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수업 시작종이 울리기 직전 다급하게 상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정아(가명·14)였다.
“선생님, 상담할 수 있어요?”
아이의 불안 상태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우선 아이에게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마시게 한 뒤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소정이 태도가 이상해요. 절 싫어하는 것 같아요.”
“소정이 태도가 어땠는데?”
“오늘 아침에 매점 같이 가자고 했는데 싫대요.”
“소정이가 매점에 가기 싫었을 수도 있지. 너도 가기 싫으면 안 간다고 하지 않아?”
“저는 그런 적 없어요. 가기 싫어도 소정이가 가자고 하면 항상 따라가 줬어요. 그런데 소정이는 제가 어디 같이 가자고 하면 대부분 싫다고 거절하는데, 오늘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어요.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제가 소정이를 생각하는 것만큼 소정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요즘에는 민정이랑 더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요.”
학기 초 정아는 초등학교 때 겪었던 ‘왕따’의 기억 때문에 중학교에 와서도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된다며 상담을 신청했다. 그 뒤 정아는 5명과 그룹을 이뤄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었다. 한데 그룹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고 결국 소정이와 둘만 남게 됐다. 정아는 소정이를 ‘베프’(베스트 프렌드)로 생각하고 있지만, 소정이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정아는 다시 외톨이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이 호소하는 문제 가운데 교우 관계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외톨이’에 대한 아이들의 불안감은 심각하다. 점심 같이 먹을 친구가 없다거나, 다가오는 체험학습·수련회 때 같이 다닐 친구가 없다며 상담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친구는 삶의 질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또래집단에 속하기 원하고, 그들로부터 인정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속할 또래집단이 없다는 건 아이들에게 절망적이다.
친구들에게 소외된 아이는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워 등교를 거부하거나 전학을 선택하기도 한다. 아예 친구 사귀기를 포기하고 ‘스따’(스스로 따돌림을 선택한 사람)가 되는 아이들도 있다.
다행히 친구 사귀기를 포기하지 않는 경우라도, 거절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친구 관계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많다. 정아도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 친구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행동을 지속하면 결국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정아는 상담 뒤 거절당하거나 외톨이가 될까 봐 불안해하는 대신에, 용기를 내어 친구에게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기로 했다. 거절당하는 것은 상처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 경험은 우리의 성장에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해 가을 정아도 한뼘 성장했다.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재구성했습니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