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부모 세대는 학창 시절 ‘사서 교사’를 만나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요즘 십대들은 어떨까요? 여전히 사서 교사가 없는 학교가 많습니다.
칼럼을 통해 ‘학교도서관’이라는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오롯이 보여주지 못하는 듯한 제 글쓰기 능력의 한계에 죄송함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씁니다. 학교도서관이라는 공간에서 배울 수 있는 유무형의 것들은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근무하는 학교도서관에는 하루에 많게는 200명, 적게는 50여명의 학생이 오갑니다. 학생들은 책을 읽기도 빌리기도 합니다. 저에게 질문을 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어떤 책이 재미있어요?” “이런 책이 학교에 있어도 되는 거예요?” “선생님, 여기 있는 책 다 읽어봤어요?” 학생들의 이런 질문들이 제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선생님, 잘은 모르겠지만 분명 책 속에는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지요?”
저도 그 가치가 확실히 무엇인지, 어떻게 찾아내는 것인지 계속 탐구하는 사람이라 질문에 딱 떨어지는 답을 내놓기는 어렵습니다. 책은 절댓값을 가지지 못하는 매력이 있어 더 어렵습니다. 한 권의 책이 누구에게나 같은 지식, 감동,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독해력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변수를 차치하더라도 삶의 궤적, 현재 상황 등에 따라 다른 값을 가지는 게 책이지요.
첫번째 질문 상황입니다. 최근 읽었던 것 중 재미를 주었던 책은 무엇인지 학생에게 반문합니다. 천천히 독서 이력을 살피고 함께 서가 사이를 다니며 책을 골라봅니다. 책을 다 읽고 또 추천해달라며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번 더 추천해준 뒤 다음에는 혼자 고를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쳐주고 응원해봅니다. 의사 선생님이 약을 처방해주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두번째 질문 상황은 ‘미투 운동’으로 출판계 역시 폭로가 터져나올 때였어요. 학생들은 해당 저자의 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질문했습니다. 책을 치워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작품 자체로 보자는 말도 있었고, 반대로 삶이 곧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저는 개인적인 판단을 보류하고 도서 검열에 대한 판단을 해야 했습니다.
도서관은 도서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선택과 판단은 이용자들에게 맡깁니다.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머리와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하겠지요. 그 힘은 독서가 길러줍니다. 자칫 무책임한 모습처럼 비칠 수 있지만, 이상적인 교육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여기 있는 책 다 읽어봤어요?”라는 질문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파생 질문으로 “선생님, 한달에 책 몇권이나 읽어요?” 등이 있지요.
학교도서관에는 보통 2만여권의 장서가 있습니다. 해마다 새로 나온 책을 구입하고 파손된 책은 폐기하지요. 저는 다독가가 아니라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변명처럼 보일 수 있으나, 독서량보다 내용이나 책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학교도서관에서 책을 선택하고 읽는 풍경은 우리가 집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고른 뒤 외출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어릴 적엔 부모가 골라 입혀주지만 조금씩 커가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추지요. 학교도서관에서 사서 교사가 도서 선택을 돕는다면 학생 개인의 독서 이력이 생기고 독서 습관, 스타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색다른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이 책 읽어볼래요? 제가 읽었는데 정말 좋아요. 제가 왜 이렇게 힘든지, 앞으로 이겨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찾았어요.” 정확히 말해 질문이 아닌 권유였지요. 자신의 책 읽기를 검증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 ‘아름다운 권유’라고 생각했습니다.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사서 교사가 도서 선택을 도우면 학생 개인의 독서 이력이 생기고 책 읽는 습관과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 2017년 12월29일 순천신흥중학교 ‘북적북적 동아리’ 학생들과 황 교사가 함께 읽은 책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황왕용 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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