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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여행은 세상을 만나는 독서법

등록 2019-06-10 20:18수정 2019-10-09 13:53

【왕용샘의 ’학교도서관에서 생긴 일’】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앉아서 하는 여행이 충분했다면 서서 하는 독서를 할 필요가 있겠지요. 지난 6일부터 1박2일간 학생 30명과 ‘서서 하는 독서’를 진행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학생들과 함께하는 여행의 주제는 ‘서서 하는 인문·지리 독서’입니다. 지리 선생님과 함께 3월부터 시작해 토요일마다 학생들과 준비했습니다. 답사 전문가에게 답사에 대한 태도, 준비 과정 등에 대한 강의를 들어보기도 하고, 답사하는 지역을 모둠별로 조사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습니다.

답사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이해를 구체화하는 것이었지요.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과 <한국 탈핵>의 저자 김익중씨를 교차하여 만나기로 했습니다. 사전에 한수원에 대한 조사를 했고, <한국 탈핵>을 읽고 월드 카페 형식의 토론도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책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아침 7시50분 동쪽으로의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3시간 정도를 달려 엄청난 규모의 한수원에 도착했고, 원자력 발전의 장점과 필요성에 대한 강의를 한 시간 정도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한수원 본사에는 전기를 이용한 체험 시설도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조금은 초라한 ‘경주환경운동연합’이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한국 탈핵>의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한수원에 비해 비좁고 시설이 열악해서 학생들이 불편해하더군요. 학생들이 힘들기도 했을 텐데, 석달 동안 준비한 ‘서서 하는 독서’를 위해 의자에서 한명, 두명씩 일어나더군요. 배부르고 더우니 졸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는데도 졸지 않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2시간 동안의 강연과 질문이 있었습니다. 주로 한수원과 반대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전남 광양백운고의 ‘서서 하는 인문·지리 독서’ 책 표지. 교내 독서 활동인 만큼 오윤주 학생이 디자인하고 라노아 학생이 편집했다. 황왕용 교사 제공
전남 광양백운고의 ‘서서 하는 인문·지리 독서’ 책 표지. 교내 독서 활동인 만큼 오윤주 학생이 디자인하고 라노아 학생이 편집했다. 황왕용 교사 제공
학생들은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할까요? 강연 중 오갔던 16개의 질문과 강연자의 답변 속에서 학생들은 해답을 찾았을까요?

저녁에는 포항에서 유람선을 타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았습니다. 선체 4층에 올라선 우리들은 추억을 남기려는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지요. 사진이 시들해질 무렵 한 학생이 지리 선생님에게 질문하더군요. “선생님. 저기 보이는 게 사빈, 해안사구 맞지요?” 지리 선생님께서는 몇가지 더 설명을 해주셨고, 학생들은 자연스레 공부했습니다. 물론 학생들은 공부보다 친구들과 함께 잘 수 있고 바람을 쐴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재미겠지요? 그 속에서 지리 공부, 인생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을 느껴봅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에 들렀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양동마을을 더 운치 있게 만들더군요. 관가정, 향단, 무첨당 등을 둘러보며 묘한 기운을 받아 갔습니다. 석류, 해당화, 접시꽃이 피어 있는데 흐드러지지 않아 더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생님, 저 꽃은 뭐예요?”라고 묻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꽃 사이에서 떡메치기도 직접 해봤습니다.

구룡포에는 일제강점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인 가옥 거리가 그것이지요. 우리의 발이 되어주신 기사님은 “뭐 하러 그런 것을 남겨놓는지, 싹 다 엎어버리면 좋겠구먼.” 혼잣말을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것은 120개의 돌기둥이 있는 계단이었습니다. 구룡포항 조성에 기여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나, 해방 직후 시멘트로 덮어버리고 뒷면으로 돌렸다고 합니다. 새로운 앞면에는 1960년 충혼각 설립 시 후원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았습니다.

계단을 올라 공원을 지나면 과메기문화관이 보입니다. 학생들은 사전 조사를 통해 알고 있던 내용을 과메기문화관에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청어와 과메기가 많이 다르더군요. 직접 눈으로 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발표를 했던 학생이 말하더군요. 요즘은 러시아에서 청어로 과메기를 만들어서 수입하기도 한다고요. 꽁치보다 영양 성분은 조금 떨어지지만 더 담백해서 수요가 있다고 설명하는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누가 선생이고, 누가 학생인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은 큰 효과가 아닐까요?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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