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수업을 마친 강원도 섬강초등학교 4학년 ‘함행우’(함께 있어 행복한 우리)반 학생들과 심은지 교사가 교실 옆 휴식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윤 기자
<한겨레>가 혁신학교 도입 10년을 맞이해 4월부터 교육공동체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가 혁신학교 교육과정의 핵심이다. 자기 주도적 역량을 가진 학생을 키워내는 데 목표가 있다.
혁신학교 시리즈 다섯 번째 주제는 ‘공간혁신’이다. 전국에서 공간혁신 프로젝트에 가장 적극적인 강원도교육청은 학교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다. 문턱 높고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교육 환경에서 민주시민교육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간혁신을 위해 개교준비팀 등을 운영한 원주 섬강초등학교와 공간 활용 수업을 진행한 동해 삼화초등학교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섬강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들이 학교 곳곳에 마련된 실내 놀이터 및 체력 단련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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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비슷한 학교 공간?
사회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학교 공간이 교도소와 유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학교 건물의 생김새가 묘하게 감옥을 닮았다는 것이다. 학교 담벼락은 울타리, 회색 시멘트로 이뤄진 건물 장벽, 하나같이 네모난 교실이 마치 감방과도 같다는 이야기다.
거친 표현이지만 교도관이 죄수를 관리하듯, 교사가 학생들을 보호하고 관리할 수 있는 목표가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학교와 교도소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덧붙이자면 두 공간의 최종 목표가 ‘훈련과 교화’에 있다는 것, 네모진 공간에 맞춰 사람을 체계적으로 길들여 표준화시킨다는 것도 어떤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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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 주인은 학생이다
지난 9일 찾은 강원도 원주시 섬강초등학교는 올해 3월 개교한 ‘행복더하기학교’(강원도형 혁신학교)다. 공간혁신에 관심 있는 교사 중심으로 ‘개교준비팀’이 꾸려진 건 지난해 8월. 개교준비팀 교사 25명은 올해 1월까지 건축사무소의 설계도면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개방적이고 탈권위적인 공간 만들기에 돌입했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과 운동장에 일렬종대로 서 있는 학생들이 자동 연상되는 구령대부터 없앴다. 대신 아이들이 학기 중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은 무대를 설계에 반영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들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공간을 살펴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섬강초등학교 5학년 5반 학생들과 이석규 교사가 스토리 스텝 앞 놀이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윤 기자
학교 1층에 통유리로 되어 있는 콘퍼런스 공간에서는 주제통합 수업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어떠한 명령문도 없다. 그 공간은 그저 아이들과 교사의 활동으로 ‘따로 또 같이’ 채워지는 공간이다. 햇볕이 드는 계단과 2층부터 4층까지 길게 이어진 스토리 스텝에서는 작은 발표회나 버스킹 공연도 열린다. 교실 밖으로 나오면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벽 없는 ‘무한 교실’이 생겨나는 것이다.
개교 뒤에는 황정회 교사를 중심으로 ‘공간혁신 태스크포스’(공간혁신팀)가 꾸려졌다. 한 달에 한 번 교사 13명이 워크숍을 진행한다. 이들은 각 반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발제한다. 황 교사는 전에 있던 서원초등학교에서의 공간혁신 경험과 디자인 싱킹 기법을 활용해 공간혁신팀을 이끌고 있다.
디자인 싱킹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지식이나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관찰·공감·협력을 통해 다양한 대안을 찾아본 뒤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공감하기-정의하기-아이디어 발산-구현하기-실행하기로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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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놀이공간이 꿈을 키운다
섬강초 교내 곳곳에 자리잡은 학생 쉼터와 놀이 공간, 동아리실, 음악실, 과학실 등은 하루 수업이 끝난 뒤부터 더 생기가 돈다. 학생들은 학교 공간 이곳저곳을 왁자지껄 찾아다니며 활기를 불어넣는다. 오전부터 종일 취재한 기자가 보기에도 이 학교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였다. 5학년 5반 김한결·김용찬 학생은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30분 동안의 놀이밥(쉬는 시간) 때는 숨이 차도록 뛰어놀 수 있다”며 “선생님한테 혼나는 무서운 학교가 아니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같은 학교”라고 말했다.
