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책을 감싸고 있는 겉표지를 활용해 ‘책 표지 가방 만들기’를 해보자. 책 아코디언이나 ‘글자 우산’ 만들기도 좋은 방법이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감동했거나 인상적인 부분을 투명 우산에 장면별, 시간대별로 쓰고 그려보며 표현하는 것이다. 교육부 블로그 갈무리
“독후감 쓰라는 건 어른들이 편하자고 하는 거죠. 안 그래도 읽기 싫었을 텐데 그 책 내용까지 쓰라고 하면 고통스럽겠죠. 글자와 친해지려면 우선 보호자와 아이가 대화를 많이 해야 해요.”
<공부머리 독서법>을 펴낸 최승필 작가(독서교육전문가)의 말이다. 많은 보호자들이 ‘우리 아이 책 좀 읽히려고’ 갖은 방법을 다 쓴다. 거실에 티브이를 없애고 서재를 만들거나, 옆집에서 샀다는 전집 한 질을 들여 아이가 읽기만을 바라기도 한다.
전집은 필요할까?
한데 독서교육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아이가 책 읽기 습관 만들기에 실패하는 이유, 즉 글자와 노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독서는 공부’라는 생각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아이의 흥미와는 거리가 먼 30~50권의 전집을 서가에 채우거나 ‘빨리 똑똑해지라고’ 과학‧역사 도서 시리즈를 들이밀면 역효과만 난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에 비자발적으로 글자를 읽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평생 독자로는 성장하기 힘들다. 유아·초등 시절부터 글자와 친숙해진 뒤 놀듯이 읽는 게 중요한 이유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애초에 전집은 아이가 원하는 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최 작가는 “전집의 마케팅 전략이 독서를 공부로 만들어버렸다. 연령에 따라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알아야 할 지식이 있다고 말한다”며 “전집을 시기에 맞춰 읽지 않으면 학습 경쟁에서 뒤처진다고들 한다. 이 주장에 설득되는 순간 독서는 학습이라는 프레임에 빠진다”고 강조했다. 놀이여야 할 글 읽기가 공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글자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책을 감싸고 있는 겉표지를 활용해 ‘책 표지 가방 만들기’를 해보자. 책 아코디언이나 ‘글자 우산’ 만들기도 좋은 방법이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감동했거나 인상적인 부분을 투명 우산에 장면별, 시간대별로 쓰고 그려보며 표현하는 것이다. 교육부 블로그 갈무리
쉬운 책으로 놀아보기
유아가 있는 집이라면 먼저 그림책 등 ‘쉬운 글자’로 놀아보자. 유아가 글자를 읽지 못해도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고 할 때엔 반드시 읽어줘야 한다.
아이에게 책 선택권을 전적으로 준 뒤, 연극을 하듯 목소리도 바꿔가면서 책을 읽어주는 게 좋다. 아이가 같은 책만 반복해서 뽑아 올 경우 마다하지 말고 읽어주고 또 읽어주는 걸 추천한다. 반복 독서만큼 질 높은 독서가 없다는 게 독서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식도서를 읽히려 들지 말고 1권, 2권, 3권 등 순서대로 읽힐 필요도 없다. 다만 아이가 그만 읽자고 할 때 바로 멈추자. “이거 한 권만 다 보고 밥 먹자”라고 말하는 순간 글 읽기는 더 이상 즐거운 놀이가 아니라 스트레스 받는 일이 된다.
초등학생 ‘읽기 독립’ 하려면
최 작가 등 독서교육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체 학생 중 적어도 20~30%가량은 심각한 읽기 열등 상태인 것으로 추정한다. 이야기 책을 못 읽는 아이들은 교과서도 못 읽는다. 아이가 읽기 위기를 잘 넘겼는지 살펴보려면 책의 줄거리를 가늠자로 쓸 수 있다. 상세하고 정확하게 말한다면 1학년 우수 수준, 단순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평균 수준으로 본다.
글자와 친해지고 흥미가 확장되는 일주일을 보내보는 것도 추천한다. 일주일에 한번 아이와 함께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 읽을 책 5권을 고르게 한다. 아이 학년 수준에 맞는 책부터 읽으면 눈에 들어오는 글자 하나하나가 이야기가 되어 입력된다.
그다음 5일 동안에는 독서 시간을 정해 책 읽기를 해보자. 보호자가 먼저 10분 읽어준 뒤 아이가 40분 책 읽기, 남은 10분은 대화하기 등으로 진행하면 된다. 남은 하루는 ‘책거리’를 해주는 게 좋다. 일종의 보상으로, 아이에게 성취감을 안겨주며 글 읽기의 확장을 도울 수 있다.
“어떤 등장인물이 좋아?” “그 장면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니?” 등 질문을 구체적으로 던지는 ‘독서 퀴즈’도 시도해보자. 다만 보호자가 질문을 애매모호하게 던지면 소용없다. 초등 독후활동으로 가장 좋은 건 자기 자신을 표현해낼 수 있는 대화다. 대화는 아이가 글자를 입력하고 출력하는 사고 과정이다.
