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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초등 자존감은 ‘소확존’으로부터

등록 2019-05-14 09:06수정 2019-10-09 14:03

【우리 아이 마음 키우기】

따스한 봄볕 드는 교실에서의 점심시간, 학생들은 대부분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고 있었다. 교실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아이들은 한가로이 창가에 걸터앉아 재잘거리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귀에 거슬리는 대화가 들렸다.

“우와~ 존재감 쩌는데.” “완전 핵개쩌는 존재감!”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누군가를 욕하거나 비하하는 줄 알았다. 아이들을 불렀다. 그렇게 욕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쌤~ 이거 욕 아닌데요. 정말 부러워서 그런 건데요.” “영수 보세요. 축구 경기를 할 때 정말 존재감 쩔어요.”

설명을 듣고서야 욕이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표현이 너무 거칠게 다가왔다.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이 정도쯤은 표현해줘야 정말 ‘존재감 있음’에 걸맞은 말인 듯했다.

학교 현장에서 보이는 아이들은 ‘존재감’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듯 행동하고 표현한다.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대부분 원인은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친구 관계 안에서의 자기 위치 때문이다.

자신이 친구 관계 안에서 ‘존재감 없음’으로 느껴질 때 한없는 소외감과 함께 자존감 하락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런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취급당하느니 학교에 아예 가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긴다.

친구들에게 ‘존재감 있음’의 위치에 등극하려면 뭔가 잘하는 것이 있어야, 혹은 튀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소리가 더 커지고 표현이 거칠어지고, 과한 액션이 추가된다. 내가 여기 이렇게 존재한다고 알리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 노력에 뒤처지는 순간 그룹에서 배제되고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전락할 거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학생 면담 중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애들한테 존재감 없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이 사회에서 겪는 것 못지않게 치열하다.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교육 환경을 꿈꾼다.

굳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교실에 와서 앉아 있는 것만으로 ‘존재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을 나는 ‘소확존’, 즉 소소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이라 부른다. 아침 시간, 아이들이 모두 앉아 있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음에도 꼭 이렇게 한마디 덧붙인다.

“빈자리 없이 모두 다 있으니 참 좋구나. 너희들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거면 충분하다.”

모든 엄마 아빠들이 외출 후 혹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조건 없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네가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구나.”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나 양육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아이들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숙제는 했냐?” “티브이는 도대체 언제까지 볼 거야!”

존재감은 무엇을 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김선호 서울 유석초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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