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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총장이 아들·딸 교수로 채용… 기막힌 사학비리 실태

등록 2019-07-03 20:38수정 2019-07-03 23:30

[사립대 실태조사 결과 및 제도개선 권고]

교육부 사학혁신위원회 백서 발표
65곳 사립대에 회계비리 등 755건 지적사항 나와

해임 처분된 인사를 총장 임용
입학생 절반을 ‘유령’ 만학도로
교비로 ‘골드바’ 사서 나눠갖기도

사학혁신위 ‘제도개선’ 10개안 권고
1천만원 이상 횡령 땐 임원 취소
결격사유 발생한 임원은 당연 퇴직 등
교육부, 제도개선으로 ‘사학혁신’ 본격 시동거나
박상임 사학혁신위원장(앞줄 오른쪽 둘째)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사학혁신위원회 활동 백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박상임 사학혁신위원장(앞줄 오른쪽 둘째)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사학혁신위원회 활동 백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996년 평택대(이전에 피어선대) 초대총장을 맡고 재단 이사장을 지내는 등 30년 가까이 이 학교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온 ㄱ씨는 2012학년도 1학기 전임교원 채용을 위한 면접심사에 총장 자격으로 참여했다. 면접 대상자는 다름아닌 그의 아들이었고, 결국 아들은 교수가 됐다. 4년 뒤엔 ㄱ씨 딸이 전임교원이 됐는데, 채용 면접 땐 ㄱ씨는 물론 ㄱ씨의 아들인 기획부본부장까지 참여했다. 2013년엔 ㄱ씨 손녀가 평택대 직원으로, 2016년엔 ㄱ씨 조카가 학교법인 사무직원으로 채용됐다. 교원들이 교수회를 조직했으나 대학은 이를 무시했고, ㄱ씨는 대학평의원회와 개방이사추천위원회도 자기 마음대로 구성했다. 학교는 ㄱ씨 일가의 사유물이었다.

‘사학비리’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교육부장관 자문기구로 활동해온 사학혁신위원회(사학혁신위)가 천만원 이상의 회계부정을 저지른 학교법인 임원은 임원취임승인을 취소할 수 있게 제도를 정비하라는 하는 등 교육부에 10가지 제도개선 권고를 냈다. 사학혁신위의 권고안에 힘입어 교육부의 주요 과제인 ‘사학혁신’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교육부 사학혁신위는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5개월여 동안의 활동을 마무리짓는다고 밝히고, 그동안 65곳 사립대를 대상으로 벌였던 실태조사·감사(실태조사·종합감사 35곳, 회계감사 30곳) 결과와 10가지 제도개선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교수·법조인·회계사·교육부 고등교육정책관 등 14명으로 구성된 사학혁신위는 2017년 12월 출범한 뒤로 국민제안신고센터의 제보 사안을 검토해 해당 사학에 교육부의 조사·감사를 권고하는 등 사학의 공공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펴왔다. 박상임 위원장은 “그간 위원회 활동이 사학비리 척결과 교육신뢰회복의 시금석이 되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로 활동을 종료한 사학혁신위는 활동 결과를 백서로도 펴냈다.

사학혁신위 활동 기간 동안 실태조사·감사에선 전체 65곳의 사립대에서 755건의 지적사항이 발견됐다. 임원 84명에 대한 임원취임승인취소와 2096명에 대한 ‘신분상 조치’(경징계·경고·주의 등)가 뒤따랐다. 지적사항 가운데 277건에 대해서는 258억2천만원 가량의 ‘재정상 조치’가 취해졌다. 99건에 대해서는 136명을 고발·수사의뢰 조치했다. 실태조사·종합감사 결과에서는 ‘회계 등 금전’(52.8%) 비리가 가장 많았고, 회계감사 결과에서는 ‘인건비·수당 등 지급 부적정’(21%), ‘재산 관리 부적정’(14%), ‘배임·횡령·공용물 사용 등 부적정’(14%) 등의 순서로 부적정 사례가 지적됐다. 앞서 지난 2008~2017년 사이 교육부는 전체 380곳의 사립대를 감사하여, 3106건의 지적사항을 밝혀낸 바 있다. 이 가운데 982건에 대해 8638건의 ‘신분상 조치’가 이뤄졌고, 736건에 대해 3107억원 가량의 ‘재정상 조치’가 이뤄졌다. 또 2022건 483명에 대해 개선, 시정, 통보, 고발, 수사의뢰, 기관경고 등 ‘행정상 조치’가 이뤄졌다. 최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역대 ‘사학비리’의 규모를 “최소 2600억원”이라 주장한 바 있는데, 지난 10년간 이뤄진 ‘재정상 조치’ 규모만 봐도 3100억원이 넘는 셈이다.

