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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더불어 책 읽는 ‘조용한 축제’가 열렸다

등록 2019-11-11 19:31수정 2019-11-12 02:05

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지난 6월25일 광양백운고 교사와 학생들이 ‘더불어 책 읽기’를 하기 전 사진을 찍고 있다. ‘독서하며 서로의 본 모습을 알아간다’는 메시지를 담아 첫 모임에서는 얼굴을 가리고 찍었다. 황왕용 교사 제공
지난 6월25일 광양백운고 교사와 학생들이 ‘더불어 책 읽기’를 하기 전 사진을 찍고 있다. ‘독서하며 서로의 본 모습을 알아간다’는 메시지를 담아 첫 모임에서는 얼굴을 가리고 찍었다. 황왕용 교사 제공

고요한 침묵에서 책 읽는 소리가 들립니다. 와글와글 이야기 소리에 삶이 엿보입니다. 150명 넘는 학생과 교사들이 일 년 동안 함께 읽고, 마음을 나눴습니다. ‘더불어 책 읽기’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공감 독서 프레젠테이션’으로 끝맺은 독서토론 모임 이야기입니다.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인식하며,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34명의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했다는 사실에 다른 학교 선생님들은 놀라곤 합니다.

바쁜 고교 생활 속에서 토론을 목적으로 한 달에 세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님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질문을 하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울고 웃으며,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지요.

책 속 주인공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에서 나도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며 그때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펑펑 운 친구도 있었습니다. 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그리고 그 마음을 그대로 인식하게 돕는 일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요. 토론이 끝난 뒤 개운한 표정으로 가는 그의 모습에 안도했습니다.

<난 모기에 물리지 않아!>라는 책을 읽고 토론한 팀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두 가지 질문이 눈에 띕니다. 책 속 등장인물 ‘날라’처럼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겠는가? 한 친구가 ‘데스노트’를 가지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수행평가에 무임승차하는 친구들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다음 질문은 ‘날라’를 납치한 ‘아모스’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납치범 아모스는,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아이를 가슴에 묻은 케냐의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날라는 모기에 물리지 않는 몸의 특성이 있어 말라리아 연구를 위해 제약회사의 선택을 받아 케냐까지 온 친구였지요. 이 책을 읽은 학생들은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뉘었습니다. 아모스가 날라를 해칠 목적이 아니고, 케냐의 아이들이 앞으로 말라리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협상하기 위해 납치한 것이므로 용서할 수 있다는 쪽과 ‘범죄는 범죄’라는 편으로 의견이 갈렸습니다. 그럼에도 ‘아모스를 이해할 수는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지요.

‘보이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행동이 같다고 해서 본질도 같은 것은 아니다’라는 것으로 이야기는 확장됐어요. 아모스의 납치 사건이 진짜 사건이었다면 앞뒤 관계가 제대로 전달됐을까요? 책은 천천히 읽다 보면 사건의 콘텍스트(맥락)를 알게 되기에, 등장인물의 나쁜 행동에도 사정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데스노트’라는 초능력을 갖고 싶은 학생도 친구의 앞뒤 사정을 한 번쯤 생각해보기로 했답니다. 위 내용은 한 팀이 ‘공감 독서 프레젠테이션’에서 발표한 것을 갈무리한 내용입니다.

아래와 같은 발표도 들을 수 있었어요. 각 팀은 일 년 동안 경험을 공유하고, 다른 팀의 독서 경험에 공감하며 배움의 폭을 넓히는 시간을 가졌지요. 글을 쓰는 역사 교사가 되고 싶은 친구는 책 속 교사와 동일시해본 경험을 발표하고, 심리학자가 꿈인 친구들은 새롭게 배운 이론을 알기 쉽게 풀어냈고, 또 다른 팀은 자신들이 나눴던 이야기와 삶의 자세에 초점을 맞춰 발표했습니다. 차별, 계급, 경쟁 등 사회문제에 방점을 찍고 이야기 나누거나, 과학 도서를 본 뒤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상해보기도 하더군요. 학교도서관이 품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가며 서로 격려하고 배우는 자리였습니다.

함께하신 선생님이나 학생들 대부분 ‘즐겁다, 배웠다, 풍성해졌다’ 등의 열쇳말로 소감을 남겼습니다. ‘더불어 책 읽기’와 이어지는 ‘공감 독서 프레젠테이션’으로 학생들과 교사가 함께 호흡해본 경험은 ‘조용한 축제’ 그 자체였습니다.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lt;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gt; 공저자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글·사진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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