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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서점은 내 친구, ‘만만한 책’부터 읽어보세요

등록 2019-07-08 20:11수정 2019-07-08 20:19

초등생 독서습관 잡아주기

자기효능감 키워주는 건 독서
초등 시절부터 ‘읽는 법’ 알려줘야

필독서 목록 권하기보다는
‘만만한 책’부터 함께 읽어봐

삽화 들어간 그림책부터 시작해
아이가 직접 고른 책 믿고 사주기
“세상은 알고 있는 어휘만큼 보여요”
지난 7일 서울의 한 중고서점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고른 뒤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여름방학을 앞두고 다양한 책을 저렴하게 구하고 싶어 중고서점을 찾았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지난 7일 서울의 한 중고서점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고른 뒤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여름방학을 앞두고 다양한 책을 저렴하게 구하고 싶어 중고서점을 찾았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민규야, 숙제는 다 했니? 책은 읽었고?”

“아, 몰라요! 이따 할게요!”

부모가 이런 질문을 하면 아이들 가운데 십중팔구가 유튜브 영상을 보며 퉁명스레 답한다. 의자보다 공놀이가 더 좋은 아이들에게 책 읽기는 생각만 해도 지루한 활동이다. 한데 부모들은 어떻게든 책 한권 더 읽히려고 애를 쓴다. 특히 7월 중순부터 시작하는 긴 여름방학을 앞두고 이 기회에 우리 아이 ‘독서력’을 키워주고 싶어 하는 학부모의 마음은 맹모삼천지교 못지않다.

■ 도서관 회원증부터 만들자

거실 티브이를 없애고 서재처럼 꾸며놓으면 책을 좀 읽을까 싶었는데 절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서울대 필독서 목록부터 동서양 문학 전집, 고전 시리즈 등을 사들이며 어떻게든 아이가 똑똑해지길 바라지만, 정작 부모들도 손에 책을 쥐면 스르르 잠부터 온다.

전문가들은 여름방학 등 부모와 자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 때, 손잡고 서점에도 가보고 도서관 회원증을 아이 이름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등 독서습관을 차근차근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서력은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성적뿐 아니라 자기효능감, 진로 성숙도 등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13살까지가 독서력 골든타임

아이들 입장에서 책 읽기는 게임 아이템처럼 빠른 보상이 오지 않는 지루한 활동이다. 게다가 서점에는 문학 작품 내용을 요약·압축해놓은 다이제스트 문고도 많아, 왜 한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한데 경력 15년 이상의 초등 독서 전문가들은 “13살 전에 아이들 책 읽는 습관을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부가 쉬워지는 초등독서법>을 쓴 김민아 병점초등학교 교사는 “무조건 어려운 책, 유명한 책보다는 아이가 원하는 분야의 얇은 책부터 골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만화는 무조건 안 돼’라는 등 아이의 선택에 제한을 두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초등 저학년인 2~3학년 시기를 독립 독서기, 고학년인 4~6학년 때를 독서 확장기라고 한다. 중학교 올라가기 전인 13살 때까지 아이의 지적 욕구에 맞춰 적절한 독서 확장기를 보내게 해주는 건 양육자의 몫이기도 하다. 특히 초등 1학년 때 배운 통합교과가 사라지고 사회, 과학 등 개별 과목이 생기는 시기인 독립 독서기에는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활용하는 단어 종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때이기도 하다.

김 교사는 “보통 4학년 때부터 선과 악, 인생과 죽음 등 추상 개념을 본격적으로 이해한다”며 “사회와 인간, 우정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 갖기 시작할 이 시기에 정독, 통독, 속독 등 다양한 읽기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독서습관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 경영하기’다. 생활계획표에 따라 하루 1시간 책 읽기 등으로 접근하면 아이들은 독서를 숙제로 여긴다. 못박은 시간이 아니더라도 양육자가 하루 중 여유 있는 때를 10분이라도 찾아내 아이와 ‘따로 또 같이’ 책 읽는 시간을 가져보자.

지난 7일 학생들이 서울의 한 중고서점에서 책을 고른 뒤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여름방학을 앞두고 다양한 책을 저렴하게 구하고 싶어 중고서점을 찾았다.
지난 7일 학생들이 서울의 한 중고서점에서 책을 고른 뒤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여름방학을 앞두고 다양한 책을 저렴하게 구하고 싶어 중고서점을 찾았다.

■ 만만한 책으로 시작하자

재미있으면 자꾸 하고, 자꾸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독서도 그렇다. 재미있는 방법으로 읽어야 자꾸 읽게 된다. 특히 독서습관을 들여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최대한 쉽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책을 접해야 한다. 이른바 ‘만만한 책’ 고르기다.

