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수밖에 없어요. 학교 정상화를 위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수원대학교에서 해직되어 재판을 하고 있는 장경욱(왼쪽, 문화예술학부) 교수와 손병돈(오른쪽, 컴퓨터학부) 교수가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와우리 수원대학교 정문 앞에서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 화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경기도 화성의 수원대학교는 강원도 원주의 상지대학교와 함께 대표적인 족벌 비리 사학으로 꼽혔다. 재단 설립자 가족이 총장과 이사장 등을 꿰찬 뒤 학교 운영을 사기업보다 더 독단적으로 해왔으며, 교비 횡령과 배임 등의 불법 행위도 여러 차례 적발됐다.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의 반발로 오랫동안 분규를 겪었다. 그러나 지금 두 학교의 상황은 대조적이다. 상지대는 문재인 정부 들어 관선이사 체제로 바뀌면서 정상화의 길을 성큼성큼 걷고 있으나, 수원대는 여전히 이인수 전 총장이 실권을 휘두르며 전횡하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검찰 등 권력이 이인수 봐주기와 감싸기를 한 결과다. 이 전 총장이 아직 이사로 건재한 수원대는 학교 정상화를 외치는 교수들을 여러 명분을 들어 차례로 내쫓고 있다. 심지어 한 교수에게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와 재판 등에서 10여차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지난 연말에 또다시 네번째 재임용 탈락을 시켰다. 전형적인 괴롭히기다.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수원대학교 앞 한 카페에서 장경욱 교수(문화예술학부)와 손병돈 교수(컴퓨터학부)를 만나 지난 7년 동안의 학교 정상화 투쟁과 이로 인한 핍박사를 들어봤다.
“징글징글합니다. 오랜 투쟁 끝에 복직해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년 만에 또다시 재임용 거부를 당하니까 되게 힘드네요. 긴 싸움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은 솔직히 막막하죠.”
손병돈(54·컴퓨터학부)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가 못 견뎌 나가떨어지도록 끝까지 괴롭히는 게 저들의 목적이죠. 재단에 쓴소리하고 대들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서 교수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죠.”
옆자리에 앉은 장경욱(59·문화예술학부·이하 호칭 생략) 교수가 말을 받았다.
컴퓨터그래픽 등 영상미디어 전공인 손병돈은 지난해 12월 말 업적평가 기준에 미달한다며 학교법인 ‘고운재단’으로부터 재임용 탈락을 통보받았다. 교육점수가 부족하고, 연구실적에서도 국제논문 A/B급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 재임용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사 기준은 그동안 여러차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와 행정소송에서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악용 소지 높은 교수 평가 기준
“터무니없이 기준이 높아요. 제 전공이 미술계열인데도 컴퓨터학부에 있기 때문에 이공A계열이라는 건데, 국제 A급 저널이나 B급 저널에 반드시 논문을 써야 한다는 뜻이죠.”(손병돈)
이에 대해 수원대 쪽은 “평가 기준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은 손 교수 개인의 생각일 뿐”이라며 “사실은 지금 우리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대학평가원의 수원대 평가결과보고서(2016년)는 이러한 업적평가제도에 대해 “이공A계열 교수들의 경우에도 2014년, 2015년에 국제 A/B급 30점 이상, 국내 A급 30점 이상의 실적 기준을 충족한 경우가 많지 않다”고 밝혔다. 손병돈에 대한 2차 재임용 거부(2016년 5월)를 놓고 서울행정법원의 판결(2017년 6월)에서도 “이러한 심사기준이 수원대학교에 소속된 통상적인 교수가 달성하기에 적절한 기준인지 의문이 있다”고 했다. 전시 점수에서도 1년에 전시회를 1회만 열면 되는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의 미술계열 전공에 비해 수원대는 ‘국내A급’ 미술관(세종문화회관미술관, 한가람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전시를 2차례 열어야 기준점수를 채울 수 있다.
