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몇 년 전, 공문 작성 업무에 지친 오후였다. 학부모님이 불쑥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조심스레 누구 보호자인지 물었다. 다른 학년 학부모인데, 자녀 자존감 때문에 왔다고 했다. 상담을 원하는 줄 알고 업무를 멈춘 채 의자를 내어드렸다. 얼마나 마음 급했으면 약속 없이 불쑥, 담임이 아닌 교사에게 찾아왔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이 아니었다. 찾아온 목적은 분명했다.
“소문 듣고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반이 되면 엄마가 망쳐놓은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신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내년에 우리 아이 담임이 되어주십시오.”
어쩌다 그런 망할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직설적인 요구에 놀랐다. 학교 시스템이, 교사 개인이 원한다고 학생을 선택해 담임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권한 밖의 일입니다. 내년에 어떤 반 배정이 될지 저도 모릅니다.”
담임이 되어주겠다는 답변을 듣지 않으면 안 돌아갈 기세였다. 하지만 능력 밖의 일을 약속할 수 없었다. 결국 이렇게 답변을 하고서야 학부모는 발걸음을 돌렸다.
“제게 말씀하시기보다 백일기도 하시는 게 빠를 겁니다.”
다음 해 새롭게 반 배정이 되었다. 새 아이들 만남을 기대하며 명단을 보는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랐다. “설마 그 백일기도?”
당시 우리 학교는 학급 배정 봉투를 교사가 제비뽑기하듯 뽑았다. 교장과 교감이라도 인위적으로 어떤 아이를 특정 교사에게 담임으로 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궁금했다. 그때 그 보호자가 정말 백일기도를 한 것일까?
자녀의 자존감이 간절한 학부모님들께 꼭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백일기도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부모로서의 자존감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상으로 분명하다. 부모 자존감이 높으면 자녀의 자존감이 높다. 급한 마음에 자녀 자존감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염려하기보다는, 일단 ‘나’의 자존감을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일상에서 자녀 자존감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아이들의 자존감은 주 양육자의 자존감에서 결정된다. 이것이 자녀 자존감 팩트다. 자존감은 무조건 부모를 포함한 주 양육자가 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 엄마 아빠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한 가지 비결을 말하자면, 잠시 부모가 아닌 ‘온전한 나’의 시간을 갖는 거다. 혼자만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용기 내어 냉장고에 포스트잇을 붙여놓기 바란다.
“엄마, 사흘 동안 혼자 시간 갖고 올게. 냉장고에 콜라, 싱크대에 라면 있다.”
친구와 어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혼자 있으면서, 어린 시절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권한다. 어릴 적 그 어느 순간 무너졌던 나를 위로해주고, 이제는 어른이 되어도 좋다는 말을 해주자.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보면, 자녀와 ‘아이처럼’ 싸우는 일이 부쩍 줄어든다. 아이의 보호자들도 어른이 될 시간이 필요하다. 자존감은 내가 나만을 위한 위로의 시간에서 부쩍 자란다.
자존감 제1원칙. 스킨푸드는 피부에 양보할지라도, 자존감만큼은 내가 먼저 먹는다. 절대 자녀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한겨레> 자료사진
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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