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0일 오전 서울상원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여는 날’을 맞아 열린 수업을 하고 있다. 민주시민 교육의 뿌리는 학생·학부모·교직원 등 교육 3주체가 적극적으로 참여·소통하는 데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노래로도 만들어져 귀에 익은 헌법 제1조 1항의 문장이다. 이어지는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민주주의’ ‘민주시민’ ‘민주사회’….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민주’로 시작하는 말들은 공기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막상 그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터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가 공교육 현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점을 만들어야 할까? 한국 교육이 아무리 대학입시에 ‘올인’하는 구조라고 해도, 초·중·고교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키워야 한다는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길러진다는 말이 있다. 학교 민주시민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이 사회의 공동체성과 규칙을 내면화한다는 이야기다. 서로가 생각하는 ‘옳음’이 다를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최소한의 상식과 질서, 권리와 의무를 배운다.
■ 민주시민 양성에 실패한 공교육?
‘민주시민 교육’이라고 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라 생각하기 쉽다. 한데 혁신학교를 비롯한 현장 교사들은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민주시민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이 사회에서 제대로 민주시민으로 키워져야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권리와 의무를 충분히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차고 넘치도록’ 양산되는 각종 혐오 사이트의 주 이용자가 ‘10대 청소년과 그 시기를 지나온 20~30대’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종, 지역, 성별 관련 혐오·증오 표현이 급증하는 것을 두고 사회학자 등 전문가들은 ‘한국이 민주시민 양성에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연대’라는 단어에 색깔론을 입히거나 ‘인권’은 선택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사회는 병들 수밖에 없다. 학교 현장이나 언론·미디어에서 상대와 나의 ‘다름’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주고 이를 거를 장치가 없다면, 그 사회의 민주시민 교육 마지노선은 무너지게 된다.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민주시민 교육의 핵심은 ‘주권자 교육’이다. 정원규 교수(서울대 사회교육과)는 주권자 교육과 관련해 “자신이 몸담은 국가,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운영 원리가 무엇인지 등을 교육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개인 의견이 제도와 정책에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지 등을 교육과정을 통해 충분히 체화하는 것이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시민 교육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 ‘배움을 넘어서’ 주제 국제포럼 열려
민주주의를 공교육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 미래세대를 위한 민주시민 교육은 어때야 하는지, 핀란드 등 교육 선진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등을 알아볼 수 있는 ‘2019 학교 민주시민 교육 국제포럼’(이하 국제포럼)이 오는 22일 동대문구 서울시립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대회의장에서 진행된다. 국제포럼 주제는 ‘배움을 넘어서―미래를 위한 민주시민 교육’(Beyond Learning―Democratic Education for a Human Future)이다.
이번 국제포럼은 지난해 11월10일 열린 ‘2018 학교 민주시민 교육 포럼’(이하 포럼)의 확장판이다. 교육철학과 교육정책을 전공한 거트 비에스타(Gert Biesta) 아일랜드 메이누스대 교수와 학교자치, 교원정책 등을 연구한 가쓰노 마사아키 일본 도쿄대 교수가 내한해 기조발제와 주제토론을 진행한다.
오후 세션에서는 류선정 한국-핀란드 교육연구센터 소장이 ‘끝없는 도전과 응전, 핀란드 현상기반 교육과정 개정’에 대해 발제하고, 현직 초·중·고교 교사와 장학관, 장학사들이 토론자와 발제자로 나서 현실 밀착형 민주시민 교육을 논의하게 된다.
이번 국제포럼은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서울시교육청, 경기도교육청, 인천시교육청, 강원도교육청과 징검다리교육공동체, 한겨레교육이 주관한다. 특히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도성훈 인천시 교육감,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이 오전 세션에서 ‘교육자치와 민주시민 교육’을 주제로 미트업(meet-up) 토론을 할 예정이라 더욱 관심을 끈다.
국제포럼 당일 오전 9시30분 개회식 뒤 비에스타 교수가 기조발제를 진행한다. 비에스타 교수는 ‘배움을 넘어서’(Beyond Learning)를 주제로 논의의 장을 열게 된다.
이어지는 미트업 토론에서는 김영희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을 좌장으로 4개 시·도 교육감이 교육자치 등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공유할 예정이다. 점심 뒤 시작하는 세션2에서는 ‘민주주의, 교문을 넘자’를 큰 주제로 이대성 경기도교육청 장학관이 좌장을 맡아 진행한다. ‘학교자치 어떻게 이룰 것인가’ 주제토론에서는 가쓰노 교수가 일본의 학교자치에 대해 시사점을 주고, 이희숙 서울은빛초 교장이 ‘학교자치와 교장의 역할’에 대해 발제할 예정이다. 토론자로는 최종철 파주 검산초 교감, 한성찬 인천 학익고 교사, 이은경 전북교육청 장학사가 나선다.
오후 세션3은 손동빈 서울시교육청 장학관을 좌장으로 ‘시민 형성을 위한 교과교육과정’이 진행된다. 류선정 한국-핀란드 교육연구센터 소장의 발제를 시작으로 윤상혁 국가교육회의 장학사, 김민정 금호고 교사, 김용진 인천시교육청 장학사, 김현옥 산본고 교사가 민주시민 교육을 위한 교과교육과정 구성과 행정 혁신을 이슈로 심도 있는 토론을 펼칠 예정이다.
지난 4월10일 오전 서울상원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여는 날’을 맞아 열린 수업을 하고 있다. 민주시민 교육의 뿌리는 학생·학부모·교직원 등 교육 3주체가 적극적으로 참여·소통하는 데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 더불어 사는 역량을 키운다는 것
외국에서는 민주시민 교육을 어떻게 진행하고 있을까? 덴마크와 라트비아 등에서는 민주시민 교육이 의무교육에 포함된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1978년부터 민주시민 교육을 전개해왔다. ‘범교육과정원칙’으로서의 오스트리아 시민교육 조례를 마련한 뒤, 2007년 총선에서는 선거연령을 16살로 낮췄다. 청소년 시기에 접하는 민주시민 교육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친구끼리 인사를 건네고 일상을 나누는 과정, 다른 의견에 경청하는 태도를 갖는 것 등 소소한 학교생활 요소를 크게 확장해보면 그게 바로 시민 간의 연대, 공동체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역량 등으로 대표되는 민주시민 교육이라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민주시민 교육 내용이 정권 교체 시기 등에 따라 변화해왔다고 설명한다. 20~30년 전부터 민주주의라는 일관된 가치를 교육과정에 반영한 핀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유럽 국가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민주시민 교육은 세계시민교육과도 궤를 같이하는 만큼 ‘지금, 한국’에서 더욱 집중해야 하는 교육 이슈다. 유럽에서는 학교 민주시민 교육과정을 8학년에서 6학년으로 앞당기는 등 시민교육 기간 자체를 연장하는 추세다. 학교가 지역 사회 공동체의 중심이 되고, 학생들이 ‘학교 너머의 시민사회’를 자연스레 접하도록 교육한다. 고교 3학년 졸업하자마자 덜컥 주어지는 ‘성인’ 타이틀이 아닌, 오랜 시간을 들여 학생 한 명 한 명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키워내는 민주시민 교육이 지금, 여기, 한국에 필요한 이유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