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함께하는 교육’은 좋은 어린이책에서 시작된다

등록 2019-07-29 20:46수정 2019-07-29 20:50

민주시민 교육과 아동청소년 도서

‘나다움 어린이책’ 프로젝트 등
성인지 감수성 갖춘 도서 선정
9월 ‘나다움 책장’ 시범학교 운영

공교육에서 중요한 건 시민성 키우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각 살아있고
차별과 혐오에 민감한 학생들이
민주사회 시민으로 자랄 수 있어
“좋은 책이 어린이의 미래입니다”
지난 26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공교육에서의 민주시민 양성과 아동청소년 도서 관련 좌담회가 열렸다. 김지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가운데)와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왼쪽), 강지하 북이십일 을파소 키즈콘텐츠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지윤 기자
지난 26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공교육에서의 민주시민 양성과 아동청소년 도서 관련 좌담회가 열렸다. 김지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가운데)와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왼쪽), 강지하 북이십일 을파소 키즈콘텐츠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지윤 기자
“지민씨, 이번에 조카 선물 뭐 해줄 거야?”

“글쎄요. 책 한 권 사줄까 싶은데 뭐가 좋은지 몰라서….”

고모와 이모, 삼촌들이 아동청소년 도서에 관심을 갖고 있다. 비혼 3040세대들이 늘어나면서 ‘하나뿐인 조카’의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추세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책 고르기는 이들에게 큰 관심사다. 김씨는 “성 역할을 확연히 구분하거나 가부장적 표현이 있는 책을 조카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지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지윤 기자
김지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지윤 기자
지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민주시민교육과 아동청소년 도서’에 관한 좌담회가 열렸다. 좌담회에는 김지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동시인), 15년 가까이 아동청소년 도서를 만들고 있는 강지하 북이십일 을파소 키즈콘텐츠팀장이 참여했다.

이 좌담회는 지난 4월 <한겨레>가 진행한 혁신학교 시리즈의 ‘아동청소년 도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각 시·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의 활동이 활발하고, 곳곳에서 혁신학교가 확산되는 추세 속에서 ‘새 시대의 어린이가 읽을 만한 좋은 책’의 기준은 예전과는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 성인지 감수성 갖춘 ‘나다움 어린이책’

공교육 현장에서 좋은 책 골라 읽기는 중요한 이슈다. 최근 여성가족부도 양성평등주간에 ‘나다움을 질문하는 어린이책을 찾아라’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책을 통해 성별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하고 남자다움이나 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을 배우고 찾아가기 위해 마련됐다.

나다움 어린이책은 성인지 감수성을 바탕으로 나와 남을 긍정하고 다양성과 공존을 지향하는 어린이책이다. 오는 9월부터 초등학교 5곳에 ‘나다움 책장’을 지원할 예정이다.

아동청소년 도서에 대한 공교육 현장의 이러한 관심 속에서 지난 26일 기자의 진행으로 김지은 교수와 김유진 평론가, 강지하 팀장이 ‘민주시민 교육과 아동청소년 도서’에 대해 나눈 좌담을 정리했다.

[김지윤 기자] 공교육 12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성’을 배우는 것이다. 학교는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교실 속 아동청소년 도서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나?

[김지은 교수] 여전히 ‘넌 여자니까 부반장 해. 반장은 남자가 하는 거야’라는 학교가 있다. 리더십 있는 여성의 모습을 아동청소년 도서나 미디어에서 자주 접하지 못하면 어린이들은 저런 말을 쉽게 수용한다. 성별과 장애 유무를 떠나 모든 사람을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건 그 어린이가 시민성을 가진 공동체 구성원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동청소년 도서 속에 여성 지도자, 장애인, 다문화 학생, 성소수자 학생 등이 등장해 서사를 만들어 나가면 어린이 독자들도 ‘내 주변에 저런 친구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 한번이라도 이렇게 생각해본 어린이는 타인을 대할 때 어떻게 말을 건네야 ‘민주적’인지도 안다. 나다움 어린이책과 같은 도서가 교실 현장에 놓였을 때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동시인). 김지윤 기자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동시인). 김지윤 기자
[김유진 평론가] 최근 디즈니에서 만든 <알라딘> <겨울왕국> 등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젠더 감수성을 고려한 내용들이 추가돼 개봉하고 있다. 동화나 그림책 속에서 목소리 없이 가려졌던 인물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어린이와 양육자들이 보지 않고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점을 던져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책을 보면 위인전은 전부 남성 위인이었고 여자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알려진 신사임당 정도였다.

■ 책 통해 ‘역지사지’ 배워야

[김지은 교수] 민주시민 교육이란 결국, 사회 속에 촘촘히 퍼진 성별·장애·성정체성 등 권력관계를 얼마만큼 인지할 수 있느냐를 뜻한다. 그 촘촘한 권력망에서 차별받는 사람을 이웃으로 수용하고 손 내밀어 줄 수 있느냐를 말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 생각지 못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결국 책이다.

여성 인물이 주인공인 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 작품 안에 그려지는 가족관계, 친구들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 등 대화 속에서 보여지는 부분까지 성인지 감수성을 어느 정도 만족해야 좋은 아동청소년 도서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금 사회적 분위기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젠더 이슈, 성인지 감수성과 관련해 본격적으로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김지윤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초·중등 교과서 모니터링 백서를 보면 타인종을 하대하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삽화·내용이 나온다. 권고사항으로는 배경에 다양한 인종을 2회 이상 그려 넣을 것, 여성과 남성이 집안일을 분담할 것 등 구체적으로 써두었다.

