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해부터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수상 내용’이 사라진다.
몇년 전, 철수(가명)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아이가 자신감도 떨어지고 주눅이 들어 있는 표정에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학급에서 철수는 늘 밝은 표정이었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직접 만나 자초지종을 자세히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빠른 일정으로 상담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상담을 기다리는 며칠 사이 철수를 관찰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분명 어머니의 목소리에 긴장감, 불안감이 있었는데…. 철수는 평소처럼 밝았다. 평범한 학교 일상을 보내는 착한 아이였다. 속앓이할 만한 고민이 있는 경우, 아이들은 수업 중 딴생각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부러 수업시간에 철수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답변을 잘했고, 수업 흐름에 무난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드디어 면담 날이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폭풍 같은 일이기에 그리도 떨리는 목소리였는지, 담임인 내가 모르는 깊고 어두운 상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어머니를 기다렸다. 사실 그날 점심도 제대로 못 했다. 불안함이 전이된 듯, 몇 수저 뜨고 모두 잔반통에 넣었다. 학부모 상담주간에 깊은 내면을 드러내지 않고 나중에 따로 조용히 아이의 상황을 개방하는 학부모들이 종종 있기에 이번에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어머니가 교실로 들어왔다. 긴장, 불안을 완화해준다는 재스민차를 미리 끓였다. 교실에는 차 향기가 올라왔고, 적당한 온도로 맞춘 차를 내놓았다. 긴 시간이 필요할 듯싶었기에 편안한 의자도 준비했다.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온기를 느끼듯 두 손으로 감싸안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철수, 상 욕심이 없어요. 뭔가 성취감을 맛보아야 계속 동기부여가 될 텐데…. 그냥 관심이 없어요. 저학년 때 열심히 도와줘서 그리기 상도 받고, 일기 상도 받고 했는데, 이젠 좀 도와주려 하면 짜증만 내고, 싫다고 합니다.”
20분간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아이가 이렇게 상을 받아오지 못하면 자신감도 떨어지고 경쟁사회에서 뒤처질 것에 너무 염려된다는 내용이었다. 결론은 철수가 상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취지였다.
순간 위장에서 속 쓰림이 시작되었다.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몇 시간 기다린 배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긴장할 일이 아니니 네 몸이나 챙기라는 사인이었다.
아이의 자신감 넘치는 도전은 상장에서 오지 않는다. 상장을 많이 받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자존감은 상장을 받든 못 받든 불안해하지도 않고 아쉬워하지 않는 엄마의 시선에서 찾아온다.
아이에게 자신 넘치는 자존감을 선물해주고 싶다면, 가끔 받아오는 상장에 환호하기보다 오늘 저녁밥 잘 먹는 아이의 모습에 대견한 듯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올해부터 생활기록부에 한 줄 적히던 상장의 기록도 그나마 사라졌다. 사라지는 흔적에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젠 재스민 향기가 싫다. 향기만 맡아도 반사적으로 속이 쓰려온다.
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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