손병돈은 이번이 4번째 재임용 탈락이다. 앞서 2013년 12월 재임용이 거부된 뒤 2016년 5월, 2017년 8월 등 그동안 세차례나 재임용에서 떨어졌다. 수원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4번씩이나 재임용에서 거푸 탈락한 자격 미달의 교수라고 예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4번의 재임용 탈락은 비리로 얼룩진 수원대 재단을 상대로 벌인 학교 정상화 투쟁의 과정에서 얻은 상처이자 ‘훈장’이다. 앞서 3번의 재임용 거부는 판결을 통해 모두 부당하다며 무효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4년간 한 지역의 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하던 그가 수원대 전임강사(연봉계약제)로 온 것은 2005년 새 학기였다. 비록 한 직급 강등했지만, 열심히 일하면 곧 승진과 함께 봉급도 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순진한 판단이었고, 엄청난 착각이었다. 코피 쏟도록 연구와 강의, 논문 쓰기에 매달렸지만, 매년 학교와 맺어야 하는 재계약 자체가 힘겨웠다.
수원대가 내민 1년짜리 ‘교원임용약정서’는 일방적인 해임이나 계약 해지를 학교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반면에 “을(교수)은 재임용에서 탈락할 경우 이에 대하여 민사, 형사, 행정적인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사실상의 노예계약서였다. 그뿐만 아니었다. 매년 재임용을 위해 받아야 하는 평가 기준이 턱없이 높았다.
국내외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150% 이상 게재해야 하며, 업적평가 점수도 85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업적평가 점수를 100점 이상 3년 연속해서 받으면 승진시켜준다고 했지만, 100점은커녕 아무리 노력해도 1년에 최저기준인 85점을 넘기도 어려웠다. 당연히 대부분의 교수가 10여년 동안 승진도, 급여 인상도 불가능했다. 2014년에 기준을 조금 수정했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교수가 10년이 넘도록 연봉이 4천만원밖에 안 됐어요. 임용 기준 통과하기도 버거운데 승진이 가능한 점수를 어떻게 받을 수 있겠어요. 애초 안 되는 게임룰을 학교가 일방적으로 만들어놓은 거죠.”(장경욱)
“상지대나 성신여대, 평택대 등의 문제 사학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다 정상화됐는데 수원대만 아직도 지지부진하죠. 빨리 관선이사가 파견돼 정상화됐으면 합니다.” 수원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인 장경욱 교수(왼쪽)와 부대표인 손병돈 교수가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수원대 앞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화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등록금반환소송의 배후자로 찍혀
손병돈은 수원대에 온 뒤 2013년까지 9번의 재임용을 받으면서 4번은 겨우 통과했으나 5번은 업적평가 기준에 미달했다. 그때마다 서울 강남에 있는 이인수(당시 수원대 총장)의 개인 사무실에 불려가 야단을 맞은 뒤에 청원하거나 소명서를 제출하여 간신히 구제를 받곤 했다.
“청원과 소명서를 낼 때마다 현재의 업적평가 기준이 지나치게 가혹하므로 현실에 맞게 개선되어야 함을 꾸준히 주장했지만, 전혀 안 받아들여졌죠. 매년 피를 말리는 상황을 겪으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때 임용 동기인 장경욱 교수를 만나 의기투합했죠.”(손병돈)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장경욱과 손병돈은 동료 계약제 교수 3명과 함께 2013년 3월 단체 행동에 나섰다. 수원대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들은 전임교원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교원처럼 매년 임용계약을 하는 상황과 업적평가 기준의 부당함, 학교 경영상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문서를 만들어 개선책을 요구했다. 교무처장 등 학교 쪽은 이른 시일 안에 제도를 고치겠다고 약속했다. 일이 합리적으로 잘 풀리는 줄 알았다. 이에 이들 5명은 그해 ‘교원임용약정서’에 서명을 했다.
