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 있는 백신중학교는 다문화 예비학교(이하 예비학교)를 2년째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타이, 몽골, 중국 등에서 온 학생들이 예비학교 수업 시간에 한글을 배운 뒤 표현예술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지난 8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시에 있는 백신중학교 다문화 예비학교 수업 현장을 찾았다. 아이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들리는 학교 복도를 지나 ‘다문화 예비학교’ 교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경쾌하게 열리는 교실 문 뒤로 10여 명의 아이들이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교재는 <표준 한국어>. 백신중은 다문화 가정이나 중도입국 학생(해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를 따라 입국한 경우) 등을 대상으로 2년째 다문화 예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 상급학교 올라갈수록 낮아지는 진학률
지난 5월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다문화학생은 12만2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2825명(11.7%) 늘었다. 다문화학생은 지난 2012년 4만7000여명에 불과했지만 해마다 증가해 2017년 처음으로 10만명을 돌파했다. 전체 학생 수에서 다문화학생 수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꾸준히 증가해 학생 100명 가운데 2명 이상은 다문화학생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문화 학생의 비중은 상급 학교로 올라갈수록 낮아진다. 다문화 초등학생은 9만3027명으로 전체 학생의 3.4%인 반면 중학생은 1.4%(1만8068명), 고등학생은 0.7%(1만688명)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다문화학생들의 낮은 상급학교 진학률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다문화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언어와 문화 차이다. 학교에 입학하더라도 언어가 낯설게 느껴지니 등굣길이 즐거울 리 없다.
한데 백신중학교는 학교와 마을공동체가 손잡고 이들을 보듬었다. 경기도형 다문화 예비학교인 백신중학교는 한국마사회, 고양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마을공동체와 협력해 교육 프로그램 등을 지원한다. 학교 밖에 있던 다문화가정 학생이 공교육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준 것이다. 일종의 ‘프리 스쿨’ 개념으로 이 과정을 수료하면 학력 및 학적이 인정된다.
지난 8일 오전 경기 백신중학교 다문화 예비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유금란 표현예술심리치료사(오른쪽 두 번째)와 함께 꿈나무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 “수준별 맞춤 교육하니 흥미 느끼더라”
지난 8일 오전 백신중학교 다문화 예비학교 1교시 한국어 시간. 디귿자(ㄷ)로 놓인 책상 한가운데 안진숙 강사가 자리 잡고 아이들을 개별 지도하고 있었다. 모국어인 타이어 사전을 찾아 한글로 번역해보는 학생, 교재에 나온 한글 관련 활동 게임을 옆자리 친구와 함께 해보는 학생 등 각자 공부하는 단원은 조금씩 달랐다. 안 강사는 “아이들의 국적이 다 다르고, 한국어의 수준 역시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한 명씩 꼼꼼하게 봐주고 있다”고 말했다. “경직된 수업이 아니라 아이들이 적응을 더 쉽게 합니다. 제법 자유로운 교실 분위기가 형성되면 서로가 서로를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학습 동기가 살아나는 것이지요.”
지난해 한국에 왔다는 사밋 차니타(16·타이) 학생은 한국어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한국에 온 지 1년 정도 됐는데 다문화 예비학교를 통해 친구를 사귀고 한국 문화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차니타는 “책가방을 챙겨 아침 9시 30분까지 학교에 온다”며 “오후 4시까지 한국어, 표현예술, 진로 상담, 드론 체험 등 다양한 수업을 듣고 있다”고 했다. 차니타보다 한 살 아래인 심나미(15·타이) 학생은 ‘명필가’였다. 원고지 쓰는 법을 배운 뒤 정돈된 글씨체로 쓴 일기에서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경기 고양시에 있는 백신중학교는 다문화 예비학교(이하 예비학교)를 2년째 운영하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타이, 몽골, 중국 등에서 온 학생들이 예비학교 수업 시간에 한글을 배우고 있다. 김지윤 기자
■ 서로 돕는 분위기에서 빨리 적응해
물론 모두가 한국어에 능숙한 건 아니다. 데무진(15·몽골) 학생은 김준(14·몽골) 학생의 통역 덕분에 다문화 예비학교에 안착했다. 그런 준이에게 고마워 백신중 다문화 예비학교에 정을 붙이게 됐다.
중국, 몽골, 타이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같은 과목을 배우다보면 소소한 다툼이 일어날 법도 한데, 기우였다. 노홍매(16·중국) 학생은 “일단 아침에 올 데가 있어서 좋다. 가방을 메고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어 즐겁다”며 “중국에서의 공부를 이어가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문화 예비학교를 통해 한국에 천천히 적응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그냥 혼자인 느낌이었죠. 학교는 가고 싶은데 다른 나라 학교라 무섭기도 하고, 중국에서의 학적을 인정해주지 않는 곳도 있어 혼자 실망했던 때도 있었어요.”
■ 꿈나무 만들며 마음을 표현해보다
오전 11시 10분. 다문화 예비학교 역시 여느 교실처럼 마찬가지로 경쾌한 수업종이 울렸다. 교실 안팎에서 놀던 아이들이 2교시 표현예술 수업 시간이 되자 책상을 교실 한가운데로 모아 정렬했다.