사학혁신위가 이날 공개한 구체적인 부정·비리 실태는 통계를 뛰어넘는 충격을 준다. 경주대는 신입생 충원율을 올리기 위해 2017학년도 신입생 추가 모집 때 전체 입학 인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388명을 ‘만학도’로 충원해 입학을 허가했는데, 이 가운데 307명은 실제로 학교에 다닐 의사가 없는 ‘가짜 학생’이었다. 경주대는 교직원들을 동원해 입학금의 절반을 우선 부담하라는 식으로 ‘만학도’들을 신입생으로 모집하게 하고, 해당 비용은 ‘홍보성과 포상금’ 명목으로 추후 보전해주기도 했다.

2013년 12월 총신대 총장으로 임명된 ㄴ씨는 교육부 감사에서 교원 재임용 심사를 부적정하게 했다는 이유로 해임 처분을 요구받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징계를 받기 전에 사직서를 냈고, 총신대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ㄴ씨를 총장으로 임명했다. 그의 총장 재직 시절 학생들의 입시비리 등에 대한 항의로 학내 분규가 극심했는데, ㄴ씨는 용업업체를 동원해 학생들의 농성을 강제진압하도록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이사회 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한 사례, 총장의 딸이 운영하는 호텔 숙박권을 학교가 사준 사례, 교비로 ‘골드바’를 사서 총장이 전현직 이사들에게 임의로 지급하거나 은행 대여금고에 보관한 사례 등 여러 사학에서 부정·비리의 ‘천태만상’이 드러났다.

이런 ‘사학비리’ 실태를 바로잡기 위해 사학혁신위는 제도개선 방안을 교육부에 권고했다. △사학 임원의 책무성 강화 △사립대학 공공성 강화 △사학 교원의 교권 강화 △비리 제보 활성화 및 제보자 보호 등 크게 4개 분야에서 10가지 제도개선 방안을 내놨다.

무엇보다 ‘회계부정 임원 취소 기준 명확화’ 권고가 눈에 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회계부정이나 횡령 등 비리의 정도가 중대한 경우 시정요구 없이 임원취임의 승인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시행령에 ‘중대한 경우’의 기준을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그래서 회계부정·횡령을 저질러도 대부분 시정요구에 따라 환수 등 재정상 조치만 이행하면 임원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 비슷한 규모의 회계부정·횡령을 저질러도 처분의 정도가 제각각이다. 사학혁신위는 “1천만원 이상의 횡령을 저지른 자에게는 시정요구 없이 임원취임 승인을 취소한다”는 조항을 사립학교법 시행령에 넣으라고 권고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립학교 임원 당연퇴직 근거 신설’ 권고도 눈에 띈다. 사립학교 교원의 경우, 결격사유가 발생하면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당연히 퇴직해야 한다. 그러나 임원은 ‘국가공무원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결격사유가 발생해도 임원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사학혁신위는 임원의 결격사유에도 ‘교육공무원법’을 적용하도록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사학혁신위는 또 대학법인 임원 간 친족관계 및 임원과 친족관계에 있는 교직원 숫자를 공시하는 내용으로 ‘학교법인 임원의 인적사항 공개 등에 관한 고시’와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대학법인의 ‘족벌 경영’을 막기 위한 조처다. 개방이사 제도는 설립자·이사장 등의 ‘전횡’을 막기 위한 제도지만, 설립자·이사장의 입김으로 제구실을 못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때문에 사학혁신위는 개방이사 제도가 실효성을 갖출 수 있도록 ‘사립학교법 시행령’을 개정해 설립자 친족, 당해 법인 이사·감사 경력자, 학교의 장을 역임한 사람은 개방이사 선임에서 제외하라고 권고했다.

이밖에 이사회 회의록 공개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회계자료 보관 기간은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 비리제보자 보호를 위해 ‘공익신고자보호법’의 대상법률에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사립학교법’을 포함하는 방안 등도 권고안에 포함됐다. 대학 총장은 물론 학교법인 이사장과 상임이사의 업무추진비도 공개하도록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할 것도 권고했다. 사학혁신위는 사학 교원의 권리 강화를 위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 사학에 이행명령과 이행강제금을 내릴 수 있는 관련 법 개정도 요구했다. 이날 사학혁신위가 발표한 권고안들은, “사립학교법 개정이 필요한 일부 권고안을 빼면 대체로 교육부가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들이라는 것이 특징”이라고 사학혁신위 관계자는 밝혔다.

교육부는 사학혁신위의 권고안을 최대한 수용해 제도 개선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최은옥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관은 “사학혁신위가 오랜 고민끝에 낸 권고안인 만큼 최대한 교육부가 수용할 것”이라며 “다음번 교육신뢰회복추진단 회의에 상정해서 7월 말 최종적으로 제도개선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혁신위원 일부는 교육부의 교육신뢰회복 자문단에 참여해 사학 혁신을 위한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학혁신위의 제도개선 권고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 이행계획을 수립하겠다”며 “사학 혁신은 눈높이에 맞게 회계의 투명성과 교육의 책무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최원형 양선아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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