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연탄샘’은 필자가 상담을 시작하면서 사용하게 된 별칭이다. 안도현 시인의 일침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상담사로서 갖춰야 할 제일의 덕목으로 따뜻함을 꼽은 것은 사실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인연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던 20여년 전, 성매매 여성들을 돕던 한 활동가로부터 업소에서 탈출한 17살 아이가 검정고시 준비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가 국어 과목을 가르쳐주기로 했다.
작고 귀여운 아이는 재잘재잘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공부시간 내내 꿈꾸듯이 자기 이야기를 했다. 간밤에 꿈속에서 멋진 남자 배우와 연애를 한 이야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매번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부시간은 거의 끝나 있었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의 꾀라는 생각이 들어 어느 순간부터 이야기를 끊고 진도를 나갔다. 내가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검정고시에 붙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이가 사정이 생겼다며 수업을 취소하더니 그 뒤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후회했다. 내가 진심으로 아이가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가. 내가 진심으로 아이에게 ‘따뜻한 사람’이었던가. 그리고 깨달았다. 아이가 원하는 것과 내가 아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달랐다는 것을.
어렵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이야기를 아무런 판단 없이, 진심으로 들어주기 원한다.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경청해줬을 때 아이들은 달라진 표정으로 돌아간다. 억지로 상담실에 불려와 “공부도 싫고 가족도 싫고 살기도 싫다”던 한 아이는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생겼다”며 부르지 않아도 매주 꼬박꼬박 찾아왔다.
아이들은 장황한 조언을 듣고 싶은 것도, 쌈박한 해결책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불안하고 두려운지, 무엇이 슬프고 가슴 아픈지, 무엇이 죽고 싶을 만큼 힘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그 마음을 읽어줄 수 있으면 상담사로서 해줄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해준 것이다. 아이들이 용기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답을 찾도록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담을 하면서 다양한 환경에 처해 있고, 다양한 문제로 고민하는 십대들을 만났다. 앞으로 상담 현장에서 만난 십대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면서 고군분투하는 청소년기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함께 읽어갔으면 한다.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재구성했습니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전문상담사
상담센터, 중·고교에서 여성 및 청소년 상담
※지난 14일부터 김선호 교사의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와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의 ‘연탄샘의 10대들♡마음 읽기’ 칼럼을 격주 게재합니다.
이정희 청소년상담사(연탄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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