. 그 아이는 이제 대학생이 됐고, 필자는 심리상담센터 대표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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