[강지하 팀장] 15년 가까이 아동청소년 도서를 기획·편집해오면서 항상 겪는 일이다. 진로직업 관련 책을 만들 때 직업에 따른 성별을 아예 지정해서 주지 않는 이상 항상 의사와 경찰은 남자, 간호사 또는 남자에게 필요한 물건을 건네주는 사람으로 열이면 열번 모두 여자 캐릭터를 설정하더라. 구체적으로 내가 ‘의사는 여자로 그려주세요, 기자는 여자로 그려주세요, 승무원은 서비스직이 아니라 안전관리직입니다’ 등을 써서 전달해야 어린이책에 들어갈 성별을 5 대 5로 맞출 수 있다.

[김지은 교수] 아동청소년 도서에 여자 어린이에게 보일 롤모델이 절대적으로 부재한 상태에서 여자 어린이들은 오히려 남성 위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굉장히 열심히 읽게 된다. 그걸 읽어야 여자인 자신도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니까. 그래서 아동청소년 도서에 여성 인물 이야기가 늘어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남자 어린이들도 여성 롤모델이 책으로 많이 나와야 여성을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시민으로 인식할 수 있다. ‘난 한국 국적자니까 한국인이 나오는 책만 읽겠어!’라는 말이 아주 이상한 것처럼, 우리가 어떤 성별을 갖고 있건 지정 성별과 무관하게 여러 사람의 삶을 함께 읽어야 한다. 공교육에서 아동청소년 도서를 통해 시민성과 공동체성을 키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강지하 북이십일 을파소 키즈콘텐츠팀장. 김지윤 기자
강지하 북이십일 을파소 키즈콘텐츠팀장. 김지윤 기자

■ 젠더 이슈로 출판사와 소통하는 학생들

[강지하 팀장] 최근 초등학생들이 회사로 편지를 보내왔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책 속에 성인지 감수성을 체크해보는 수업을 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용감무쌍’은 왜 남자에게만 쓰고, ‘똑소리 나는’은 여자에게만 쓰는 것인지 물어오는 식이다. 회사 차원에서 해당 의견을 적극 수용해 전반적으로 감수하는 등 독자들과 ‘윈윈’하는 상호작용을 했다.

[김지은 교수] 출간된 책을 교실에서 아이들이 읽고, 거기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견을 담아서 개정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 정말 이것이야말로 21세기 독자와 출판사 사이의 멋진 상호작용 아닌가.

[김유진 평론가] 짚어둘 부분도 있다. ‘아동청소년 문학에 성평등한 메시지를 담아서 아이들에게 전달한다’는 등 이렇게 어린이 독자를 향한 시혜적인 시선을 거둘 필요가 있다. 명민한 어린이 독자들은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원한다. 작가들도 조금 더 어린이 독자와 교류·소통하며 창작하면 좋을 것 같다.

지난 26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공교육에서의 민주시민 양성과 아동청소년 도서 관련 좌담회가 열렸다. 김지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가운데)와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왼쪽), 강지하 북이십일 을파소 키즈콘텐츠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지윤 기자
지난 26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공교육에서의 민주시민 양성과 아동청소년 도서 관련 좌담회가 열렸다. 김지은 서울예술대학교 문예학부 교수(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가운데)와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왼쪽), 강지하 북이십일 을파소 키즈콘텐츠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성인지 감수성을 고민한 뒤 책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게 교과서뿐 아니라 아동청소년 도서 시장에 필요한 이유는?

[김지은 교수] 여성이 남성과 수평적 관계에 놓인 이야기가 공교육 현장에 노출이 안 되고 있는 건 큰 문제다. 시장 논리에만 맡겨서는 민주시민 교육이나 성평등 교육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작품을 지원하고 많이 발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아동청소년 도서 생태계가 건강해질 수 있다. 공공의 돈은 이런 데 쓰라고 있는 거다.(웃음)

인권 감수성이 높은 어린이책 발간 국가에서는, 작가가 쓴 혐오·차별 표현에 대한 규제가 가능하다. 계약서를 통해서다. 차별과 편견에 기반을 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썼을 경우, 작가와 편집자들이 서로 책임지는 선에 관해서까지 규정하고 있다. 예술에 대한 검열이 아니라, 작가에게 포괄적인 고민을 해보라고 제안하는 디딤돌 같은 것이다. 우리에겐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이야기를 들려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누가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함께 좋은 책을 만들어보자는 의기투합의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명태균, 대통령실 취업 등 청탁 대가로 2억”…검찰 진술 확보 1.

[단독] “명태균, 대통령실 취업 등 청탁 대가로 2억”…검찰 진술 확보

강혜경 “말 맞추고 증거 인멸”…윤 부부 옛 휴대전화 증거보전 청구 2.

강혜경 “말 맞추고 증거 인멸”…윤 부부 옛 휴대전화 증거보전 청구

버려져 외려 드러난 죽음 ‘암장’...몇 명이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3.

버려져 외려 드러난 죽음 ‘암장’...몇 명이 죽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 만에 10도 뚝…3일 최저 -7도, 바람까지 4.

하루 만에 10도 뚝…3일 최저 -7도, 바람까지

소방서에 배송된 ‘감사의 손도끼’…“필요할 때 써 주시오” 5.

소방서에 배송된 ‘감사의 손도끼’…“필요할 때 써 주시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