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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책이 꿈틀거리던 여름밤, 독서 여행

등록 2019-08-05 20:02수정 2019-10-09 13:32

【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지난 2010년 사서 교사 3년 차 되던 해에 ‘독서 여행’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당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라는 곳에서 출판문화 체험 캠프라는 이름으로 독서 여행에 참여할 학생을 모집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참가 의지를 불태우며 계획서를 작성했지요.

당시 전남 중마고등학교 ‘가온누리’ 동아리 학생 여섯 명과 함께 2박 3일의 독서 여행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이 여행의 기억은 저나 학생들 마음속에 꽤 깊게 자리했습니다. 독서 여행을 시작으로 동아리 활동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모임이 되었지요. 다음 해에 학교를 떠났고, 3월 초 가온누리 동아리 신청 인원이 80명에 육박했다는 학생들의 기분 좋은 푸념이 떠오릅니다.

지난 7월20일 광양백운고 독서 여행 참가 학생들이 파주 출판단지에서 서평 글쓰기 강의를 듣고 있다. 황왕용 교사 제공
지난 7월20일 광양백운고 독서 여행 참가 학생들이 파주 출판단지에서 서평 글쓰기 강의를 듣고 있다. 황왕용 교사 제공
그 뒤로 제가 있는 학교에서 해마다 독서 여행을 기획해 운영했습니다. 누군가는 일회적인 사업이라 평가절하합니다. 한데 독서 여행은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나 교사에게나 꽤 깊은 추억과 공부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해마다 주제와 방향은 달랐지만, 책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장흥, 강진, 통영, 남해, 김제, 전주, 보성, 파주, 양평, 경주 등 대한민국 곳곳 여러 가지 책을 샅샅이 뒤져 읽고, 걷고 있습니다.

올해도 벌써 두 번의 독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두 번째 독서 여행은 여름 방학식을 하자마자 출발했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4월 ‘책 너머 꿈틀’이라는 독서 여행의 주제와 방향을 공개하자마자 150명 정도의 학생들이 이 여행에 신청했습니다. 모집 인원 70명의 2배를 넘어서는 인원수였지요. 짧게나마 서평 쓰는 법을 알려주고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은 뒤 서평을 써서 제출하는 과제를 냈습니다. 75명의 학생이 기한 내에 서평을 제출했습니다. 75개의 서평을 읽다 보니 누구 하나 빠뜨릴 수가 없었지요. 결국 예산 조정을 통해 75명의 학생 전원이 함께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주도하고 준비하는 학생기획단을 선발했고, 한 달 전부터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나눠 줄 읽기 자료 등을 80쪽 분량의 책으로 묶기도 했습니다. 나태주 시인과의 만남을 토크쇼 형태로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75명이 제출한 서평을 중심으로 시를 낭송할 학생도 뽑고, 시 낭송에 어울리는 피아노 반주도 준비했지요.

학교 단체여행에서 저녁 시간은 학생들과 선생님의 눈치 싸움일 때가 많지요. 수학여행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실 거예요. 기획단과 논의할 때, 저녁 시간에 놀이의 장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제시됐습니다. 충남 공주에서의 첫날 밤. 학생들과 탁구, 스피드 게임, 캐리커처 그리기 등 놀이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나태주 시인과 만나기 전 친구에게 어울리는 시를 한 편씩 추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시에 어울리는 인물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캐리커처를 그려줄 대학생 다섯 명을 미리 섭외했습니다. 탁구와 스피드 게임은 모둠별로 대진표를 작성하고, 세 개의 놀이판에 쉴 새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물론 학생기획단이 계획하고 실행까지 했지요. 저는 단지 잘 즐기는 모둠에 줄 선물을 준비할 뿐이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지방 학생들이 흔히 할 수 없는 대학로 연극 관람을 하고, 파주 출판도시로 향했습니다. 파주 출판도시에서 종이와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책갈피 만들기 체험 등을 했습니다. 저녁에는 ‘읽는다’는 비교적 수동적인 자세에서 ‘쓴다’는 적극적인 태도로의 전환을 위해 서평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실제 글을 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평 쓰는 법을 모르지는 않으나 명확하지는 않았던 학생들이었습니다. 김치찌개 끓이는 방법을 알지만 레시피 영상을 찾아보는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쉽고 재미있게 서평 쓸 수 있는 법을 알려주고 실제 해보게 하는 시간이었지요.

마지막 날 오전에는 파주 출판도시를 즐길 수 있도록 모둠별 자유 시간을 주었습니다. 북 카페에 들러서 차를 마시며 책을 보기도 했고, 서점에 들러 책을 사기도 하더군요. 한 학생이 10만원어치가 넘는 책을 사기에 다가가서 무겁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 학생의 대답이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이 책을 사서 읽지 않으면 제 인생이 무거워질 것 같아요. 2박 3일 동안 그렇게 느꼈어요. 선생님 덕분에 책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어요.”

글·사진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 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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