그즈음 재단의 오랜 전횡과 비리에도 침묵만 흐르던 수원대에 새로운 기운이 돌았다. 교수들과 학생들이 그동안의 굴종을 벗고 저항의 몸짓을 시작한 것이다. 원로 교수들이 앞장섰다. 교무처장(2005년)을 지낸 배재흠(당시 63·화학공학과)은 이상훈(당시 63·환경에너지학과), 이원영(당시 56·도시및부동산개발학과)과 함께 ‘수원대 교수협의회’를 결성(2013년 3월19일)했다. 이들 3명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교수협의회 설립 선언문은 “(우리는 그동안) 항상 침묵과 수수방관으로 일관해온, 아니 나아가 오히려 부당한 현실에 안주하기만 했”다고 자성한 뒤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체계 확립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수의 신분 안정 △학생의 인권과 학습권의 보호 증진 등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교수협의회는 포털 다음에 카페를 열어 재단의 독단적인 학교 운영 등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장경욱과 손병돈도 교수협의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학교 쪽에서는 학과별로 교수들을 동원해 교수협의회 반대 서명을 받는 등 탄압에 나섰다.
수원대의 학생들 역시 학교 당국과 재단에 대해 억눌렸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장경욱이 교수로 있던 연극영화학부(현 문화예술학부) 학생들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연극영화학부 학생들은 연간 총 4억원에 가까운 실험실습비를 내고 있었지만, 학교는 이들에 대한 지원에 인색했다. 연습실은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찼고, 마룻바닥은 곳곳이 폐허처럼 갈라져서 발을 다치기 일쑤였다. 겨울에는 난방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작품 준비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거둬야 했다. 2013년 5월 연극영화학부 학생들은 수원대 최초로 본관 앞에서 교내 시위를 벌였다. 학교는 부랴부랴 연극영화학부 실습비 지원을 대폭 늘리고, 연습실을 바꿔주는 등 달래기에 나섰지만, 학교의 부정·비리에 눈뜬 학생 88명은 그해 7월 학교와 재단을 상대로 등록금환불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2018년 7월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에게 30만원에서 90만원까지 등록금을 돌려주라고 최종 판결했다.
“처음부터 제가 엄청 미웠을 거예요. 재계약 때 교수들의 집단행동에 앞장서질 않나, 저한테 배우는 학생들이 교내 시위를 벌이질 않나 학교가 볼 때 말썽 생기는 곳에는 빠지지 않았잖아요. 시위하는 학생들이 부른 노래조차 제가 지도했던 뮤지컬에 나오는 노래였어요. 학교 당국에서는 시위와 등록금환불소송의 배후 조종자로 저를 꼽았죠.”(장경욱)
업무상 배임과 횡령, 배임수재, 사문서 위조 등 40건의 혐의로 고발된 이인수 수원대 총장이 첫 공판을 받는 2016년 2월15일 오전 수원대 교수협의회와 참여연대 회원 등 관계자들이 수원지법 앞에서 이인수 총장 구속 촉구 및 수원대 이사회 승인 취소를 호소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 셋째가 손병돈, 오른쪽 둘째는 장경욱 교수. 수원/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권 교체 뒤에야 복직시켰지만
수원대는 교수협의회 교수들에 대한 보복에 나섰다. 2013년 말 재임용 과정이 첫 순서였다. 재임용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 장경욱·손병돈 두명은 ‘예상대로’ 탈락했다.
“2013년 업적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고 그해에는 이를 악물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한해에 9편의 공연 연구실적에 3편의 학생 공연을 지도했어요. 강의도 많이 했어요. 그러나 학교에서는 20점 만점의 봉사 점수를 단 2점을 줘서 기준점인 85점에서 불과 1.22점이 모자라게 만들어서 재임용 불가라는 해임 통지서를 보내왔지요. 표적 자르기를 위한 각본대로 한 거죠.”(장경욱)
정교수였거나 호봉제 교수로 그해 재임용 심사 대상이 아니었던 배재흠·이상훈·이원영 세 공동대표와 이재익(당시 54·건축공학과) 등 4명에 대해서는 2014년 1월 파면했다.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재단의 부정과 비리 행위를 알려서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이유였다. 교수협의회를 주도한 교수 6명을 재임용 거부 또는 파면으로 모두 학교 밖으로 쫓아낸 것이다.