1~2학년 학급이 배치된 2층에는 미로 찾기와 실내 암벽 등반이 가능한 어린이 놀이 공간을 설치했다. 3~4층 복도 빈 곳에는 아이들이 오가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작은 탁자와 의자를 갖춘 쉼터를 마련했다. 학교 건물 가운데 공간은 1층부터 4층까지 원통 형태로 연결해 개방형 구조를 갖췄다. 두 층을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인 스토리 스텝 근처에는 소파가 놓여 있고 자석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게시판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낙서할 수 있는 대나무 숲이다.
황 교사는 “교실 환경은 그 자체가 바로 교육이다. 교단 없는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어깨를 마주하며 토론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머물고 싶어 하고 즐거워하니, 교사들도 힘이 난다. 학교 공간 전반에 퍼진 ‘활력’은 교사연구모임으로도 이어져 수업의 질이 더욱 높아진다.
심은지 교사는 “예전에는 높은 교탁, 교단이 교실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둘러앉아 있는 곳곳이 중심”이라며 “배움의 공간을 수정·보완해나가며 아이들도 학교를 삶의 터전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비유하자면 수도권 중심 중앙집중형 구조에서 지방분권형으로 바뀌며 더 많은 ‘교육 주체’가 생겨난 것이다.
지난 9일 오후 3시 강원도 섬강초등학교 ‘공간혁신 태스크포스’(공간혁신팀)에서 활동하는 교사들이 수업과 교육활동에 반영할 수 있는 학교 공간 상상하기를 주제로 워크숍을 하고 있다. 이 학교 황정회 교사가 공간혁신팀을 이끌고 있다.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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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설득할 수 있는 공간
강원도교육청은 전국에서 공간혁신 프로젝트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시민교육을 진행하며 그 상상력이 민주적인 학교 공간으로까지 확장된 현장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협의체를 만들어 연구하고 수업에도 적용하고 있다. 건축회사가 학생들을 만나 소통하는 방식이 아닌, 학교를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교사와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우리가 생활할 즐거운 교실’을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다.
학교 공간혁신 사례로 언급되는 나라에는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교육 선진국들이 있다. 덴마크의 ‘외레스타드 김나지움’(Ørestad Gymnasium)은 학습자 중심의 교육과정을 꾸려가며 수업의 절반은 교실에서, 남은 절반은 문이 없는 개방 공간에서 진행한다. 교사가 최소한으로 개입하며 아이들의 공간 자율성을 보장해준다. 노르웨이 ‘링스타베크 스콜레’(Ringstabekk skole)의 경우 프로젝트 수업을 위한 확 트인 개방형 공간을 학교라 부른다.
강원도 동해 삼화초등학교 남정아 교사는 “공간혁신은 ‘행복더하기학교’라 가능한 논의다. 아이들을 학교의 주체적인 사용자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삼화초 학생들은 사흘 동안 ‘쓰지 않는 사육장을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라는 공간혁신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유휴공간이 되어버린 학교 사육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고민했다. 운동 공간, 놀이방, 샤워실 등의 순으로 나온 설문 결과지를 토대로 자료를 만들었다. ‘사육장을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활동을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낸 것이다.
남 교사는 “공간 프로젝트 수업을 하며, 아이들도 학교를 ‘다녀야 하는 곳’이 아닌 ‘살아가는 터전’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전했다. 더 이상 학교가 아이들을 수용하고 통제하는 장소가 아닌, 필요와 욕구에 의해 유연하고 재미있게 변할 수 있는 현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단순히 학교에서 노후화된 시설, 교구를 교체하거나 눈에 보이는 곳만 예쁘게 리모델링하는 것은 공간혁신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일상이 자연스레 스며든 민주적인 공간, 그게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교실 모습이지요.”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