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 전형에서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중심의 정시 비중을 확대하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시는 이른바 ‘금수저’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이 그동안의 정설이다. 정시·수시 비중 등 대학 입시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 근본적인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학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일 한국대학학회가 주최한 ‘사회 불평등 구조와 대학정책 방향’ 심포지엄에서는 교육의 불평등과 대학의 서열구조 사이의 관계를 톺아보는 논의가 진행됐다. 이날 박정원 상지대 교수(경제학)는 ‘고질화된 불평등―대학 입시에서 대학 재정까지’ 제목의 발표문에서 소수의 수도권 대학들과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입시 제도와 대학 재정이 결정되는 ‘독과점 체제’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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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점 대학 15곳, 일반고 유리한 교과전형 비율 유독 낮아
박 교수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비롯한 서울권 ‘주요 15개 대학’을 한데 묶어 ‘독과점 대학’이라고 봤다. 대학 서열구조의 정점에 있는 이들은 ‘공급 조건’, 곧 입학 전형에서부터 다른 대학들과 달랐다. 2020학년도 대입에서 일반 대학들은 학생부교과(교과) 42%, 학생부종합(학종) 24%, 논술 4%, 실기 6%, 수능 20% 등으로 학생들을 모집한다. 그러나 독과점 대학 15곳은 학생부교과 6%, 학생부종합 47%, 논술 13%, 실기 6%, 수능 24% 등이었다. 학생부종합 비중이 크고 학생부교과 비중이 낮다는 것이 주된 특징인데,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이른바 ‘스카이’ 대학 3곳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수능 비중은 다른 대학들과 별 차이가 없다.
학생부교과가 학교별 내신 성적으로 선발하는 것에 견줘 학생부종합은 자기소개서·수상경력·동아리활동 등 비교과 항목을 함께 본다. 학생부교과는 모든 학교의 내신을 동일 선상에 놓고 평가하기 때문에 특목고·자사고 학생에겐 불리하지만, 일반고 학생이나 지역 학생들에겐 상대적으로 유리한 전형이라 평가받는다. 독과점 대학들은 “학생들의 여러 가지 측면을 평가할 수 있고 대학 선발권이 크게 작동하는 학생부종합을 가장 선호하고, 다음으로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하는 정시 선발과 논술을 선호하며, 특목고·자사고 학생들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학생부교과는 선호하지 않는” 셈이다.
박 교수는 이런 독과점 대학들의 선호는, 특목고·자사고, 고소득층 학생·학부모의 선호와 일치하는 대목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8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3곳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 가운데 일반고 출신의 비중은 49~54% 등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이 자율고, 영재학교, 과학고, 외고·국제고, 예고·체고 출신이었다. 2018년 수능 응시자 가운데 86%가 일반고 출신인 것을 고려하면, 독과점 대학들의 ‘쏠림’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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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층은 수능이 더 공정한 것처럼 몰아가
문제는, ‘고소득층’(상위 20%) 학생·학부모는 부모의 경제력이 가장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정시를 중심으로 삼고, 차선으로 학종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지만, 대다수인 ‘중저소득층’(하위 80%)에겐 특별히 유리한 전형이 없는 현실이다. 고소득층은 1차적으로 다른 계층은 넘보기 어려운 고가의 사교육에 기대는 ‘수능 중심의 정시’ 전형을 선호한다. 그러나 결과가 여의치 않더라도 학종 전형이라는 대안을 “이중 허리”로 가질 수 있다. 그마저 안 되면 해외 유학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만큼 사교육에 돈을 들일 수 없는 대다수 ‘중저소득층’이 더 유리한 전형은 찾을 수 없다.
물론 전형에 따른 차이는 있다. 박 교수는 “고소득층은 모든 전형에서 유리하지만, 그럼에도 수능 중심의 정시는 고소득층, 특목고·자사고, 대도시 출신이 더 유리하고, 교과와 학종 중심의 수시는 중저소득층, 일반고·특성화고, 지방 출신이 상대적으로 덜 불리한 제도”라며 “여론을 움직이는 소수의 고소득층이 마치 수능이 더 공정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소득층일수록 정시가 더 유리하다는 연구·조사 결과는 그동안 많이 제시된 바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18년 교육여론조사’에서, 소득이 높을수록 “대학 입학 전형에 수능 성적이 가장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결과가 대표적이다. 서울대가 2018년 27%였던 정시모집 비중을 50%로 늘렸다면 강남 3구 출신 합격자가 현재의 두배가량 늘어났을 것이라는 검토 결과도 있었다. 2017학년도 경희대 입시 결과를 보면, 고소득층이 많이 사는 지역일수록 수능으로 합격한 비율이 높은 실태가 드러난다. 서울 ‘강남 3구’에서는 수능 합격 비율이 64~93%,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는 82%, 대구 수성구에서는 72% 등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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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재학생은 3.5%에 국비지원은 10% 넘어
박 교수는 대학 입시뿐 아니라 대학 재정에서도 소수 대학이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현상이 확연히 드러난다고 짚었다. 2017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3곳에 지원된 국비지원액은 1조3333억원인데, 이는 전체 고등교육기관에 지원하는 총지원액인 13조465억원의 10%를 웃도는 규모다. 그러나 전체 대학생 가운데 이들 3곳 대학에 다니는 재학생 비율은 고작 3.5%에 불과하다. 이들은 졸업한 뒤에도 노동시장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선점한다. 박 교수가 정리한 자료를 보면, 2010~2014년 새로 임용된 법관 660명 가운데 527명(79.8%), 2007~2012년 외무고시 합격자 가운데 81.3%가 ‘스카이’ 출신들이다. 25개 신문·방송·통신사의 편집·보도국장 및 정치·경제·사회부장 104명 가운데 3곳 학교 출신은 78명(74.9%)이라고 한다.
결국 입학 전형이 아니라, 대학의 서열구조가 핵심이란 지적이다. 박 교수는 “강력한 대학의 서열구조가 한국 사회에서 교육의 ‘지위재’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짚고, 이를 위한 경쟁의 지반이 고소득층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들의 고른 삶을 위해 대학을 균형 있게 육성해야 할 정부가 일부 소수 대학에 교육 재원을 몰아주기 때문에 대학의 서열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이로 인한 고통을 국민 전체가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턱없이 부족한 고등교육 공적 재원을 늘리고 대학 재정 지원에서의 차별을 없애며, 거점국립대를 네트워크로 묶거나 공영형 사립대를 육성하는 정책 등이 교육 불평등의 해소 방안이 된다는 제안이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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