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영 유니스트 총장. 그는 취임 이후 ‘원스톱 창업생태계’ 시스템을 갖춰 혁신기술 사업화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달 22일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에서 유니스트와 평양과학기술대가 공동 주최한 식물자원 유전체(게놈)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포지엄에선 농작물 수확 증대를 위한 종자 개량 등 식물자원 ‘게놈’ 기술개발을 통한 북한 식량난 해결 방안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심포지엄에 앞서 만난 정무영(70) 유니스트 총장은 “북에서 추위에 강한 양파 종자 개량에 관심이 많다. 북한이나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선 추위 때문에 양파 재배가 잘 안 된다고 한다. 이것만 성공하면 북에서 양파를 재배해 수요가 많은 중국에 수출하고, 대신 옥수수 등을 수입해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유니스트는 앞서 지난해 11월 평양과기대와 학술교류 협약을 맺었다.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오는 10월께엔 평양과기대에서 2차 공동 심포지엄도 추진할 계획이다.
정 총장은 2015년 9월 유니스트가 카이스트·광주과학기술원(지스트)·대구경북과학기술원(디지스트)에 이어 국내 네번째 과학기술원(과기원)이 된 뒤 취임해 4년째 임기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유니스트의 비전을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세계적 과학기술 선도 대학”이라고 소개했다.
■ 작지만 강한 대학 과시
유니스트가 올해로 개교 10돌을 맞았다. 2009년 3월 국내 첫 법인화 국립대(울산과기대)로 문을 열고 6년 만에 과기원으로 발돋움한 뒤 이젠 ‘2030년 세계 10위권 연구 중심 대학’을 목표로 비상을 꿈꾸고 있다. 유니스트는 10년 동안 전임교수가 47명에서 325명, 학생이 500명에서 5007명으로 늘었고, 연구 수주 실적은 77건, 147억원에서 지난해까지 741건, 1058억원 규모로 불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세계 대학 평가에선 2017년부터 올해로 3년 연속 국내 대학 중 1위를 차지했다. 영국 대학평가기관(THE)의 지난해 학생 수 5000명 이하 소규모 세계 대학 평가에서도 아시아 1위, 세계 6위에 올라 ‘작지만 강한 대학’의 면모를 과시했다.
정 총장은 유니스트의 가장 큰 장점을 “전체 교수(325명)의 10% 이상이 창업 사장”이란 것을 내세웠다. 그는 “유니스트가 카이스트와 견줘 역사도 짧고 교수 수도 절반에 못 미치지만, 학교 실험실 연구를 바탕으로 창업한 벤처기업은 훨씬 많다”고 자랑했다. 2014년 이후 최근 5년간 유니스트에선 교수 창업 37개, 학생 창업 45개의 벤처기업이 운영되고 있다.
교수 창업의 대표 사례로 꼽는 기업 ‘클리노믹스’는 유니스트가 경쟁력을 자부하는 ‘게놈’ 연구 성과를 인간의 질병을 조기 진단하는 사업에 활용해, 지난해 2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내년 기술특례 상장을 앞두고 최근 상장 전 단계 투자로 225억원을 유치했고, 2022년 12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생 창업의 대표 사례 ‘클래스101’은 일상생활 속의 취미·여가활동을 사업화해 지난해 54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최근 120억원 투자 유치로 화제를 모았다. 유니스트는 정 총장 취임 이후 ‘혁신적 원천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창업을 꿈꾸는 교수·학생 누구나 쉽게 이에 도전하고, 사업 단계에 따라 투자·금융 등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원스톱 창업생태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정 총장은 “대학, 특히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의 연구 성과가 논문에 실리는 것으로 그쳐선 곤란하다. 연구 성과가 실험실 담을 넘어 실질적인 세상의 변화를 끌어내고, 지역과 국가, 나아가서는 인류사회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동안 우리 대학은 논문 발표와 실험실 연구에만 안주해왔다. 이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계 각 대학들도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파급력 있는 혁신적 원천기술을 개발해 사업화하면 연관 효과까지 쳐서 1만명 또는 10만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미래산업의 육성·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재 일자리는 우리 경제의 핵심과제가 되고 있고, 미래산업은 조선·자동차·석유화학 등 기존 주력산업이 한계에 이른 울산에서 새로운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절실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 총장은 ‘세계화’와 ‘지역화’를 뜻하는 영어 합성어인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용어를 인용했다. 그는 “유니스트가 세계 10위권 대학을 지향하지만 그 토대를 지역에 두고 있다는 것을 잊을 순 없다. 세계 경쟁력을 갖춘 수출형 혁신성장을 위한 연구개발에 울산의 미래를 위한 산업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스트는 현재 바닷물을 이용한 전지(해수전지) 등 14개 기술을 대표적인 수출형 혁신성장을 위한 연구 브랜드로 육성해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 울산의 미래 산업 함께 고민
유니스트는 이같이 혁신기술 연구개발과 사업화에 집중하면서 올해 초 기초과학연구소도 따로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정 총장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기초과학의 기반 없이는 응용과학이 제대로 연구될 수 없다. 혁신적인 응용과학기술의 밑바탕에는 기초과학이 기본으로 깔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기초과학이든 응용과학이든 중요한 것은 인류의 삶에 어떻게 공헌하느냐, 그것도 크게 공헌하는 길에 있다. 우리나라가 기초과학이 미흡하다고 하는 것은 아직 그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신적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원천기술 개발과 사업화로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길을 가다 보면 그 결과로 노벨상을 받는 날도 오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니스트는 또 혁신적 원천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기반으로 2040년 100억달러(12조원) 발전기금을 조성해 재정 자립 기반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정 총장은 “하버드와 예일 등 현재 세계 10위권 대학 모두 수십조원의 엄청난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글로벌 대학’으로 가려면 발전기금 조성을 통한 자립 기반이 필수다”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가 오랜 대학이라면 성공한 동문의 기부라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역사가 짧은 우리 대학은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 뛰어난 원천기술 개발을 통한 사업화밖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국립이니까 굳이 재정 자립에 신경 안 써도 예산지원을 받아 대학을 운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민 세금을 써서 운영하고 연구하는 대학이라면 그 성과를 통해 국민에게 보답하고, 스스로 자립 기반을 마련해 국민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울산/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사진 유니스트 제공
지난달 22일 유니스트에서 ‘유니스트-평양과기대 식물자원 유전체 공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왼쪽 둘째부터 정무영 유니스트 총장, 송철호 울산시장, 전유택 평양과기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