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내가 알아서 할게!”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말 속에 짜증이나 반감이 느껴지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서운한 감정이 밀려든다. 하지만 해석해보면,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겠다는 의미이니 매우 바람직하다. 이른바 심리적 이유기로 접어든 우리 아이들의 ‘심리적 독립선언’인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이들의 독립선언은 이율배반적이다. 간섭받기는 싫다면서 자기 방 청소는커녕 쓰레기장을 만들어놓고,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는 법도 없다. 여전히 일상생활에선 부모에게 의존적이다. 게다가 알아서 하겠다고 한 것도 그 결과를 보면 성에 차지 않는다. 이에 부모들의 반응은 똑같다.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그래서 네가 제대로 한 게 뭐가 있어?” 아이를 향한 불만과 못 미더움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우리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상담실을 찾는 아이 중 많은 수가 “엄마·아빠는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는 분명히 스마트폰을 안 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서 휴대폰을 봤다고 난리예요.” 책상에서 책을 보다 허리가 아파서 침대에 잠시 누워서 보는데 기습적으로 들어온 아빠에게 오해를 산 것이다. 아이는 아빠의 오해가 자신의 성적이 아빠의 기대에 못 미치는 데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다니는 학원이 나랑 안 맞아서 그만 다니고 혼자서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더니 공부하기 싫어서 그런 거라며 빈정댔다”며 엄마의 반응에 너무 화가 났다는 아이도 있다.
또 다른 아이는 “중2 때 딱 한번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내 말을 절대 안 믿고 친구 만나는 것도 웬만해선 허락하지 않는다”며 엄마와의 불화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가 완벽한 부모가 될 수 없듯이 처음부터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자식도 없다.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인 청소년기는 아이들에게 결코 녹록지 않다. 급격한 생리적 변화와 함께 감정선은 널을 뛰고,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존재로 거듭나야 하는 심리적 부담도 크다. 무엇보다 청소년기의 유일한 발달 과제가 학업인 양 공부를 권하는 한국 현실에서 아이들은 사춘기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다. 아이들은 벗어나고 싶으면서 기댈 수밖에 없는 딜레마적 현실에 놓여 있다.
잠시 우리 아이가 첫걸음마 뗐을 때를 기억해보자. “잘한다. 잘한다” 응원해주고, 몇 걸음 못 가서 주저앉아도 “너무 잘했다”고 칭찬해주지 않았나. 혹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이 아이들에겐 자산이 된다. 그러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흔쾌히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 걸음마 연습 때 두 손을 꼭 잡아주었듯이 말이다. 아이들의 홀로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아이들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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