이 시간에는 유금란 표현예술심리치료사를 비롯해 미술심리치료를 전공한 모현주 보조강사, 김나영 보조강사가 함께 들어왔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자리에 둘러앉아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였다.
“오늘은 꿈나무 만들기를 할 거예요. 나뭇가지와 여러 미술 재료를 이용해 자신만의 꿈나무를 완성해봅시다. 완성한 나뭇가지에는 소원 쪽지를 걸어볼 겁니다. 자신이 원하거나 되고 싶은 것을 쪽지에 적어 매달아보세요.”
유금란 강사가 수업을 열자 아이들은 털실, 스폰지, 형광색 끈 등을 활용해 만들기를 시작했다. 몇몇 주저하는 아이들이 보이자 유 강사는 “꼭 꿈이 없어도 괜찮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능력을 써도 된다”고 격려했다.
유 강사가 진행 발언을 하자, 몽골에서 온 김준 학생이 ‘건강’이라는 말을 제일 먼저 적었다. 첫 쪽지를 자신의 꿈나무에 걸면서 준이는 “선생님, 경찰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고 물었다. 준이가 두 번째로 걸어올린 꿈은 ‘경찰관’이었다.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해 경찰관이 되고 싶어요. 부모님과 우리 가족이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하고요.”
■ 이중언어 강점 살려주는 학교도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의 ‘다문화가족’은 31만 가구에 이른다. 한해 출생아 20명 가운데 1명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다. 더 이상 다문화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 아닌 우리 이웃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다문화학생이 전교생의 47%에 이른다는 안산 선일중학교도 아이들의 이중언어 능력을 키워주거나 적극 장려하는 등 이들의 장점을 살려주는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 5월18일 경기 수원 경기도인재개발원 다산홀에서 열린 ‘제10회 전국 다문화가족 말하기 대회’에서 선일중은 정막심 학생을 비롯한 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중언어 영역에 도전한 정막심, 안티무르 학생은 러시아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장점을 살려 언어 및 경영 분야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태회 경기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장은 “다문화교육은 한국의 미래교육일 수 있다”며 “공교육 현장에서 다문화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관련 기사] “다문화 학생 위한 진로·직업 교육, 꼭 필요해”
인터뷰/ 이태구 백신중학교 다문화 예비학교 담당 교사
지난 8일 이태구 경기 백신중학교 다문화 예비학교 담당 교사가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좌충우돌이죠. 엄마와 다툰 뒤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필리핀 학생부터 우리 예비학교에서 공부에 재미를 붙인 몽골 학생까지….”
다문화 예비학교는 교사들 사이에서 ‘일은 많고 힘도 드는’ 프로그램이다. 그런 프로그램을 2년 동안 정성을 쏟으며 끌어가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 한눈에 봐도 사람 좋아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이태구 경기 고양 백신중학교 교사다. 지난 8일 다문화 예비학교 수업을 마친 뒤 이 교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 교사는 다문화 예비학교 담당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유익한 커리큘럼을 짜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한국마사회, 고양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마을 공동체와 손잡고 협약을 맺는 등 일선에서 뛰어왔다. 그 결과 다문화 가정 학생을 공교육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도운 사례로 주목받으며, 지난 4일 경기도교육청에서 성과를 공유·발표했다. 아래는 이 교사와 다문화 예비학교의 필요성에 관해 나눈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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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예비학교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소개한다면?
“다문화 예비학교는 다문화 가정 학생 중 한국어를 잘 못하는 아이를 대상으로 학교 편입 전과 후에 조기 적응을 돕는 것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 이해 교육을 미리 집중적으로 진행해 학교 적응을 도와주는 교육과정이다. 이 교육과정을 우리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교육 대상자는 중도입국자녀(외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부모를 따라 자기 나라로 들어오거나 귀화한 자녀), 외국인 가정 자녀, 난민 가정 자녀를 먼저 선정한 뒤 한국어 능력이 부족해 학교 적응이 어려운 국제결혼 가정 자녀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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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다문화 예비학교를 2년째 끌어오고 있다. 낮 12시30분쯤 수업이 끝나는데, 그때는 점심 먹을 시간이다. 한데 예비학교 아이들을 위한 급식비 지원이 안 되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밥을 먹는데 예비학교 학생들은 못 먹는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별도 예산을 세운 뒤 급식 지원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학교는 그렇지 않다. 모든 다문화 예비학교에 대한 급식비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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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학교 수료 뒤 아이들은 어떤 교육을 받게 되나?
“예비학교에서 약 6개월의 한국어 교육과정을 마무리한 뒤 교육청에 서류를 내면 학력평가심의위원회를 열게 된다. 해당 다문화 학생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학년을 지정해준다. 대부분 자기 나이보다 한 학년 낮춰서 일반 학교에 입학한다. 학력평가심의위원회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예비학교에 계속 남아 교육받는 것도 가능하다.
한데 이 질문은 결국 아이들의 진로 문제로 이어진다. 중도입국자녀들이 한국어를 배운 뒤 일반 학교에 진학하면 대개 대학교까지를 목표로 한다. 한데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이들을 위한 별도의 진로·진학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직업교육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