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대학 입시를 앞두고 불안과 스트레스로 강박 행동이 심해진 아이가 상담실을 찾았다. 부모님도 알고 계신지 물었을 때, 아이는 상담 사실을 부모님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엄한 훈육을 받아왔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체벌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는 자신을 때렸던 아버지와 옆에서 방관만 했던 어머니에 대한 반감이 컸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그런 식의 교육을 받아서 자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해요. 그래서 우리들한테도 같은 방식을 고집하는데, 저는 아직도 아버지한테 맞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슬프고 화가 나요. 저랑 남동생은 빨리 대학에 진학해서 집을 나가는 게 꿈이에요.”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부모의 체벌이 훈육과 학대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위 사례 외에도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가기 싫다고 버텼다가 아버지가 목을 졸라 죽는 줄 알았다”는 아이, “집안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이유도 묻지 않고 아버지가 머리를 갈겼다”는 아이 등 아이들은 부모의 체벌을 교육적이라기보다는 폭력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부모들은 경미한 체벌은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미한 체벌도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부모님에게 맞을 때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면, 아이들은 ‘화가 난다, 짜증난다, 사랑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외롭다, 슬프다, 우울하다’ 등 부정적 감정을 쏟아놓는다.
부모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사라지고 반감과 적대감만 쌓인다. 부모의 체벌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아이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체벌로 인한 부작용이 더 크다. 아이들은 체벌을 경험하면서 의견 차이를 좁히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대신에 쉽게 폭력을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벌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모로부터 인격적인 대우와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경험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손상시키고 아이들의 심리적 건강을 해친다.
최근 정부가 친권자의 징계권을 허용한 민법(제915조) 개정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이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징계권에서 부모의 체벌을 완전히 제외할지 예외를 둘지 논하기 이전에, ‘징계’라는 말 자체가 주는 위압감과 시대착오에 안타깝다. 부모세대에서 용인되고 장려되기까지 했던 ‘사랑의 매’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에게 효력이 없다. 학교에서도 체벌은 금지된 지 오래다. 권위적인 방식이 아니라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소통의 방식이 가정에서부터 자리 잡아야 하지 않을까. 감정을 실어 혼내거나 매를 드는 것보다 인내하며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느낀다. 사랑의 매가 아니라 ‘사랑의 대화’로 가르치자.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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