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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뚱뚱해도 사랑해줄 건가요?

등록 2019-11-04 20:11수정 2019-11-05 02:38

연탄샘의 10대들 마음 읽기
“선생님, 오늘 점심 먹고 또 화장실 갔어요….”

해쓱한 얼굴로 상담실에 들어오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열여덟살 영이(가명)는 점심시간마다 급식을 먹은 뒤 화장실에 가서 바로 토해내곤 했다. 입에 손가락을 넣어 억지로 토해내다 보니 손등에 상처가 나고, 눈치채는 친구도 생겼다. 게다가 자주 속이 쓰리고 어지럼증까지 느끼면서 섭식장애(거식증, 폭식증)가 될까 두려워 영이는 스스로 상담실을 찾았다.

처음 아이를 만났을 때 부모님께 알리자고 하자, 아이의 표정이 변했다. 부모님께는 당분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입시가 코앞이니 상담을 하면서 스스로 조절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날은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영이는 과체중이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뚱뚱한 아이’로 통했다. 부모님 주도로 1년간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다. 부모님이 사주신 음식 칼로리 정보가 담긴 책자를 거의 외우다시피 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는 지금도 먹을 것을 보면 자동으로 칼로리 계산이 될 정도다.

힘겨운 노력 끝에 아이는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180도로 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체중 감량은 지금까지 살면서 영이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성취 경험이었고,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과 불안이 항상 영이를 괴롭혔다. 고3이 된 뒤 입시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그 불안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고, 자신도 모르게 먹고 토하는 행위를 반복하게 되었다.

급격한 신체적 변화와 함께 외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청소년기. 많은 아이가 영이처럼 체형이나 외모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부정적 정서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여자아이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외모와 관련한 사회·문화적인 압력이 남학생들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지해주는 관계여야 하는 부모 등 보호자로부터도 아이들은 압박감을 받는다. 영이의 경우도 부모님이 뚱뚱했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러니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해봤자, 본인을 걱정하고 위로하기보다는 창피하게 여기거나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영이 부모님은 ‘뚱뚱한 아이’라는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서 아이가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한데 부모가 세상의 시선만을 의식할 때, 아이는 ‘엄마 아빠가 날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그리고 아이 자신도 스스로를 결코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여러 장점을 가진 우리 아이들이 외모로 평가받지 않도록, 아이들의 자존감이 겉모습에 좌우되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려면, 곁에 있는 보호자부터 ‘있는 그대로’ 아이를 사랑해 주어야 한다.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재구성했습니다.

이정희 ㅣ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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