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조국 사태’가 벌어진 뒤 문재인 대통령이 꺼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교육정책이 출렁거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교육 공정성’과 관련해 정책의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단편적인 메시지를 던져 교육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국 사태’로 촉발된 교육 불평등 및 불공정 논란을 수습하기 위한 차원에서, 현재 당정은 대학 13곳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를 벌이는 한편 ‘교육 공정성 강화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11월께 ‘대입제도 개편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지난달 1일 문 대통령이 국외순방을 떠나기 전날 남긴 “대입제도 개선” 발언으로 촉발됐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정시·수시 비율 논란이 다시 점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으나, 9월6일 당정청은 회의를 열어 대입제도 개선 방향을 “학종 공정성 개선”으로 잡았다.
문 대통령은 9월9일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고교 서열화” 해소를 언급하며 “교육 분야 개혁”을 강조했다. 이에 호응하듯 9월18일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는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전까지 고집해온 ‘단계적 전환’ 입장이 바뀌는 모양새였다. 또 정시·수시 비율 조정은 대입제도 개편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학종 개선과 고교 서열화 해소 등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교육정책은, 지난 22일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언급하면서 또다시 출렁였다. 그동안 당정이 강조해오던 방향이 대통령 발언으로 뒤집힌 셈이다. 지난해 국민 공론화 결과에 따라 정시 비중을 ‘30% 이상’ 늘리도록 대학들에 권고하는 내용의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에 불분명한 대목도 많다. 정시 비중을 어느 정도까지 늘리겠다는 것인지, 언제부터 늘릴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방식을 취할 것인지 등이 분명치 않다.
당·청 내부에서는 고등교육법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만드는 등의 방안도 흘러나온다. 원론적으로 법제화를 거치면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에 구애받지 않고 정시 확대를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도출해낸 공론화 결과를 1년 만에 뒤집는 데 따르는 반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단체 등 시민사회의 반발도 감당해야 한다.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과도 정면으로 맞부닥칠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들 역시 당혹스러워하며 ‘정시 비율 확대’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정시 전형 40%, 50% 같은 비율을 언급하는 것은 섣부르다”며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이 기본 틀이다”라고만 말했다.
무엇보다 교육 현장에서는 대통령의 단편적인 발언들 속에서 ‘큰 그림’과 ‘방향성’을 알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장은 “학생·학부모 설명회 등에선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정부가 던지는 메시지들 속에서 어떤 일관된 맥락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 소장은 “지금처럼 ‘깜깜이’가 아니라, 공청회든 토론회든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태중 중앙대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교육이 정치에 종속되어 있는데, ‘국민이 원한다’는 불분명한 근거만을 앞세워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정치적인 접근이 아니라 전문성에 바탕을 둔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기본적으로 ‘정시 확대’ 입장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조차도 전날 낸 입장문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지난해 결정돼 추진 중인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을 재차 강조한 것이라면 향후 대학이 자율적으로 확대해나가도록 안착시킬 일이다. 하지만 이번 발언이 ‘30% 이상’을 뛰어넘는 비율을 특정 대학에 강제하겠다는 의미라면 새로운 논의의 장을 마련해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