글자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책을 감싸고 있는 겉표지를 활용해 ‘책 표지 가방 만들기’를 해보자. 책 아코디언이나 ‘글자 우산’ 만들기도 좋은 방법이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감동했거나 인상적인 부분을 투명 우산에 장면별, 시간대별로 쓰고 그려보며 표현하는 것이다. 교육부 블로그 갈무리
책으로 어떻게 놀아볼까?
독서교육 전문가들은 독후활동을 독후감으로만 한정하지 말라고 권한다. 아이가 읽은 책을 감싸고 있는 겉표지를 활용해 책 표지 가방 만들기를 해봐도 좋다.
책 표지의 한쪽 끝을 1~3㎝ 정도 접어서 반대편과 붙여 표지의 양 끝이 연결되어 원통 모양이 되도록 한다. 접은 선을 기준으로 세로선을 세 군데 더 접어서 쇼핑백 모양을 만들어준 뒤 바닥 부분을 접어서 붙이면 가방 모양이 된다. 끈으로 손잡이까지 달면 나만의 가방이 완성된다.
글자 우산 만들기도 좋은 방법이다. 읽고 나서 가장 감동했거나 인상적인 부분을 투명 우산에 그려보며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에 따라 가장 재미있던 문단 부분의 삽화를 그대로 그려 넣기도 하고,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산에 표현할 수도 있다.
아코디언 북 만들기도 글자와 친해지는 좋은 방법이다. 도화지 등 평면에서 쓴 글자와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아코디언 북은 계속해서 연결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독서 이력 기록에도 적합하다.
독서 카드를 만들어 카드 앞면에는 줄거리와 책의 열쇳말을 쓰게 하고, 뒷면에는 감상을 그림이나 낙서, 메모 등으로 표현해보도록 하자.
독서 만화를 그리는 경우 아이가 책에 나오지 않은 결말을 상상해 그려볼 수 있다. 글자를 읽은 뒤 이를 수용하고 책의 줄거리를 단계별로 배열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밖에 독서 신문을 만들어 주인공을 가상 인터뷰 해보거나 책의 배경지식에 대한 글이나 사진을 함께 게재하는 것도 책과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다.
글자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책을 감싸고 있는 겉표지를 활용해 ‘책 표지 가방 만들기’를 해보자. 책 아코디언이나 ‘글자 우산’ 만들기도 좋은 방법이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감동했거나 인상적인 부분을 투명 우산에 장면별, 시간대별로 쓰고 그려보며 표현하는 것이다. 교육부 블로그 갈무리
하루 1개의 신문기사가 약이 된다
초등 고학년의 경우 하루 한 꼭지의 신문기사가 ‘읽기 대장’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매일 저녁 아이와 함께 신문을 펼쳐본 뒤 스포츠, 문화, 정치, 사회, 사설면 등을 톺아보며 아이가 읽고 싶어 하는 기사를 한 개 오려둔다. 하루에 그 기사 하나를 소화시키는 게 핵심이다.
먼저 기사가 몇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나누어 보도록 한다. 각 단락의 핵심 문장을 찾고 기사 주제와의 연계성을 순위를 정해 나열해본다. 전체 글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 문장에 밑줄을 그어봐도 좋다.
여러 개의 핵심 문장들을 연결해보면 글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기사나 사설 속에는 한자어로 된 낱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낱말 기록 수첩을 만들어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본 뒤 예문까지 적어보면 어휘력은 물론 문해력까지 키울 수 있다. 책에 있는 글자를 아이가 막연하게 미루어 짐작해서 읽기보다는, 정확한 낱말 뜻을 알고 글자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독서교육 전문가들은 유아 또는 초등 시절부터 보호자와 아이 관계가 돈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어그러져 있으면 글자 수용력도 고꾸라질 수 있다.
독서도 관계에서 시작한다
독서교육 전문가들은 유아 또는 초등 시절부터 보호자와 아이 관계가 돈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어그러져 있으면 글자 수용력도 고꾸라질 수 있다.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장은 “지금 당장 성적 몇 점 올리려고 어려운 책을 강권한다거나 ‘옆집 누구는 벌써 두꺼운 책을 읽는다는데’라는 등 비교는 금물”이라며 “일단 아이가 책을 집어 들게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러려면 보호자는 믿는 마음으로 아이의 반 발 뒤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자와 친해지는 법이요? 글자 읽기를 공부 잘하는 길로 생각하기보다는, 생각이 확장되는 경험 그 자체라고 여겨야 합니다. 아이가 적극적으로 골라 온 책을 믿어주세요. 그리고 그림 그리기, 일기, 책 우산 만들기 등 다양한 독후활동을 경험해볼 수 있게 해주세요.”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