만만한 책을 고르는 법은 다음과 같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의 아무 곳을 한장 펼친 뒤 모르는 단어를 세어본다. 아이가 모르는 어휘가 30%를 넘어가면 그 책은 일단 ‘패스’다. 아이가 좀 더 만만한 책을 읽고 어휘력이 향상될 때까지는 책꽂이에 꽂아두는 것이 좋다. 억지로 소화시킬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공부머리를 완성하는 초등 독서법>을 쓴 남미영 한국독서교육개발원장은 “아무리 알찬 내용이 담겨 있어도 어려운 말로 복잡하게 써놓은 책은 두려운 책”이라며 언어적 추측 게임이라는 열쇳말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재미를 느끼며 계속 읽어나가게 되는 것은 언어적 추측 게임이라는 두뇌 활동 때문인데, 이는 ‘눈은 여기를 읽지만 두뇌는 다음 장면을 상상하게 되는, 두뇌가 벌이는 자발적인 추측 활동’이다. 즉, 아이가 소화하지 못하는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에서는 언어적 추측 게임이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이 의미를 아는 어휘들 사이에서만 느슨하게 일어난다. 그렇다고 어휘가 너무 쉬워서 언어적 추측이 100%에 이른다면 아이는 계속 읽어나갈 흥미를 잃게 된다. 중학생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읽을 때의 싱거움과 같다.

언어적 추측 게임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날 때는 아는 어휘가 75%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때다. 언어적 추측 게임은 책 읽기 과정에서 스파크와 같은 재미를 폭발시키며 계속 읽어나갈 수 있는 추진력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만만한 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다.

■ 올여름, 독서이력서 만들어보자

공교육 현장에 코딩 등 소프트웨어 교육이 대세인 요즘, 손으로 책을 쥐고 눈과 입으로 직접 읽어내는 ‘아날로그 독서법’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남 원장은 “입시를 빼고 생각해도, 모든 공부와 생각의 뿌리는 독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수학은 60점을 맞았어도 ‘평생 독자’로서의 태도를 갖춘 아이는 공부머리가 있는 아이라는 말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양육자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아이의 독서이력서를 검토하는 일이다. 마치 아이에게 약을 먹이기 전, 병원부터 가서 정확한 진찰을 받아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지금까지 아이가 어떤 책을 몇권 읽어왔는지, 그리고 읽기 스타일도 체크해둬야 한다.

남 원장은 “이력서가 한 사람이 살아온 길을 보여주듯이 독서이력서는 아이가 읽은 책의 목록과 읽기 방법을 한눈에 보여준다”며 “독서이력서에는 아이의 생각이 담겨 있고, 가치관이 스며 있다”고 강조했다. 여름방학에 독서습관을 잡아주기 전 먼저 아이의 독서 이력을 알아봐야 하는 이유다.

독서이력서는 어떻게 써볼 수 있을까? △자녀에게 종이를 주고 이제까지 읽은 책의 제목을 다 쓰도록 한다 △그 옆에 주인공의 이름을 적게 한다 △그 옆에 책의 내용을 요약해 적게 한다 △아이 혼자서 작성하게 한다. 부모나 형제 등 누군가 옆에서 참견하면 정확한 독서이력서를 얻을 수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에는 아이의 독서이력서를 해석해보자. △자녀가 적은 책의 개수를 세어본다(그곳에 적힌 책이 아이가 기억하는 책들이다) △읽었지만 책 제목을 기억하지 못한 경우는 부모가 양적 독서를 권장했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위인전, 세계명작, 역사물, 하이틴 로맨스, 폭력물 중 어떤 종류의 책이 가장 많은지 알아보는 것도 편식 독서를 피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책 제목은 썼는데 주인공이나 내용을 쓰지 못한 책이 몇권인지 세어보자. 책 제목과 주인공 이름, 내용의 비율이 1:1:1이라면 균형 잡힌 독서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데 그 비율이 3:2:1 정도로 차이가 난다면 대충 건너뛰며 읽는 것이다. 이런 독서습관이 계속되면 교과서나 시험지도 띄엄띄엄 읽게 되어 학습에 불편을 겪을 수 있다.

지난 7일 서울갈현초 6학년 오하은(왼쪽부터), 김소윤, 오정민 학생이 중고서점에서 책을 고른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여름방학을 앞두고 다양한 책을 저렴하게 구하고 싶어 중고서점을 찾았다.
지난 7일 서울갈현초 6학년 오하은(왼쪽부터), 김소윤, 오정민 학생이 중고서점에서 책을 고른 뒤 사진을 찍고 있다. 이들은 여름방학을 앞두고 다양한 책을 저렴하게 구하고 싶어 중고서점을 찾았다.

■ ‘쭉 읽기’보다는 구조화하며 읽어보자

책 읽기와 학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공부머리’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부머리가 있느냐는 말은 낯선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익힐 준비가 되었느냐를 뜻한다. 독서가 지식을 얻는 데 좋은 활동이지만 그 방법을 여러 갈래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12~60살 국민의 83%가 하나의 읽기 방법으로 모든 책을 읽고 있다. 바로 ‘그냥 내 맘대로 쭉 읽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양한 독서법을 통해 주제와 세부 정보를 파악하고 머릿속으로 구조화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남 원장은 “대부분의 부모와 자녀들이 그림책부터 시와 소설, 신문, 역사책, 과학책, 철학책 등 쉬운 책부터 어려운 책까지 그냥 내 맘대로 쭉 읽고 있다”며 “책 종류와 읽는 목적, 난이도에 따라 읽는 법이 달라야 독서가 재미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름방학 한달 동안 가족끼리 한권의 책을 정한 뒤 매일 저녁 5~10쪽씩 윤독하는 것도 추천한다. 소리 내 읽고 각자의 감상을 말해보는 방식도 독서와 말하기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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