“먼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둘이 함께 재임용 거부 취소를 청구했고, 소청심사위원회는 저희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그해 4월에 내렸죠. 그러나 재단은 소청위의 결정을 수용하기는커녕 서울행정법원에 소청위 결정을 되레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걸었어요. 2016년 1월 대법원까지 갔지만 결국 학교가 졌어요. 그런데도 학교는 또 재임용을 거부하고, 그러면 다시 소청심사위와 행정소송 3차례 등 4번씩 재판을 하죠. 우리가 다 이겼어요. 학교로서는 시간을 끌어서 우리를 지치게 하려는 속셈이죠.”(손병돈)
교원소청심사위에서는 ‘수원대가 2002년 이전에 채용된 교수에 대해서는 3년에서 6년마다 재임용 심사를 하는 데 비해 2002년 이후의 교수들에 대해서는 매년 재임용 심사를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2002년 이후 채용된 교수들에 대해 더 엄격한 평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은 위법하다’고 결정했다. 서울고법의 행정소송 2심(2015년 8월)에서는 특히 수원대의 재임용 제도와 관련해 “일부의 자격 미달자를 재임용 과정을 통해 배제하는 심사구조가 아니라 해당 대학의 연구 내지 교육여건 등을 고려할 때 다수의 교원이 현실적으로 재임용 심사를 통과하기 곤란할 만큼 엄격한 평가 기준을 설정한 다음 일차적으로 탈락한 교원 중 상당수를 자의적 기준을 통해 구제함으로써 사립학교법이 정하고 있는 교원의 재임용 절차를 대학 쪽이 사실상 회피하려는 시도는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수원대가 교수들이 통과하지 못할 기준을 정해놓고, 자의적으로 말 잘 듣는 사람은 구제하는 방식으로 재임용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3년 재임용의 경우 21명의 내국인 교원이 기준 미달자로 분류됐으나, 학교는 여러 이유를 들어 17명은 구제했다.
장경욱은 대법원 판결 4개월 만인 2016년 5월 복직은 했지만, 수원대는 그를 본래 위치인 연극영화학부가 아니라 교양학부에 배치했다. 연기 실기를 가르치는 게 본업인 그에게 이론 수업만 하게 하고, 연극영화학부 학생들은 접촉하지도 못하게 했다.
“학교에 들어왔지만, 또 싸워야 했어요. 연극영화학부로 가기 위해 또다시 가처분 소송을 벌여야 했어요. 소송에서 이기고 나서야 원상복귀가 이뤄졌죠.”(장경욱)
그러나 2017년 5월 박근혜 정권에서 문재인 정권으로 바뀌자,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괴롭히기는 잠시 멈췄다. 손병돈에 대해 대법원의 판결(2016년 1월)까지 무시하던 수원대는 5년 만인 2018년 3월 특별 신규임용 형식으로 그를 복직시켰다.
파면됐던 이원영도 대법원 승소(2016년 10월) 후 복직됐다가 또다시 학교의 재임용 거부로 법적 투쟁을 한 끝에 2018년 3월에 복직했다. 이재익도 복직한 뒤 근무하다가 학교 쪽의 재임용 심사에서 불명예를 더는 겪고 싶지 않다면서 사직(2018년 8월)했다. 배재흠, 이상훈은 파면 무효 소송에서 이기고 앞서 정년퇴임했다.
