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2019 교육분야 국정과제 중간점검회 토론자료집’ 가운데 공영형 사립대 관련 대목.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공영형 사립대’를 위한 올해 예산 가운데 95%가 아직 ‘수시배정’으로 묶여있는 상태로 확인됐다. 공영형 사립대에 대한 반복되는 ‘홀대’에, 정부가 과연 공약을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까지 제기된다.
13일 교육부와 공영형 사립대 정책연구에 참여한 학자들, 여영국 정의당 의원 등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책정된 공영형 사립대 기획연구사업 예산(10억원) 가운데 ‘도입 필요성 연구’에 쓴 5천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9억5천만원은 아직 쓰지 않은 상태다. 이 사업은 기획재정부 판단에 따라 예산 배정을 유보해두는, ‘수시배정’ 사업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은 예산을 ‘불용’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교육부로선 남은 한 달 반 동안 곳간 열쇠를 쥔 기재부와 협의해 예산을 배정받은 뒤 집행까지 마쳐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공영형 사립대는 경영이 어려운 사립대에 국가 재정을 투입해 대학의 책무성·공공성을 높이는 모델로, ‘국립대학 육성사업’과 함께 문재인 정부 고등교육 분야의 핵심 공약이자 국정과제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정부 예산안이 0원으로 책정되는 등 ‘홀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나마 지난해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기획연구’ 명목으로 간신히 10억원 예산을 책정 받았는데, 11월 중순이 될 때까지 이를 5%만 쓴 상태다. 교육부로선 2020년 예산 역시 국회에 기대야 한다.
교육부와 정책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은 “기재부와 협의만 되면 올해 예산 집행에는 문제없다”고 보고 있다. 당장 추진해야 할 사업은, 10~15곳 사립대들에 재정위원회 등 국립대 수준의 책무성 강화 방안을 적용해보고 그 효과가 어떤지 살펴보는 실증연구다. 교육부 관계자는 “실증연구는 내년에 시작할 시범학교 사업과 연결된다. 내년 예산은 국회에서 반영해주리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3차 정책연구 책임자인 안현효 대구대 교수는 “실증연구에 참여하겠다는 사립대들이 꽤 많아,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수행한 ‘공영형 사립대 도입 필요성 연구’ 발표 가운데 공영형 사립대의 가능한 유형들을 정리한 대목.
그러나 최근 정부 일각에서는 공영형 사립대보다 ‘지역혁신체제’(RIS)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나온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이 산업 개발과 인재 양성을 결합한 협력 체제를 만들면, 중앙정부에서도 투자한다는 개념이다. 교육부는 올해 대학혁신지원사업에 ‘지역혁신형’(RIS)을 신설하고 내년 108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지자체-대학 협력 추진을 위한 전담팀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공영형 사립대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보다는 ‘지역혁신형’ 지원사업이 더 유망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등 대학 서열화 해소 방안을 묻는 질문에 “내년부터 시작하는 지역혁신플랫폼 사업으로 새로운 모델이 생겨날 것”이라 말했다.
이에 대해 김삼호 대학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정부가 고등교육 분야에서도, 지역균형개발 분야에서도 큰 밑그림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지역혁신체제’라는 수단만으론 공허한 ‘레토릭’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여영국 정의당 의원은 “‘지역혁신형’은 지역을 살리는 긍정적 효과뿐 아니라 지역간 불균형 심화도 가져올 수 있다”며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공영형 사립대 등 대학 공공성 등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공약과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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