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샘의 10대들 마음 읽기
상담실에 찾아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아빠 냄새도 싫어요.” “엄마랑 같이 있으면 숨 막혀요.” 사춘기 아이들에게 부모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해서, 이를 ‘부모 알레르기’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아이들의 부모 알레르기 반응은 다양하다. 부모 앞에서 말문을 닫아 버리는가 하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기도 하고, 말끝마다 말대꾸하거나 논리로 부모를 이기려는 아이도 있다. 그런데 과연 부모에 대한 십대들의 이 같은 행동이 단순한 알레르기 반응일까. 부모들 눈에는 사춘기의 ‘이유 없는 반항’처럼 비치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유가 전혀 없지는 않다.
아빠와의 불화로 상담실은 찾은 민정(가명·15)이는 “아빠와 한 공간에 있으면 불편하다”고 했다. 어려서 사이가 좋았던 부녀관계가 중학교 들어서 부쩍 나빠진 것을 지켜본 엄마는 그저 딸이 사춘기를 타느라 아빠를 밀어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정이가 털어놓은 사연은 달랐다.
“아빠가 외할머니에게 평소 너무 막 대하는 걸 보면 화가 난다”며 자신도 아빠에게 복수하듯이 버릇없이 군다고 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민정이에게 외할머니는 엄마와도 같은 존재였다. “아빠가 외할머니에게 그렇게 대하는 이유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할머니가 우리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라며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아빠가 너무 싫다”고 했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예민한 비평가가 된다. 유아동기에는 부모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순응했다면, 이제는 자기 나름의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부모로부터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보려고 한다.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이상적인 부모상에 비춰 보기도 하고, 객관적이고 냉정한 잣대로 부모를 평가하기도 한다. 그동안 믿고 따랐던 부모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특히 아이들이 어른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반감을 가지기 시작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어른들의 윤리적 공백과 미성숙함을 목격하면서다. 박완서 소설 <자전거 도둑>에서 16살 수남이, “자기가 한 짓(자전거를 갖고 튄 것)을 나무라기는커녕 손해 안 난 것만 좋아서 ‘오늘 운 텄다’고 좋아했던” 주인 영감한테 느꼈을 환멸과 실망감처럼 말이다. 그런 어른을 더는 존경하거나 따를 수 없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힘겹게 거치며 성장하는 시기에 부모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금언을 새기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애썼던 초보 부모 시절이 있었다.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사춘기 우리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먼저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봤으면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본다면, 아이들도 부모에 대한 믿음과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자녀의 사춘기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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