수원대 교수협의회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4년 11월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 딸의 수원대 교수 특채 의혹 등 수원대 사학비리를 철저히 수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왼쪽 셋째가 손병돈 교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교협 교수 6명 다 쫓아냈으나
학교, 모든 법정 투쟁에서 패배
설립자 아들 이인수 전 총장
해임됐어도 여전히 실권 장악
“재임용 탈락 등은 규정 따른 것”
학교의 미투 공작?
학교로 돌아온 ‘투사’들은 학교 정상화의 깃발을 더 높이 들었다. 장경욱과 이원영은 교수협의회의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손병돈도 부대표직을 떠안았다. 장경욱은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자격으로 2017년 9월 이인수 일가의 수원대 재단 비리를 교육부 국민제안센터에 제보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여러 차례 감사원 감사와 교육부 감사를 받고도 계속되고 있던 재단 비리였다. 그의 제보로 교육부는 2017년 10월부터 수원대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으며, 그 결과 교비 회계 부정과 사적 용도 사용 등을 적발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인수 총장의 파면과 함께 이사 7명에 대한 승인 취소, 110억여원의 회수 조처를 내린 뒤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러나 수원대는 제보자가 장경욱이며, 교수협의회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교육부의 한 공무원이 수원대 쪽에 비밀을 누설했다.
“교육부와 수원대 당국과의 유착관계가 보통이 아니어서 제보자가 누구인지가 학교에 들어갈 것이라고 각오했어요. 그 일로 저한테 불이익이 오더라도 학교 정상화를 위해서는 제보를 해야 한다고 결심했죠.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보복이 들어올지는 전혀 예상 못했어요.”(장경욱)
그런 방식이란 2018년 2월 터져 나온 장경욱을 가해자로 지목한 미투 사건을 말한다. 그해 2월 말 수원대 페이스북에 익명의 제보자가 자기 동생 학교 다닐 때의 일(2010년)이라며 확인되지도 않은 확인할 수도 없는 내용을 올렸다. 수원대 학생회가 다음날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곧이어 학교에서 조사에 나섰다. 학교에서는 추가 피해 여부를 대대적으로 조사했고, 연극 실기 시간(2017년 10월)에 장경욱이 연기 지도를 하면서 몇 학생들에 대해 신체 접촉이 있었고, 이것이 성추행이라고 주장하는 이메일 제보가 며칠 뒤 들어왔다. 학교는 이를 근거로 2018년 6월 그를 해임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수원지검은 그해 8월 “연기 지도를 하는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며, 연극 실기수업에서는 어느 정도의 신체 접촉이 수반된다”며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했다. 수원대가 항고했지만, 수원고검도 며칠 전 무혐의 처분을 했다.
“저는 미투 사건의 배후에 학교와 재단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떡해서든 저를 옭아매 쫓아내려는 거죠. 학교 관계자들이 미투 제보가 터지기 직전 겨울방학 때 학생들을 찾아다니면서 저에 대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얘기를 해주면 근로장학생 자리를 주겠다는 식으로 제의하고 다녔다는 얘기를 당사자 학생한테 직접 듣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른바 수업 때 저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생 일부가 진술을 번복하려 하자, 몇몇 학과 내 보직 교수가 ‘이러면 너희가 무고로 뒤집어쓰게 된다. 그러니 끝까지 가야 한다’고 협박 조로 종용했다고 해요. 공익제보에 대한 보복이죠.”(장경욱)
수원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사자는 교협 활동에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이런 일은 학교에서 만들 수도 없지 않으냐. 학생들이 제기해서 생긴 문제”라며 “장 교수가 해임이 무효라며 제기한 민사소송 결과가 나오면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손병돈은 며칠 전 한 학생한테 이메일을 받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새 학기 강의계획서에 교수님 이름이 있었는데 없어졌더라. 그러던 중 우연히 기사를 보고 재임용에 탈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이 안 되는 조치다. 여러 재학생이 교수님의 부당한 해직 위기 소식을 접하여 같이 분노하고 있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메일이었다.
“4년간 학교를 떠나 있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되기에 아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요. 예전 제자들은 다 졸업했고요. 요즘 학생들은 잘 뭉치지도 않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어요. 그런데 그 메일을 받고는 ‘여기서 제가 약해지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격려와 관심 때문에라도 학교 정상화를 위해 다시 싸울 것이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그 학생에게 답했어요. 힘들기는 하겠지만, 싸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잘 버틸 겁니다. 지금은 싸우는 것 말고는 제가 할 것도 없잖아요. 와우리(수원대가 위치한 동네 이름)에 봄이 오길 고대하며,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손병돈)
“상지대나 성신여대, 평택대 등 그동안 문제 됐던 사학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다 정상화됐는데 수원대만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속이 터져요. 우리야 학교 정상화를 위해서 끝까지 싸우겠지만, 지금이라도 재단이 스스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학교를 이런 식으로 틀어쥐어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에게 사과해서 재단 스스로 학교를 정상화했으면 좋겠어요. 학교 위치가 오죽 좋아요. 그동안 쌓아놓은 적립금도 많고 하니 학교만 정상화되면 수도권의 명문 대학으로 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죠. 정말 모범적인 대학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정년퇴임을 하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요.”(장경욱)
수원대 교수협의회 활동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 거부와 해임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손병돈 교수(왼쪽·컴퓨터학부)와 장경욱(문화예술학부) 교수가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수원대학교 정문 앞에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취재에 응하고 있다. 화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소청심사위 결정 안 따를 땐 제재를
7년이 넘도록 비리 사학과 싸우면서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에 기속력이 없다는 점이에요. 소청심사위에서 결정이 나도 사학재단은 이를 따르지 않고, 소송으로 버텨요. 그래서 비리 재단과 싸우는 교수나 교직원 등 사학재단의 구성원들은 정말 힘들어요. 사학법 개정이 야당 반대 때문에 힘들다면 우선 시행령이라도 고쳐서 소청심사위 결정을 따르지 않는 사학에 강한 페널티를 줘야 해요.”(손병돈)
“재임용 거부와 파면을 당한 우리 6명이 재단 이사들과 징계위원, 인사위원 등 개인들을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있어요. 부당하고 위법한 걸 알면서도 재임용 거부와 파면 처분을 한 데 대해 민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였는데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 민사45부(재판장 김진철)는 우리에게 최고 4500만원씩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했어요. 앞으로 2, 3심이 남아 있지만, 저는 이게 굉장히 의미가 있어요. 조직의 이름으로 불법 부당한 일을 저지르면 각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선례가 되기 때문이죠.”(장경욱)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를 나온 두 사람은 걸음을 떼지 못한 채 건너편 학교 정문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비리 뇌관은 설립자 아들 이인수 전 총장과 ‘내부자들’
‘사학비리 백화점’ 수원대
2009년부터 9년간 총장 맡아
비리 저지른 설립자 아들 이인수
검찰, 200만원 약식기소 ‘봐주기’
김무성 대표 친분, ‘조선일보’ 사돈 등
정·관계, 언론계 인맥이 뒷배경 노릇
문재인 정부 교육부 감사 결과
검찰, 6억여원 빼돌린 혐의 또 기소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인수 수원대 총장이 2016년 2월15일 첫 공판을 받기 위해 학교 관계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수원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수원/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수원대가 ‘사학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을 떠안게 된 원인은 2009년부터 2018년까지 9년간 총장으로 재직한 이인수(68) 전 총장 탓이다. 수원대 학교법인 고운학원의 설립자, 고 이종욱 총장의 둘째 아들인 이인수 전 총장은 교비 횡령·배임 등 크고 작은 사학비리로 의혹을 받아왔다. 2011년 감사원 감사, 2014년 교육부 종합감사로 그의 비리 실태가 대부분 드러났다. 이미 숨진 아버지가 버젓이 임대계약서에 서명하고 이사회를 주재하는가 하면 총장 판공비를 사용하는 등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총장의 아들이 허위 졸업장을 받아 미국 대학에 편입하고, 계약직으로 일하는 학교 직원들이 총장 개인 소유의 회사에서 일하고 학교가 월급을 주기도 했다.(<한겨레> 심층보도, 2016년 2월13일·27일치 1·3·4면)
그러나 수원지검은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사문서 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뇌물공여, 사립학교법 위반 등 40건의 혐의로 고발된 이인수 총장에 대해 학교 돈 7500만원을 빼돌려 소송비용 등으로 쓴 혐의(업무상 횡령 등)에 대해서만 200만원으로 약식기소(2015년 11월)했다. 17개월 동안 수사하면서 압수수색도 한번 하지 않은 ‘솜방망이 처벌’을 두고 검찰의 ‘역대 최대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이인수 총장을 감싸는 세력은 검찰뿐이 아니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각별한 친분을 맺어온데다 조선일보 사주의 사돈이라는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김무성 전 대표의 딸은 경력 미달에도 수원대에 교수로 임용돼 특혜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중진 의원들이 이인수 총장의 뒷배경 노릇을 하면서 번번이 그에 대한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 불발됐다. 그러나 수원지법은 약식기소된 이인수 총장을 이례적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고 1심에서 징역 4개월(집행유예 1년),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거의 법망을 피해왔던 이인수 총장에 대한 ‘철퇴’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가능해졌다. 출범 초기부터 사학비리 근절에 나선 교육부는 2017년 10월 수원대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이인수 총장과 그의 아내인 최서원 전 이사장이 학교와 법인을 장악해 학교 돈을 쌈짓돈처럼 써왔음을 확인했다. 교육부 사학혁신추진단이 지적한 주요 사항을 보면, 교비 회계로 가야 할 학교건물 이용 기부금 104억여원이 다른 회계로 세입 처리되고, 총장의 아버지 장례식·추도식 비용 2억여원과 총장 개인의 연회비·후원금 등 1억원을 교비에서 집행했다.
교육부의 수원대 비리에 관한 실태조사가 끝난 직후 이인수 총장은 이사회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수원대는 사표를 수리했다. 일단 파면을 피하고 나중에 재단에 복귀하려는 꼼수 사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부가 제동에 걸자, 고운학원은 이 총장을 결국 해임했다. 검찰은 교육부 감사 결과를 토대로 수사를 벌인 뒤 지난해 5월 교비와 학교 임대료 6억8천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이인수 전 총장을 다시 재판에 넘겼다.
이인수 총장 등이 사학비리를 저지르는 동안 수원대는 교육환경 개선을 뒷전으로 둔 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쌓는 데 급급했다. 수원대는 전국 사립대학 중 4번째로 많은 4000억원 가까운 적립금과 이월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등록금 환원율’(학생들이 낸 등록금 가운데 교육비로 쓰는 비용의 비율)이 100%를 상회하는 대부분의 대학과 달리 70% 정도에 그쳤다. 등록금 대비 실험실습비와 학생지원비는 수도권 종합대학교 평균의 각각 41%와 8.98%에 불과했다. 대법원은 2018년 7월 수원대 학생 50명이 이인수 총장 등을 상대로 낸 등록금 환불 소송에서 학생 1인당 30만원에서 90만원씩 등록금을 환불하라고 선고했다. 학교 재정이 넉넉한데도 학교가 질 나쁜 교육환경을 제공했다며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는 느리지만 실현되는 중이다. 사학비리 임원이 다시 학교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2018년 6월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학교 법인 정상화를 심의할 때 비리 이력이 있는 이사의 정이사 추천을 제한하도록 사립학교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이다. 또 지난해 12월 교육부는 사학비리 임원의 결격 사유를 교육공무원 수준 이상인 파면 10년, 해임 6년으로 강화하고 당연 퇴임 조항을 신설하도록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